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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시간’, 차마 강동원을 아동성애자로 볼 순 없기에
기사입력 :[ 2016-11-29 11:24 ]


‘가려진 시간’, 굳이 이렇게 판타지를 난도질하는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의 만듦새에 대한 평가는 대략 일치한다. 기존 한국영화가 시도하지 않는 판타지 장르를 표방한 점이 신선하고, 두 배우의 매력을 잘 살렸다는 장점을 지니는 반면, 중반이후 전개가 늘어지면서 지루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판타지를 활용하여, 멈춰진 시간 속에서 홀로 나이를 먹은 소년과 유일하게 그를 알아보는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담는다. 감독은 영화의 주제가 ‘믿음’이라고 강조한 바 있고, 세월호 사건이 연상된다는 질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았을 수 있다며 모호한 긍정을 표하였다. 더욱이 강동원·신은수라는 두 배우의 비주얼과 판타지적인 영상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런 영화를 보고, ‘아동성애’ 따위의 추잡한 혐의를 들먹이는 건 외람되다. 물론 영화 안에 ‘아동성애자’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하여 세상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오해로 제시된 게 아니던가. 감독 역시 영화가 아동성애를 떠올리게 한다는 질문에 대해 의도와 달라 당황스럽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영화 <가려진 시간>에는 차고 넘칠만한 아동성애의 코드가 담겨있다. 감독도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세월호 사건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동성애 코드는 대단히 의식적으로 들어가 있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감독은 관객에게 얄궂은 게임의 패를 던지는 듯하다. 요컨대 감독의 부인은 ‘전략적 시치미’로 보인다.



◆ <이상한 나라의 폴>을 아시나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여담 한마디. ‘시간의 멈춰짐’이란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텍스트는 뭘까. 한국에서 1977년부터 TV를 통해 여러 번 방영되었던 <이상한 나라의 폴>이 아닐까. 시간이 멈춰진 상태에서 4차원의 세계로 간 폴이 니나가 잡혀있는 대마왕과 싸운다는 그 애니메이션 말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도대체 왜 니나는 대마왕에게 잡혀갔을까. 이웃에 사는 부잣집 딸 니나는 현재 실종상태다. 니나가 대마왕에게 잡혀갔음을 아는 유일한 인물인 폴은 자신의 봉제인형이 열어주는 차원의 문을 통해 대마왕이 지배하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자신이 가진 장난감을 활용해 싸운다. 하지만 늘 승리의 직전에서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이러한 싸움은 매회 반복된다.

대마왕은 어떻게 생겼는가. 뿔이 나 있고, 근육질에 상반신은 물론 골반의 일부까지 드러난 나신이다. 남근이 드러나기 직전 상태인 대마왕의 모습에서 폴에 의해 잘린 뿔은 혹시 남근의 상징이 아닐까. 뿔이 잘린 대마왕의 하수인은 왜 하필 버섯동자일까.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폴과 니나가 함께 놀고 있을 때, 아동성애자인 무서운 아저씨가 니나를 잡아갔다. 폴은 단순히 목격자일 수도 있고 함께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소년이었을 수 있다.

니나의 부모와 경찰 등이 사건에 대해 추궁한다. 폴은 자신이 니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당시의 무력감과 공포에 시달린다.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려서 당시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는 니나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대마왕인 소아성애자를 무찌르는 환상에 빠져든다. 자신의 요요로 그의 남근, 아니 뿔을 자르는 상상을 하며 니나가 여전히 실종상태인 세상에서 자신을 엄습해오는 불안과 싸우는 중이다. 다른 아동용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달리 <이상한 나라의 폴>의 분위기가 유난히 음울하고 무거웠던 것은 기이하게 숨어있는 죄의식과 소아성애의 섹슈얼리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제 <가려진 시간>을 들여다보자. 영화는 임상 심리학자(문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고, 마지막에 책을 건네주러 온 그를 담는다. 즉 임상 심리학자가 소녀를 인터뷰하여 책을 쓴다는 설정을 액자형식으로 삼는다.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배우를 쓴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유일하게 소녀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그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사람. 그는 소설가가 아니라 임상심리학자이다. 그렇다면 그 책은 어떤 책일까.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임상 심리 사례집이다. 즉 책은 소녀의 망상에 대한 보고서이다. 애초에 영화는 이 이야기가 소녀의 망상이었음을 영화적 장치로 추인하고 있다.

