‘썰전’ 강용석이 맡았던 독점적 역할을 어찌 할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늘 정부나 정치인들의 위기 대응을 논하던 <썰전>에 위기가 닥쳤다. 지난번 2부 개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기다. <썰전>의 핵심은 김구라, 이철희, 강용석이 이끄는 1부다. 지난 대선 이후 싹튼 ‘정치시사토크’를 좋은 성적으로 유지해온 유일한 대중 콘텐츠로서 개편에도 비껴나 있었다. 그런데 송사에 휘말린 강용석 변호사가 하차하게 되면서 삼각형의 한 각이 무너졌다. 냉정하게 말하면 사회자 김구라와 비교적 진보 논객 역을 맡았던 이철희는 어떻게든 대안이 있지만 강용석의 자리를 대처할 만한 인물은 딱히 없다. 삼각형의 균형이 무너졌다.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안했었던 것 뿐, 강용석은 썩 괜찮은 방송인이었다. 그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이력과 방송이 필요로 하는 재능을 두루 갖추었다. 요즘처럼 ‘진짜’를 원하는 시대에 방송인은 소멸되지 않는 이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비연예인 출신은 더욱 그렇다. 허지웅은 10년 가까이 필름2.0부터 경력을 쌓아왔고, 곽정은은 스스로 홍보하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섹스칼럼을 썼다. 쿡방에서도 예전과 달리 방송을 잘하는 요리전문가보다는 자신의 업장을 성공시킨 필드에서 인정받는 셰프가 인기를 끄는 식이다. 캐릭터는 질리지만 이력은 버팀목이 된다. 황석정, 강남, 강균성 같이 캐릭터에 의존하는 수많은 예능 별똥별들과 최근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넘어온 방송인들의 차이점이다.

강용석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패가망신한 전직 여당 국회의원이자 숱한 소송과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의 저격수로 활동했던 전국구 밉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적당히 희화화하는 가운데 정치적 스탠스는 더욱 확고히 유지하며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는 논리적으로 어려운 역할을 독점적으로 수행했다. <100분토론> 등을 보면 거칠게 말해 보수 진영 관련 방송인 혹은 방송이 가능한 이력을 가진 사람 중 강용석만큼 나름 논리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척하면서 엔터테이너적 매력을 갖춘 인물이 없다.



이번 주 이슈였던 지뢰도발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 같이 명백히 안 되는 싸움에도 이철희 소장과 대척점에서 능글맞고 때로는 뻔뻔하게 나름 논리를 피다가 균형을 잡는 제스처를 보이고, 아베 담화문에서 나타난 외교 정책의 실패를 청와대로 돌리지 않고 외교부 장관에게 특정 짓는 식으로 자신의 선 자리에서 교묘하게 정부여당도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방송인의 필수 덕목인 말을 잘했다. 정치적 이슈를 넘어서 홍대를 지역구로 둔 만큼 맛집 파워블로거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려 <수요미식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고, <유자식 상팔자>에는 아들과 함께 출연해 가족 방송인의 이미지를 키우며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희석시켰다. 그래서 방송가에서는 많이 불려 다니고 잘 먹혔다. 비호감과 비난의 시선 속에서 위험수위의 경계를 타면서 방송을 꾸준히 한 결과 원하는 인지도 상승은 이뤄냈다.

적당히 권력 지향적이고, 조금은 낯 뜨겁더라도 논리적으로 전혀 되지 않는 싸움에서도 정부여당을 대변할 수 있는 이력이 있으며 때로는 비판도 할 줄 아는 매끈하게 방송할 수 있는 인재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강용석은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인지도와 바꾼 것이다.



그런데 저격수로 쌓은 비호감의 명성으로 방송에 입성했던 그런 그가, 저격을 당하고 말았다. 도박하듯이 얻어낸 인지도 위에 불명예의 크림이 얹어졌다. 예전엔 정치인의 뉴스였지만 이젠 엔터테이너의 뉴스가 됐다.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도덕적인 문제와 또 한 차례 결부된 이슈인지라 법정 공방이 잘 끝나기 전까지 복귀하긴 어려워 보인다. 허지웅이나 정창욱의 사례처럼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와 방송 커리어 사이의 긴장을 조율한 것이 아니기에 이른바 자숙의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될 것이고, 다시 활동하기엔 대중과의 합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쉽지 않다.

문제는 방송가의 독점적 캐릭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현장이 <썰전>이다. 많은 시청자들은 그의 하차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방송 자체만 놓고 보면 게시판보다 더 난리가 난 상황이다. 강용석에게 <썰전>은 홈그라운드였고, <썰전>도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방송인의 매력과 정치인으로서의 이력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제 당분간 방송인으로서의 경력은 끝나면서 <썰전>의 튀는 혓바닥 결투도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해외 파트 뉴스가 재미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제 강용석의 나름 억지 논리에 화를 쏟으며 보던 재미가 사라진다. <썰전>의 재미 요소가 아예 날아갔다. 욕하면서도 보던 아이러니가 사라지면 이 프로는 예능이 아니라 시사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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