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어째서 과거를 되돌려도 씁쓸해지는 걸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뀐다.’ 이 명제만큼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을 보는 시청자들을 집중시키는 건 없다. 연쇄살인사건, 권력형 비리사건, 그리고 덮여지는 미제사건, 그 와중에 생겨나는 억울한 희생자들. 시청자들은 아마도 과거 뉴스를 통해 보면서조차 깊은 트라우마로 남겨졌던 우리 사회의 믿기지 않은 사건 사고들을 새삼 떠올릴 것이다. 그저 묻혀져 지워져버린 기억처럼 여겨졌던 그 사건들은 <시그널>의 그 신호음을 타고 다시금 되새겨진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를 바꾸어 현재를 바꾼다는 <시그널>의 판타지에 빠져든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무전기를 통해 과거의 형사인 이재한(조진웅)과 공조해 미제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 현재의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은 그래서 누구보다 더 절실해진다. 유일하게 과거와 연결될 수 있고 그 과거를 바꿔 현재 또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가 아닌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더 큰 희생을 막을 수도 있고 억울한 희생 또한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은 그의 무전을 통한 수사를 더 절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실제로 미제사건 몇 개를 그는 해결한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를 바꾸거나 혹은 미제사건을 해결해도 어딘지 마음 한 구석에 남는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바꾸려 해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권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법 정의다.

대도사건의 진범이 재벌가의 자제라는 것을 밝혀내고 검거하는데 성공하지만 고작 한 달도 복역하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그 대도사건으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오인되어 체포된 한 평범한 서민은 그 과정에서 갑자기 벌어진 대교 붕괴 사고로 딸을 잃는다. 결국 대도사건의 진범은 체포되고 풀려나게 되지만 그는 딸 대신 구해진 다른 여자의 아버지를 칼로 찌르는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다.



이재한 형사가 박해영에게 지금 현재는 과거와 달라졌는가를 묻는 대목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가진 자는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아가는데 못 가진 자들은 무고함에도 엄청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권력 시스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재한 형사는 분노한다.

사실 <시그널>에서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차수현(김혜수)이 중도에 사망하는 장면은 충격적인 이야기의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타임 리프라는 설정이 담겨 있고 그래서 그녀가 다시 과거를 되돌려 살아나리라는 것은 시청자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또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중도에 여주인공을 죽였다 살리는 이야기에서 <시그널>은 전혀 호들갑을 떠는 법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담담하다.

그저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과거의 대도사건 진범을 잡는 이야기를 보여준 후 차수현을 되살려놓는다. 왜 그랬을까. 보통의 드라마라면 차수현이 되살아나는 그 상황을 엄청난 반전인 양 주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대도사건이 해결되고 차수현이 살아 돌아와도 드라마의 기조는 쓸쓸하다.



그리고 박해영은 돌아온 차수현에게 과거와 연결되는 무전기가 있다면 어떨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고는 그렇게 과거를 바꾸는 일이 회의적이라는 걸 털어놓는다. 그것은 과연 과거를 바꾸면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과거를 바꿔도 바뀌지 않는 현재가 있다는 것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처음에는 그 무전기의 판타지에 절절해졌던 시청자들의 마음은 그래서 그 과거를 바꾸는 일의 무서움을 느낀 후,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으로 돌아온다. 드라마 한 편이 이토록 깊이 있게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들춰내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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