영화는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대비시키며, 두 세계를 긴장관계로 설정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판타지의 세계는 모호하게 그려진 반면 현실의 세계는 훨씬 구체적이다. 가령 시간이 멈춰진다는 것은 굉장히 스케일이 큰 판타지이다. 이렇게 큰 ‘구라’를 치려면 나름 정교한 규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 아이들이 전해 들었다는 ‘보름달, 요괴알, 시간을 먹는 요괴’ 등이 전부다. 설정에 대한 규칙이나 연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언제 멈추어진 세계가 다시 움직이는지,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면 그 속도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등이 모두 희미하게 처리된다. 멈춰진 세계에 대한 상상도 단편적이다. 가령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두 사람이 15년간 섭취할 수 있는 약 3만 2천 끼니의 식사가 완성된 형태로 있어야 되는데, 한국에서 인구가 3만 2천명 이상이면서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은 제주도뿐이다.

이는 옥에 티를 잡아내려는 트집이 아니다. 영화 속 판타지가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어린이적 공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화노도의 ‘화노’는 감독의 말에 따르면 ‘노화’를 뒤집은 말이지만, ‘화노’는 무궁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아이들 놀이가 연상되는데, 술래가 뒤돌아보는 순간에 재빨리 움직이고 다시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니까 ‘화노도에서 시간이 멈추었다’는 판타지는 어린이 놀이적 상상으로 빚은 판타지이고, 영화는 이런 유아적인 판타지에 대한 임상 기록인 셈이다.



◆ 판타지는 허술하고 현실은 구체적이라면?

영화 <가려진 시간> 속 판타지가 허술한 것에 비해 현실에 대한 묘사는 훨씬 견고하다. 재개발 발파공사라는 것도 현실적이고, 이를 구경하러 간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연기도 지극히 사실적이다. 아이들이 실종된 이후 마을 사람들과 경찰, 언론의 대응도 대단히 구체적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실종을 둘러싼 현실사회의 반응을 개연성 있게 그린다. 스톡홀름 증후군, 공상 허언증, 아동성애, 납치, 협박 등 사건에 대한 해석을 담은 말이 대사로 제시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아무도 믿지 못하는 둘만의 진실이 있다고 소녀는 말한다. 자 여기에서 관객은 영화를 통해 보았으므로, 이들의 진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함께 산에 올랐던 네 명의 아이들이 발파작업과 함께 실종되었다. 한명은 살아 돌아왔으며 한명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온 마을이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살아 돌아온 수린(신은수)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영화 시작 40분 만에 등장한 강동원에 관객들은 반색했지만, 사실 이 장면은 굉장한 공포를 담고 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린 성인 남자가 6학년 소녀의 집 주위를 맴돌다가 밖으로 나온 소녀에게 순간 다가간다. 갑자기 놀라 소리 지르는 소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뒤에서 껴안는다.

물론 관객은 강동원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안도한다. 아름다운 얼굴에 주연배우로 알려진 인물의 출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실종된 성민이라 말한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둘만 아는 비밀 문자로 “네가 동굴로 다시 들어간 뒤 우리한테 이상한 일이 생겼어”라는 장문의 글이 쓰여 있다. 그러니까 영화 속 판타지 장면들은 그가 쓴 비밀 노트를 읽고, 수린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이다.



수린이 그를 성민이라고 믿게 된 단서는 비밀 노트와 비누조각이다. 이것은 결정적인 단서일까? 수린이 다른 친구에게 성민의 존재를 알리려고 노트를 보여주자, 친구는 “이거 다 네가 쓴 거잖아?”라며 내동댕이친다. 영화가 판타지 세계에 대한 객관성을 주장하려면 성민이 수년에 걸쳐 썼다는 기록을 중요한 물증으로 삼았어야 옳다. 그러나 그 기록은 형사나 심리학자의 손에 닿아보지도 못하고 단 한 장면 출연한 초등학생에 의해 허무하게 폐기된다. 판타지 세계의 실존을 주장하고픈 마음이 없는 것이다.

비누조각은 어떨까. 성민이 폐가에서 만들었던 비누조각이 노트에 적힌 대로 오르골에서 발견되자, 수린은 노트에 적힌 모든 말을 믿는다. 그런데 성민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폐가에 머물며 거대한 비누 부조를 만들었다. 형사(권해효)는 이를 보고 “이 새끼, 아동성애자야”라고 말한다. 비누조각이 수린에게는 성민임을 믿게 한 단서이고, 형사에게는 아동성애를 암시하는 단서가 된 셈이다. 그런데 본래 그 폐가는 은퇴한 조각가의 작업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런 상상은 어떨까. 폐가의 원래 주인인 조각가가 두 사람을 엿보거나 성민의 비누조각을 발견하고 수린에 대한 욕망을 키워왔다면? 아니 아예 소년 성민은 존재하지 않았고, 성인 성민을 만난 후 수린의 마음속에서 재구성된 것이라면?



