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FC’ 안정환 말대로 축구로 인해 모두 행복했으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방송이 끝났다. K리그 클래식 선발팀과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청춘FC는 해산했다. 그들의 축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난 5개월간 <청춘FC>의 축구를 지켜보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더 이상 벨기에나 청주대에서 합숙을 하던 선수들과 다음 경기 선발 명단 때문에 머릿골을 앓던 안정환과 이을용을 볼 수가 없다. 이제, 선수들은 힘든 훈련을 끝내고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KBS 예능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은 끝까지 현실을 외면하는 작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눈물도, 미래를 위한 희망찬 제안도, 거창한 마무리도, 스포츠만화 타입의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마지막 명승부도 없었다. 마지막 프로모션이었던 최종전은 이렇다 할 장면도 감동도 없었다. 특히 주전들이 출전했던 후반전은 십분 내외로 그냥 살짝 편집해 보여주는 것으로 끝냈다. 후회가 남든, 추억이 남든 별다른 에필로그 방송도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자체 게임으로 찬란했던 청춘을 마무리했다. 즉, 만화적 스토리가 현실에서 아직까진 벌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마지막처럼 한 줄 자막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디를 들어갔고, 누군가는 무엇을 하게 됐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랬다면 덜 아쉬웠을까. 마치 드라마가 종영할 때처럼 더 이상 그들의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특별한 해피엔딩을 더욱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소식이 들려오기를 계속해 기대할 것이다.

전혀 이름도 알 수 없는 선수들에게 팬클럽이 생기고, 2부 리그 프로도 아닌 선수들의 경기에 줄을 설 정도로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이런 변화는 경제적 사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축구를 포기했던 청춘들에게 최소한 인생의 추억이 되었고, 나아가 희망을 다시 꿈꾸게 했다. “잘해서 끝내는 것보다 못해서 끝내는 게 낫다”고 안정환은 감독으로서 마지막 말을 했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전폭적인 지원 하에 체계적인 훈련은 이제 못하지만, 마지막 경기의 쓴 패배를 보약삼아 숙제를 받아들고 떠나는 선수들이 계속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다.



바로 이 점이 관찰형 예능 시대에 태어난 <청춘FC>의 성과를 주목해볼 부분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그들의 일상을 엿보듯 지켜보는 것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었다. PD 및 제작진으로서는 엄청난 책임감이나 담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관찰형 예능의 문법이 가져다 ‘예능의 기회’를 누군가에게 ‘인생의 기회’로 제공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재미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다.

연출법이 인장을 새길 만큼 세련된 것도 아니고 전문 예능인은 단 한 명도(안정환도 이제 겨우 방송 2년차다) 출연하지 않지만 감독부터 선수들 모두 진심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끝이 정해진 시작,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 그래도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으니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달렸다. 웃음사냥꾼들이 피치를 누비며 터트리는 웃음 대신 인생이 걸린 선수들과 그들의 청춘에 진심으로 동참한 감독들의 주옥같은 말과 땀이 쏟아졌다. 이에 시청자들은 구름관중과 열렬한 지지로 화답했다.



감독을 맡은 안정환은 방송인으로의 재능과 호감도를 부쩍 올렸다. 감동은 도전하는 선수들을 뿐만 아니라 안정환, 이을용의 진심이 느껴지는 데서 크게 작용했다. 안정환은 마음이 닫혀 있는 선수들을 통해서 배우고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훈련장에서는 남들은 더 강하다면서 혹독하게 다그치고 몰아붙였다. 그러다 부상당한 선수에게는 별말 없이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와서 쓰담쓰담과 키스를 건넨다.

그는 매우 쑥스러워하겠지만 어쩌면 요즘 세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어른의 모습을 얼핏 보여줬다. 괜찮다고만 외치는 어른도, 원래 세상은 어렵고 나는 더한 것도 해쳐왔다는 어른도 아닌 어쩌면 젊은 세대가 바라는 새로운 리더의 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그가 돌아가야 할 축구 감독으로서의 가능성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그가 보여준 지도력과 전술 이해도, 선수들과의 호흡은 방송 출연자로 프로그램을 대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갈 수 있을까.’ ‘엄청난 추억이긴 한데 허무하다.’ ‘방송 후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고 밀고 가겠다.’ ‘이제 우물 밖으로 나오겠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모두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남긴 소회다. 그간의 노력과 시간을 이어가겠다는 인생을 건 다짐부터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게 좋았다’는 소박한 마음까지 청춘을 걸고 인생 도전에 나선 이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이 귀에 밟힌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축구경기’일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진담인 듯 말했다. 누구보다 간절하고, 또 들떴을 젊은 선수들은 방송 출연 중이 아니라 혹독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음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방송이 끝난다고 계약이 줄줄이 이어질 리가 없다. 그 전과 같은 초조하고 막연한 하루를 안정환과 이을용도, 제작진도, 카메라도 없이 다시 맞서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안정환 감독은 마지막 연습을 시작하며 말했다. “축구에는 마지막이 없다. 앞이 있다고 봐야지. 재미있게 하던 거 하자.”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하얗게 불사른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이 끝났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달려준 모습을 보여줬기에 기억에 남는다. 보장된, 안정된 미래가 없음에도 달려든 모습이 청춘다웠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더라도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5개월 간 정식 경기 10회,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안정환 감독의 말대로 축구로 인해서 모두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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