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나인’·‘보이스’·‘내일 그대와’, 실패한 장르물의 공통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에 필자가 본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세 편이었다. <미씽나인>, <보이스>, <내일 그대와>. 그 중 앞의 두 편은 얼마 전에 끝이 났고 <내일 그대와>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드라마들을 작품의 장르적 성격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추리, SF, 판타지. 특히 후반 두 개의 장르가 걸릴 경우, 필자는 일단 관심은 가지는 편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세 편 다 실망스러웠다. <내일 그대와>는 결말을 봐야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여정이 그렇게 재미있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하자.

<미씽나인>은 흥미로운 도입부로 출발한다. 연예인들과 스태프들을 태운 비행기가 중국 근방 바다에서 추락하는데, 몇 개월 뒤 생존자들이 돌아온다. 드라마는 그 생존자들의 현재와 그들이 지난 몇 달 동안 살았던 무인도를 번갈아가면서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설정이 수상쩍긴 하다. 저런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비행기와 실종자들이 훨씬 빨리 발견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이야기꾼이 어떻게 말이 되는 이야기만 하는가.

문제는 이런 식의 어리둥절한 설정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백진희가 연기한 우리의 억척 주인공이 옷이 한 벌 밖에 없는데도 늘 옷을 입은 채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건 배우의 노출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자.



하지만 구명보트가 발견되자 모든 사람들이 그 보트를 타고 섬을 탈출하길 바랄 것이라 치고 이야기가 넘어가는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딘지 모르는 섬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것이 의식주가 확보된 섬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는가? 그리고 이건 앞으로 일어날 어리둥절한 사례의 시작에 불과하다. 왜 살인자는 저 상황에서 저렇게 쓸데없이 폭주하는가. 왜 회사는 저 폭주하는 살인자를 보호하려 하는가. 답이 없다.

<미씽나인>이 빠진 함정은 익숙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난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꾼에게 무한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 그렇다. <미씽나인>의 세계는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지, 여전히 우리가 아는 세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비일상의 공간은 이야기와 캐릭터를 뒤틀 권리 따위는 주지 않는다. 반대로 이야기꾼은 그 낯선 세계에 대한 지식을 최대한 많이 쌓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반대로 가면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자기파탄 뿐이다. 정신줄을 놓은 마지막 편을 보면 작가도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챈 모양이다.



다음은 <보이스> 이야기를 해보자. 이 작품은 성운시라는 가상의 수도권 도시에 있는 골든타임팀이라는 112 신고센터가 배경인 경찰물이다. 분명 신선한 배경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기회이다. 여기에 보이스 프로파일링이라는 소재를 얹는 것도 좋은 선택 같다.

하지만 드라마는 지극히 OCN적인 함정에 빠진다. 한 마디로 이들은 훈련받은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전문가팀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그릴 생각이 없다. 주인공은 반드시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고 (이하나가 연기하는 강권주 센터장은 바이오닉 우먼 수준의 청각을 갖고 있다)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최종 악당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다. 그가 저지르는 범죄는 모두 잔인무도하고 드라마는 그걸 최대한 선정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하는데, 과일 깎는 칼도 블러 처리하는 방송국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당연히 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사회비판 이야기는 중간에 날아가 버린다. 이들 모두는 현실 세계의 인물들이 아니라 장르 공식, 그것도 삭을대로 삭은 진부한 클리셰이기 때문이다. 욕조에 누워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기도취에 빠진 상류사회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찍는 게 죽기 전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제발 그게 식어빠진 농담이란 건 알고 찍자.

OCN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극단적인 설정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안 그렇다. 이들은 쉬운 길이기 때문에 대부분 쉬운 이야기로 빠진다. 일반적인 전문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그에 비하면 훨씬 어렵다. 하지만 제대로 파기 시작하면 성과는 분명하다. 쓸데없는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날려버렸는지 생각해보라. 예를 들어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박은수 대원은 거기서 뭐하고 있나. 여러분은 체호프의 총이 뭔지 들어는 봤나?



마지막으로 <내일 그대와> 이야기를 해보자. 아직 이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에서 뭔가 예측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지금까지 본 것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드라마는 타임슬립물이다. 이제훈이 연기하는 소준은 남영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전철에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시간여행자의 아내’ 이야기이기도 한데, 소준은 신민아가 연기하는 아역배우 출신 사진작가 마린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여자가 시간여행하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지, 늘 이런 여자들을 시간여행하는 남자 주변에 악세서리로 세워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웃랜더>나 <신의> 이야기는 하지 마시길.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르 자체에 있다. 타임슬립물. 나는 오늘 판타지로서의 타임슬립물을 SF 서브 장르인 시간여행물에서 분리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분명한 경계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이야기가 풀리기 때문이다.



SF로서의 시간여행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우린 실용적인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알지 못하고 가능하다고 해도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SF에 나오는 시간여행 장치는 과학인 척하는 헛소리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에서 그 헛소리는 과학의 일부이고, 당연히 시간여행 역시 자연스러운 자연법칙의 일부이다. 좋은 SF라면 이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판타지로서 타임슬립물은 오로지 시간여행을 게임의 배경, 일종이 체스규칙과 체스말처럼 다룬다. 세계 자체가 가벼워지고 시간여행은 오로지 주인공의 소망성취 혜택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물론 거기서도 규칙의 부작용은 있고 주인공은 뜻밖의 상황에 마주칠 수 있는데, 그래도 세계의 가벼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경우 해결책은 작가가 그 세계의 규칙을 최대한 완벽하게 만들고 엄격하게 준수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드라마는 아직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작가가 인과율과 운명 중 어느 쪽을 골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으니.

이 세 드라마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건 장르물이 이야기를 대충 만들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세계의 현실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분의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제발 쉽게 생각하지 말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MBC, OCN,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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