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집’ 제작진이 재미없는 걸 알면서도 하려던 이야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예능 <비정상회담>의 수다가 예전 같지 않지만 스핀오프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무척 잘나간다고는 할 수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스케줄이라는 문제(혹은 핑계)로 예전처럼 첫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우정을 나누며 함께하는 여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방송 시간도 주말에서 평일로 밀려났고 초반의 열광적인 반응들은 이제 조금은 노력해야 감지할 수 있다. 여행 예능이지만 <꽃보다>시리즈처럼 매회 화제를 불러 모으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세계적 참사였던 네팔 지진의 아픔을 나누고, 왠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족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은 낭만과 떠나고픈 동경을 자아낸다.

다시 이들의 모태인 <비정상회담>의 현재로 돌아가 보자. 외국인이란 특징이 가미됐을 뿐, 완벽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토크쇼는 이런저런 이유로 멤버들이 교체됐다. 생경하고 놀라웠던 이들의 수다가 익숙해지면서 캐릭터쇼에 실금이 가게 됐다. 이제 예전 충성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과론으로 새로운 친구들의 존재감도 캐릭터를 확립한 1기 멤버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 이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로빈이나 블레어 등 전성기 시절 멤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여행이면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부터 좌충우돌하는 맛이 있는 <꽃보다> 시리즈와는 다른 여행 프로그램의 길을 보여준다.

이 여행 예능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인 제작진이 만든 한국 TV쇼에 외국인들이 출연해 또 그들에게도 외국인 곳으로 나가 촬영한다는 데 있다. 여러 시선이 혼재하면서 익숙한 설정 속에서 꽤나 이색적인 볼거리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한국 선수가 속한 팀을 보려고 분데스리가를 구경하고 하이델베르크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 방송다운 관광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일정이 주어진다. 그러나 외국인 여행자들은 이런 설정일지라도 보다 현지화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미덕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대학생처럼 섞여 들어가고, 열렬한 홈 관중이 되어 맥주와 핫도그를 그야말로 들이키면서 대리 체험을 해준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음이나 네이버의 블로그를 보고 여행지 정보를 찾다가 구글과 인스타그램으로 여행지 정보를 얻는 느낌이다.



백미는 친구의 집 방문이다. 꾸며진 가정식, 여행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그 나라의 모습을 만난다. 기묘한 조합의 여행단이 관광과 체험 로컬 라이프를 적절하게 섞여 있는 특이한 여행 예능이 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시선이 혼재하는 여행은 거창하게 세계시민의, 좁게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비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가치다. 독일인이지만 제1도시 뮌헨은 처음 왔다는 다니엘과 폴란드계 미카엘(<냉장고를 부탁해>의 불가리아 셰프), 중국인 장위안, 호주인 블레어는 뮌헨의 첫 번째 여행지로 독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영됐던 최초의 나치 강제수용소 다하우를 찾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약 20만 명이 수용되고 그 중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다하우 강제수용소는 당시 나치의 민낯들을 그대로 보존해서 지우고 싶은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는 독일의 역사관과 시민의식을 마주하는 현장이었다.

유태인 대량 학살이 이뤄진 가스실과 소각장을 둘러보고 모두가 말을 잃었다. 어머니 고향이 아우슈비츠인 미카엘은 착잡해하다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장위안은 “독일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다. 잘못한 것들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있다”며 “이런 용기가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다니엘은 독일이 역사를 반성하고 그런 면들을 다른 나라에서 좋게 보지만 실제로 보니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다.



다니엘은 독일은 역사 수업의 80%가 나치에 관한 것으로 편중해 다시는 이런 집단 광기에 빠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는 노력을 한다고 했고, 블레어는 그래서 역사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미카엘도 최대 피해국이었던 폴란드도 이 시기에 대한 역사공부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했다. 어느덧 관광은 현대사의 아픔을 마주하는 자리가 됐다. 정부 주도로 국정화 교과서를 채택한 나라에서 그것도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독일인들은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늘 마주하며 미래를 다잡는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 친구들의 시선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를 알고, 그를 통해 반복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 이번 독일 여행 편에서 역시나 당연한 글로벌스탠다드한 상식임을 깨닫게 됐다.

우리는 사실상 아무런 이슈가 없는데도 정부가 나서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는 상황이다. 무엇을 가리고 어떤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결국 어떤 역사관을 교육하고 싶은지, 무엇이 잘못되었고 고치겠다는 것 역시 없어서 아무도 모른다. 현재 정치적 기득권이 논란의 역사의 승자인 역사적 맥락상, 독일처럼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경험상, 새로운 교과서의 완성도와 수준을 논하기 앞서 독일의 역사 교육과는 대척점에 서는 교육 정책임은 틀림없다. ‘노잼’임을 강조하며 기대치를 최대한 떨어뜨린 이번 여행에서, 예능에서, 외국인 방송인들은 다시 한 번 우리와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생각하게 했다. 우매한 대중문화라던 예능이 이제 여기까지 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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