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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이렇게 따스함이 깃든 드라마, 참 오랜만이다
기사입력 :[ 2016-04-14 16:55 ]


‘욱씨남정기’, 현실에 지친 어른들 위한 유쾌한 판타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지난 2000년 개봉한 영화 <박하사탕>의 남자주인공은 철교 위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하지만 2016년 현재를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 아니 평범보다 조금 더 소심한 남자인 러블리 코스메틱의 과장 남정기(윤상현)는 옥상 끄트머리에 서서 속으로 웅얼거린다.

“결국 이 길 뿐인가?” (남정기)

남정기 과장의 속삭임은 사실 남녀불문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을들의 웅얼거림이기도 하다. 갑 앞에 당당하고, 마음에 안 드는 조건에 이의를 제기하고, 굽신굽신 숙이는 대신 뻣뻣하게 턱을 치켜들고 부조리를 따지고 싶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릿속으로 당당한 을을 상상한들 현실은 늘 이 길뿐인데.

더구나 소심한 남정기 과장은 이 소심함 때문에 갑에게만이 아니라 같은 동료에게도 늘 무언가를 빼앗기는 남자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허브 세럼의 공을 고스란히 후배가 가로채 남정기의 상사로 등극할 정도다. 이 소심한 남정기에 대해 혀를 끌끌 차기엔 우리들의 입이 좀 쓰다. 사실 대범함을 꿈꾸지만 은근 모범국민으로 성장해 온 우리들 대부분은 남정기처럼 납작 살아가는 것이 체질화되지 않았나. 더구나 우리가 힘을 내서 모든 걸 박차고 나온 순간 줄줄 딸린 식구들은 또 어쩌고?

하지만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는 을을 다루지만 꿉꿉한 을의 삶을 현실감 있게 날 것으로만 보여주는 드라마는 아니다. <욱씨남정기>는 우리가 늘 상상하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법한 시원시원한 을의 반란을 드라마로 보여준다. 납작한 을이 아니라 치받는 욱이 되는 그런 반란 말이다. 그러려면 미지근한 쓴 물 같은 현실을 달콤한 탄산음료처럼 톡 쏘게 만드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예쁘고 잘생긴 남녀의 연애담을 위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지친 우리 어른들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그런 생활밀착형 판타지 말이다.

이 판타지를 위해 킬힐을 신고 냉랭한 표정으로 걷는 여인 욱씨, 본명은 옥다정이지만 일명 욱하는 성미의 욱다정(이요원)이 필요하다.



“자존심이냐, 밥그릇이냐는 그렇게 풀 문제가 아니지.” (욱다정)

욱다정은 러블리에 하청을 주는 황금화학의 팀장이다. 그것도 수많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내며 보통 팀장이 아닌 황금화학 창사 이래 초고속 승진한 인물 중에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놓고 갑질하는 황금화학의 상무 김환규(손종학)와는 좀 다르다. 그녀 자신이 황금화학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더 이상의 승진이 힘든 상황이요, 상사의 뻔뻔한 갑질에 그대로 순종해야만 하는 멍멍이 같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금화학에서는 그녀의 초고속 승진에 대해 소파승진 운운하며 이런저런 뒷말이 떠돈다.

그녀는 갑도 아닌 을도 아닌 그 경계에서 타인의 질시를 받으며 킬힐을 신고 위태위태, 하지만 도도한 표정으로 걸어야만 하는 인물인 셈이다. 드라마는 이 욱씨, 욱다정에게 지랄 맞은 성격과 그러면서도 냉정한 상황 판단 능력과 담대한 결정력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 욱씨가 러블리의 소속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비록 판타지지만 현실감 있는 을의 반란기를 그려낸다.

<욱씨남정기>는 갑의 세계에서 킬힐을 신고 또각또각 을의 세계로 건너간 욱다정이 능력 있는 을인 러블리의 자사개발품 ‘토닥토닥’ 화장품을 런칭해 성공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리고 욱다정은 기존의 을들이 상상까진 했으나 차마 실천 못한 방법들로 수많은 위기를 헤쳐 나간다.

예를 들어 욱다정에 앙심을 품고 러블리를 좌지우지 하려는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와의 대결이 그렇다. 러블리와 모든 하청계약을 끊겠다는 선언에 목숨줄이 끊긴 듯 우왕좌왕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욱다정은 남자사우나 안에서 알몸으로 있는 김 상무를 대뜸 찾아간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러 왔냐는 상무의 말에 특유의 당당한 말투로 대답한다.



“꿇으러 온 게 아니라, 끊으러 온 겁니다. 해 보려 온 게 아니라 안 하려 온 겁니다.” (욱다정)

하지만 아무리 잘난 욱다정도 을의 현실을 딛고 단번에 성공하기는 힘든 법이다. 갑과 을 사이에는 관행이란 말로 굳어져 온 수많은 부조리들이 가시밭길처럼 펼쳐져 있으니까. 더구나 을의 회사 러블리 내에서도 을끼리의 갑질 또한 벌어지는 상황이다.

흥미롭게도 <욱씨남정기>는 욱다정이 부조리한 관행과 싸우며 을의 회사 러블리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성장담을 보여준다. 그건 악착같은 기질로 황금화학에서 살아온 유아독존 욱다정이 하청업체 러블리의 ‘소심이’에 ‘투덜이’지만 알고 보면 순둥이인 을들과 연대하며 한 단계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들이다. 이 과정을 통해 러블리의 순둥이 을들은 서서히 자존감을 찾아가고 욱다정은 잃어버린 행복한 미소를 서서히 되찾는다.

이 성장담에는 우리가 언젠가부터 잊어버린 함께하는 사람들 간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마침 러블리에서 런칭한 화장품의 이름은 토닥토닥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토닥토닥은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위로가 된다. 더불어 억지로 만든 극적 상황들을 보며 불안함에 가슴이 쪼들리거나 황당한 교통사고나 기억상실 장면에 어이없어 웃는 헛웃음 없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시간이 금방 흘러가는 생활밀착형 판타지드라마, 참 오랜만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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