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피릿’, 걸그룹을 가수로 존중해주는 쇼가 등장했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교석·이승한 세 명의 TV 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로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가 선보이는 새 코너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가 야심차게 선보인 두 개의 걸그룹 예능 중 첫 타자였던 <잘 먹는 소녀들>이 너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붕괴한 이후, 두 번째 타자인 <걸스피릿>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2회까지 방영된 지금 시점에 보면, 우선 첫 단추는 잘 끼워서 <잘 먹는 소녀들>로 구긴 체면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교석 평론가는 <걸스피릿>을 헬조선 시대를 사는 청년세대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캔디 예능’으로, 이승한 평론가는 일터에선 일로만 평가 받고 싶은 시대의 욕망을 대리하는 쇼로 분석했으며, 정석희 평론가는 패널들을 옥에 티로 지목했다.



◆ 헬조선 시대의 아이돌 생존기

새로운 아이돌 장르가 열렸다. 꿈 하나를 위해 꿋꿋하게 버텨내는 이른바 2016년 판 캔디 콘텐츠다. 새롭게 시작한 <걸스프릿>은 <프로듀스101>과 마찬가지로 형식은 서바이벌 쇼이자 음악 예능이지만, 주인공은 눈물을 딛고 올라서는 성공 스토리다. 꽃길을 걷기 위해 쏟아야 할 눈물이 같은 또래 청춘들에게는 공감대를, 삼촌 팬들에겐 안쓰러움을 자극하는 이른바 ‘짠내’ 콘텐츠다. 어렵고 힘들게 10년, 9년, 7년씩 화려할 내일을 위해 오늘의 자신을 담금질하는 연습생 신분을 거쳐 데뷔하고, 또 다시 거친 경쟁과 낮은 생존확률을 버텨내야 하는 아이돌 생태계는 우리네 청년들의 삶과 닮아 있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취업준비생 시절을 지나 성에는 안 차지만 겨우 어떻게 취업을 하긴 했는데, 그 이후의 미래는 더 막막한 거와 같다. 이런 아이돌 소녀들에게 보이는 삼촌팬들의 측은지심은 롤리타 신드롬의 포장재가 된다. <소년24>는 실패를 하고 <걸스프릿>과 IOI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까닭은 프로그램의 만듦새나 개개인의 매력 문제가 아니라 캔디 역할에는 ‘소녀’들이 보다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쁘다거나 어떻다는 가치판단을 하자는 게 아니다. 엄연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날 아이돌은 우상이 아니라 힘든 우리네 청춘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쏟아지는 포화된 시장에서 더 낮아진 성공 확률이 의미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와 좌절이다. 그래서 어떤 계산을 하고 나왔든 <걸스프릿>과 같은 재기의 발판은 언제나 환영이다. 단, <강심장>의 붐, 이특을 보는 듯한 진행만 빼고. 이 쇼가 음악 예능으로 추구해야 하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소녀들의 눈물이 때로는 불편할지라도, 실패해도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무대가 우리 현실에서도 더욱 많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 인성 말고 외모 말고 일로 존중 받고 싶은 꿈

세상 어느 직업에 그런 면이 없으랴마는, 걸그룹이란 직종은 참 희한하다. 짧게는 2년 길게는 9년까지도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춤과 노래, 연기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고 심지어는 자살방지교육까지 받아가며 데뷔를 하는데, 정작 데뷔한 이후에는 영 엉뚱한 것들로 평가받지 않나. 애교나 섹시 댄스, 개인기 따위로 평가받는 건 차라리 낫다.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 안 한다더라, 팬들에게 퉁명스럽게 굴었다더라, 학창 시절에 이랬다더라 따위의 각종 뜬소문을 포함한 인성 평가부터 시작해, 음식을 깨작거리며 먹는 게 보기 안 좋더라, 방송에서 자주 우는 게 보기 안 좋더라는 뜬금없는 평가까지, 온갖 것을 이유로 평가와 훈수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직종이 걸그룹이다. 하긴, 앞서 얘기한 것처럼 요즘 세상 어느 직업이 안 그렇겠나. 극장 매표소 아르바이트생에겐 안경도 쓰지 말라고 하는 마당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일단 내가 하는 일로라도 제대로 평가 받을 수는 없는 걸까. 서툰 MC나 그 효용성보다는 아쉬움이 더 큰 몇몇 구루들의 존재를 감안해도, <걸스피릿>은 일하는 사람이 일로 존중 받을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대리 충족시켜주는 쇼다. 적어도 여기에선 한국 사회가 여성 아이돌에게 강요하는 불합리한 요구들이 아니라 가수의 본질인 노래로만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참가자 사이의 신경전이나 라이벌 구도도 결국 얼마나 노래를 잘 하는지에 집중되어 있고, 서로에 대한 견제와 평가 또한 오로지 무대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비로소 걸그룹을 가수로 존중해주는 쇼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절절한 참가자, 겉도는 오구루

MBC <복면가왕>은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깨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 우승자 EXID 솔지를 필두로 여러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가창력을 입증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아이돌이라면 대번에 립싱크를 떠올리던 어른 세대에게 그들의 기성 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길어야 1분 남짓, 짧게는 10초 안팎으로밖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그들. 게다가 ‘귀엽거나 섹시하게’로 포장된 걸 그룹들의 경우 노래 실력은 뒷전일 때가 태반이지 않나.



이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JTBC 아이돌 보컬 리그 <걸스피릿>이 시작됐다. 1회 조 편성 사전공연에 이어 2회에는 A조 6명의 개인 공연이 펼쳐졌는데 이번에야 비로소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된 멤버도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노래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눈물짓는 CLC 오승희, 절절하니 공감이 가는 가사로 1위를 차지한 소나무의 민재. 이들의 진심을 다한 노래를 듣고 있자면 이 프로그램이 잘 되고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긴급 수술을 요하는 부분도 있다. 자칭 ‘현자’라 일컫는 ‘오구루’, 특히나 그 중 최근 연예계로 복귀한 탁재훈은 물에 동동 뜬 기름처럼 겉도는 존재다. 관심도 없고 성의도 없고. 하나 더 보태자면 가창력을 평가하는 자리에 립싱크를 일삼았던 인물이 과연 앉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나아가 경연에 나선 아이돌들의 선배인 오구루에게 부탁 좀 하자. 제발 후배들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 다리 꼬고 듣지 말아 주세요.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