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썰전’에는 자극적이더라도 조미료가 필요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정부가 남긴 몇 안 되는 순기능 중 하나는 환멸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그게 쿨한 태도로 여겨졌던 정치와 사회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이런 무거운 이야기도 대중문화 콘텐츠로 넘어올 수 있었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송곳>도 그러하고 팟캐스트와 대안 언론을 넘어 <썰전>에 이르러서는 뉴스와 정치가 수다가 되고, 예능이 되는 시대를 열었다.

‘신개념’으로 시작한 다른 예능들이 하나둘 시들어가고 있는 지금, <썰전>(1부)은 아직까지도 별다른 것 없는 구성, 변하지 않는 구도로 여전히 시사와 예능이 조화를 이루고 유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김구라의 진행 하에 뉴스와 정치 상황을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은 독특한 경험이었고, 기존 정치인들이나 공중파 및 보수 성향 매체의 뉴스에서는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자기반성과 비판적 견해에서는 나름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디스패치와 전쟁 중인 고소 전문변호사 겸 방송인 강용석은 욕먹는 역할을 자처하며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국정화 교과서다. 누가 봐도 갸우뚱할 정도로, 거의 아무런 논의 없이 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방식의 역사교육을 하기로 정부가 고시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썰전>은 국론을 뒤흔드는 국정화 교과서 문제를 거의 매주 다루고 있다.

이번 주에서도 교육부 내 비밀 TF조직 뉴스를 중심으로 국정화가 무엇이 문제이고 나아가 정부는 굳이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이는지, 기존 뉴스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시사교양 학습을 씹어서 떠 먹여준다.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속내와 이에 대해 어떤 비판적 여론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루고 견해까지 전하는 프로는 영향력 있는 채널 내에서 <썰전>이 여전히 유일하다. 정치 진영에 따른 뉴스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교양과 교육을 통해 자신만의 ‘관’을 갖게 해주는 유일한 쇼다.



몇 주 전 <썰전>에서 두 패널은 공히 총선시국에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부담스러워하고 반발이 많아서 하기 쉽지 않을 거라 전망했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썰전>이 만능 나침반이나 타로점성술사는 아니다. 전망은 빗나갔지만 이들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청와대 내부의 역학관계, 새누리당 내 영남과 서울 의원들 간의 입장 차이를 짚는 것부터 시작해 ‘주체, 조직, 필진, 예산’이 불투명한 것에 대한 의문을 거쳐 선거 국면에 접어들기 앞서서 굳이 부담스러운 국정화를 가져온 이유는 새누리당의 총선 필승 공식인 중도층의 이탈을 위한 것이라고까지 다시금 분석해 알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해석과 정보와 지식이 빗나가는 게 아니다. 이철희 소장과 이준석의 대립각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쇼의 재미 또한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이준석이기에 강용석 의원이 이철희 소장과 어떻게든 각을 세웠던 상황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야당과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많은 국민들이 국정화교과서를 문제 삼는 건 친일, 독재에 대한 부분이고 이는 보수 세력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도(맞는 말이긴 하지만) 별다른 딴죽이 없다. 가장 극적 대립은 교과서 국정화가 역사관에 별로 영향을 안 미칠 것이라는 이준석의 주장에 대한 이철희 소장의 반론 정도였다. 삼각 구도 속에 정보 전달과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묘한 균형을 이뤘다면, 국론이 엄청나게 극심하게 분열된 이런 사안에도 <썰전>은 평화로웠다.



이는 역시나 좋은 공부를 시켜주는 개편된 2부 경제 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여기는 김구라의 서장훈 잡기 이외에는 아예 의견대립 비슷한 것 자체가 없다. 최진기라는 독보적인 존재의 강의가 토크쇼 형태로 앉은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보 습득 이외의 예능의 본령에 맞게 보다 버라이어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와 구성은 여전히 아쉽다.

<썰전>은 TV에서 하지 않았던, 더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없었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토크를 가져와서 성공했다. 정보를 제공해주고, 생각하고 다른 입장의 견해를 비교해 들으면서 자기의 견해와 상식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재미가 있는 예능이다. 하지만 EBS나 기타 대안언론과 달리 예능이 될 수 있었던 필요조건은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독은 방송에서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낼 수 있어서 ‘독했다’. 국정화 교과서가 아닌 다음에야 견해는 서로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사교양 차원에서 공부하는 재미는 있지만 토크쇼 자체로의 꽉 짜인 삼각형에서 오는 긴장감은 둔화됐다. 어떤 말이 나올지 노심초사하는 기대가 재미가 되었던 시절은 개편 후 점점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자극적인, 어쩌면 가장 자극적인 이슈가 가장 필요한 곳이 <썰전>일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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