◆ 외로운 소녀의 망상

영화에서 판타지는 허술하고, 현실은 구체적일 때 무게중심은 현실로 기운다. 따라서 영화에서 가장 현실 논리를 대변하는 형사의 말을 ‘각박하고 오염된 어른들의 말’로 치부하며, 수린과 성민만 아는 진실이 진짜라며 시치미를 뗄 수가 없다. 영화는 형사의 입을 통해 드러내듯이 분명한 소아성애의 코드를 지닌다. 성민과 수린에 대한 설정도 이러한 상상을 뒷받침한다. 성민은 고아이다. 즉 그를 증명해줄 가족이 없다. 보육원 원장은 성민을 보고 경악할 뿐이다. 성민이 하필 고아라는 설정은 그에게 현실세계의 끈을 더욱 희미하게 만든다.

수린은 타지에서 전학 온 소녀로 의붓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자주 집을 비우는 의붓아버지 역할을 그동안 주로 악역을 맡아왔던 김희원이 맡은 것도 기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소녀는 실종사건 이전에도 혼자만의 판타지에 빠져 비밀문자를 쓰고 미스터리 블로그를 운영한다. 사건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들 부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요컨대 수린은 외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로, 소아성애의 대상이 되거나 망상이 주입되기 쉬운 여건에 놓여있다. 더욱이 이제 막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진입하는 13세라는 나이가 얼마나 상징적인가.

요컨대 의붓아버지와의 성적 긴장을 느끼며 혼자만의 판타지에 빠져 사는 수린에게 스스로 소년이라 말하는 성인남성이 접근한다. 첫 만남은 굉장한 공포로 다가왔지만, 이후 둘의 관계는 얼추 평등해진다. 수린이 성민의 머리를 잘라주고, 옷을 골라주며, 자신의 방에 들여 손을 잡고 잔다. 영화는 수린을 의젓하고 능동적으로 그린다. 그에 비해 성인남자 성민의 행동은 훨씬 소심하고 유약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도망치자”는 말에서 보듯이 둘의 관계가 객관적으로 납득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에서 판타지의 시작은 ‘알을 깨는 것’ 이다. 이는 자신이 갇힌 세계를 깨는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금기를 파기하는 것을 암시한다. 성민이 수린의 방에서 손을 잡고 잔 장면에 뒤따르는 아버지에 의한 감금과 그것을 부수고 들어간 성민에 의해 방바닥에 난 선명한 성인 발자국과 수린이 성민의 옷을 입는 것도 섹슈얼리티적 암시이다. 사실 성민의 외피가 젊은 강동원인 것도 수린의 망상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에 수린이 다시 만났을 때 성민은 중년이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서사에 의해, 세상의 오해에 내몰려 도망치던 성민이 자신도 성민처럼 나이 들기를 원했던 수린을 대신하여 다시금 자신이 고독의 시간을 견디고 재회한 감동적인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장면을 다시 곱씹어보면 전혀 달리 읽힌다. 마지막에 절벽에서 수린이 형사와 성민 사이에 매달려 있던 장면은 수린이 치료의 어느 결정적인 시기에서 현실인식과 망상의 갈림길에 놓여있었음을 말해준다. 이 장면에 이어 심리학자와의 면담이 마무리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이 모든 것을 그냥 ‘네가 편해지기 위해 협박당한 것으로 하자’는 형사의 현실적 타협안을 수린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처리한다. 이는 곧 망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면서 치료가 일단락되었음을 말해준다. 이제 중학생이 된 수린의 눈에 그는 중년의 강동원으로 보인다. 즉 완전히 콩깍지가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아주 약간의 현실인식이 들어선 것이다.



◆ 어떤 망상은 위험하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소아성애라는 대단히 위험한 금기를 다루면서, 강동원과 신은수라는 아름다운 배우와 환상적인 영상으로 버무린다. 그 결과 어른들은 모르는 둘만의 사랑이라는 아동문학적 정서가 담뿍 담긴다. 하지만 그 모든 외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켜켜이 쟁여 넣은 소아성애의 코드는 가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가 제시하는 ‘순수한 사랑’을 그대로 믿어주면 안되나? 굳이 이렇게 판타지를 난도질해야 할까. 물론이다. 소아성애를 소아성애라고 말하지 못하고, 딴청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소아성애를 받아들이는 소녀의 주관적 망상이 되었든, 성인남성이 주장하는 기이한 판타지가 되었든, 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무의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 영화 전체에 스민 망상을 끄집어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를 길라임이라 부르는 어떤 사람, 남들은 손가락질 하는 아버지뻘의 남자와 둘만의 순실한 사랑에 빠진 그 어떤 사람의 필생에 걸친 주관적 망상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는지 절감하고 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가려진 시간>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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