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자리를 잃고 있는 기존 예능인들을 위한 조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올해는 유난히 예능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예능이 위기인가? 절대로 아니다. 예능은 한류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며, 2000년대 중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개념과 장르를 확장하며 방송가 제1의 콘텐츠로 승승장구 중이다. 다만, 방송가 내에서 정신없이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시점인 거다. 더 높은 곳을 가야 하는데, 새롭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새로움으로 가는 힌트가 과거의 경험과 문법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불안 증세다.

이번 주 가장 회자되는(연애 뉴스 말고) 연예인은 단연 돌아온 ‘예능 대부’ 이경규다. <무한도전> ‘예능총회’에서 보여준 원맨쇼에 시청자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숱한 명언과 ‘버럭’ 개그로 좌중 및 시청자들을 초토화시킨 그의 말에는 예능 및 예능인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었다. 이것이 ‘버럭’이 짜증으로만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이런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이경규의 시대가 열리리라는 보장은 없다. 솔직히 노를 저을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송 말미에 이런 식이면 패널로 돌아서겠다는 35년차 예능인 이경규의 멘트는 ‘대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씁쓸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블랙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예능에서 게스트가 아니라면, 그런 톤과 태도로 매주 방송을 할 쇼 자체가 없다. 리얼리티쇼에서는 지속가능성의 문제와 체력이, 스튜디오 토크쇼에서는 진행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 통했던 버럭 코드는 화려한 불꽃처럼 일회성에 가깝다. 이런 판을 위해서 다시 몇 년을 장전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공감대를 유지할 정서적 유대가 뒷받침되지 않는 토크나 코미디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웃음만을 추구하던 예능인들이 더욱 피곤해진 이유다.



예능 자체의 영토는 확장되고 위상 또한 그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지만 웃음이 재미의 제1 가치가 아닌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정서, 정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 등이 웃음보다 앞서거나 웃음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는 예측이 아니라 정리다. 2015년 방송가를 주름잡았던 백종원과 자리를 잃고 있는 기존 예능인들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라디오스타>에는 예능대상에 빛나는 김구라가 있다. 지난해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대상 수상은 ‘독설’이란 당시 실험적인 캐릭터와 특성을 진행자의 역량과 방식으로 끌고 온 것의 결실로 해석할 수 있다. 삐딱한 자세로 찡그린 그의 포즈는 여전히 일부 비호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웃음 펀치를 날리는 역할에서 진행의 영역으로 안착했다는 점이다. 이경규의 ‘버럭’과 박명수의 ‘엉뚱, 호통’이 여전히 파워풀하지만 타율은 낮아진 2015년 나바로 스타일 거포의 타격이라면, 김구라는 꾸준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2014년 서건창 수준의 테이블세터다운 기교를 갖춘 것이다.

김구라는 하니를 맞이하면서 <라스>는 열애설을 언급 안 해도 될 만큼 자신 있는 쇼라고 말했다. 비록 개인기와 재밌는 에피소드 청하기, 노래자랑 등으로 늘어난 방송분량을 채우긴 하지만 바로 이런 자신감과 남들과 다른 색깔이 <라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정체성이다. 물론, 결국은 하니에게 많은 걸 물어봤지만 이 쇼만큼 솔직하게 말하도록 편안하게 무장해제 해주는 예능은 없다. 그 방식은 방송스럽지 않게 꾸미지 않는 태도다.



이것은 진행을 맡은 김구라 캐릭터의 고유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출연하지도 않은 윤정수를 놓고 연예계 데뷔 이전 가라오케에서 일했다고 쓱 폭로하고, 하니와 김준수의 연애를 미끼삼아 규현과 김국진을 함께 걸고넘어진다. 김준수의 방송활동과 관계있는 SM 소속의 규현을 난처하게 만들고, 김국진에게는 잘못된 거 아니라며 시상식에서 강수지가 식사하자는 데 너무 곁을 주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톱스타들의 연애 뉴스도 다루기 벅찬데, 여기다 SM을 엮고 강수지를 얹는 것이 독설에서 진화한 김구라만의 영역이다.

연초에 나타난 예능의 앞날, 예능인들의 고민은 어쩔 수 없이 예능 안에서 찾고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 당장의 답이 될 순 없지만 근본이 되는 길은 김구라의 사례처럼 자신만의 고유의 캐릭터를 갖추는 것이다. 연기로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한 황제성이 <라스>에서 시종일관 곤혹을 당하며 웃음사망꾼이 됐다. 이 또한 캐릭터를 잡아준 제작진의 노력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희극배우이기에 안타까웠다. 그는 ‘정서’를 아는 희극배우다. 자신이 연기하는 찌질하고 엉뚱하며, 재치 넘치는 캐릭터를 토크쇼에서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함께 출연한 김숙은 쇼와 실제의 괴리가 없다(시청자들은 없다고 받아들인다). <님과 함께 시즌2>와 <무도>와 <라스>의 캐릭터가 같다. 채널도 방송국도 다르지만 김숙은 똑같은 모습으로 통한다. 이는 다작을 하고 있는 김구라도 마찬가지고, ‘깐족’ 캐릭터로 밀고 있는 윤종신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대일수록 예능인은 에피소드와 개인기에 의존하는 감초 역할을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갖춰야 한다.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 혹은 본인의 일상(이른바 방송답지 않은)과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 일상이 묻어나고 가치관이 동반되어야 한다. 과거를 안타까워만 해서는 웃음으로 돌아가려고 해서는 답이 없다. 출발은 여기부터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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