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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도, ‘역도요정’엔 느긋하지만 알싸한 맛이 있다
기사입력 :[ 2016-12-15 11:57 ]


시청률 포기하고 풋풋한 ‘스웩’을 살려낸 ‘역도요정’의 선택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엄밀히 말해 MBC <역도요정 김복주>가 체급조절에 실패한 드라마라는 건 틀림없다. 역도 밖에 모르는 운동선수로 자란 한얼체대 스물한 살 김복주(이성경)의 풋풋한 첫사랑을 담은 이 작품은 4부작 정도의 이야기에 담으면 딱 깔끔할 법한 상황을 그려낸다.

복주는 비 오는 날 자신에게 우산을 빌려준 듬직하고 자상한 남자 정재이(이재윤)에게 반해 버린다. 복주는 정재이가 비만클리닉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그곳에 등록한다. 먹는 거라면 물불 가리지 않던 스물한 살 소녀가 사랑 때문에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살을 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늘 씩씩하던 이 소녀가 짝사랑하는 의사 앞에서 수줍어하고 민망해하고 그러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결정적으로 내가 반하게 된 건 너 이 대목이 진짜 중요하다. 바로바로 자상함. 머리털 나고 그렇게 매너 좋은 남자 처음 봤다. 가식이 아니라 원래 성품이 그런 거 있잖아. 선생님하고 같이 있잖아. 그럼 내가 아주 예쁜 여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김복주)

한편 여기에 다른 사랑의 플롯이 살짝 얹힌다. 복주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정재이의 동생인 한얼체대 수영선수 정준형(남주혁)과의 투닥투닥하는 관계가 그렇다. 우연히 대학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준형은 복주를 그때 별명 그대로 ‘뚱’이라고 부르며 놀려댄다. 하지만 준형은 역기가 아닌 첼로를 드는 음대생으로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형을 짝사랑하는 복주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준형은 자기가 복주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한얼체대를 배경으로 풋풋하면서 땀내 밴 체대생들의 첫사랑을 담은 <역도요정>은 앞서 말한 대로 단막극이나 4부작 미니드라마에 담아내도 충분히 여운이 남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만이 아니라 짤막하게 등장한 그 주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고 보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 곁가지라 할지라도 그 곁가지들을 천천히 훑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은 더디게 흘러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희한하게도 MBC <역도요정>은 일부러 작정한 듯 이런 곁가지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한얼체대 리듬체조부와 수영부, 역도부의 소소한 사연들까지 다 알게 된다. 거기에 복주와 복주의 친구인 이선옥(이주영)과 정난희(조혜정)간의 자잘한 우정의 에피소드나 이들끼리의 자잘한 감정의 갈등까지 잡아낸다. 한얼체대 내에서도 힘만 쓰지 서열의 힘에서는 밀리는 역도부의 지질한 사연들 또한 드라마의 한 축이다.

리듬체조 선수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역도 여자선수들의 상황, 지원금이 줄어 회식도 제대로 못해 풀 죽은 역도선수들의 에피소드가 줄줄이 이어진다. 선수들만이 아니다. 이혼 후에 술 먹고 역도부실에서 그냥 잠을 자는 윤덕만(최무성) 교수. 그런 교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역도부 코치 최성은(장영남)의 사연까지 이 드라마에서 일정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뿐인가. 과거 역도선수로 빛을 보지 못해 역도선수 딸에게 모든 기대를 거는 치킨집 사장 김창걸의 이야기까지 제법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일반적인 로맨스물과 달리 <역도요정>은 드라마의 중심인 로맨스가 있고 곁가지가 소소한 충전재 역할을 하는 작품이 아니다. 일상의 사연들이 있고 그 사이에 약간의 비중이 더 있는 여주인공의 로맨스가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역도요정>은 그 일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힌 다양한 사랑이란 감정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물론 여기서의 사랑은 좁은 범위인 남녀만의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믿음과 존경 같은 사랑, 친구들 사이의 투덕거리는 사랑, 한 배를 탄 동료들끼리의 미운 정 같은 사랑, 낯선 사람과 낯선 사람 사이에 잠시 느껴지는 설렘 같은 사랑. 사랑이란 단어의 넓은 범위 안에 포함되는 사람과 사람 간의 따스한 순간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남녀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해야 스피드가 붙는 드라마의 일반적인 특성 상 실패하기 쉽고 집중하기도 어려운 이 방법을 <역도요정>은 꿋꿋하게 밀어붙인다.

사실 MBC <역도요정>은 처음부터 시청률은 접어두고 시작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같은 시간대에 막강한 경쟁자를 만난 드라마다. 하지만 그 덕인지 <역도요정>은 악착같이 달리는 대신 소소한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느긋하고 충실하게 담는다. 거기에 체대라는 생기 넘치는 배경, 20대 생활언어의 생생함과 귀여움을 잡아낸 대사들, 누구나 젊은 시절 겪을 법한 첫사랑의 알싸한 풍경이 모여 <역도요정>만의 느긋하고 풋풋한 ‘스웩’을 살려낸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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