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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흥행몰이에 교정당국이 경각심 가져야 할 이유
기사입력 :[ 2017-04-06 14:00 ]


‘프리즌’, 이 시대 가장 핫한 장소 교도소 별곡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프리즌>이 빠른 속도로 2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중이다. 비수기에 청소년 불가 영화가 이렇게 흥행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교도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악인들의 기싸움을 하드하게 담고 있기에, 대중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는 그 흔한 유머코드도 거의 없으며, 여자라고는 일절 등장하지 않아서 영화의 질감이 더욱 팍팍하게 느껴진다. 사실 영화가 그리는 교도소의 모습은 지나친 상상일 뿐이며,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1995년이라는 시대배경이 현재와 적확하게 와 닿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흥행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도소라는 장소가 지금처럼 세인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교도소와 교도행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 교도소라는 핫한 장소

교도소는 평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소이다. 대개의 장르물에서 그곳은 사필귀정의 배경으로 다루어진다. 즉 범죄자들이 그곳에 들어가는 결말을 통해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인식의 지평에서 밀어낸다. 하지만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특수한 장르물들은 그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에는 그곳만의 질서가 있음을 알려준다.

<쇼생크 탈출><예언자><검사외전><피고인> 등이 보여주는 그곳은 세상의 끝도 아니고, 오로지 교정만 일어나는 곳도 아니다. 물론 이런 장르물 이전에도 그곳의 정보는 누설되어왔다. 그러니 ‘큰 집’이니 ‘학교’니 하는 은어가 유통되는 것 아니겠는가. 범죄자들은 그곳에서 범죄기술을 교환하고 인맥을 쌓는다. ‘범털’이니 ‘개털’이니 하는 말도 재소자들 사이의 위계가 교도소 안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재벌총수나 조폭두목 출신의 재소자와 잡범들 사이에는 엄청난 위계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정도는 상식이다.

그런데 영화 <프리즌>은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것을 이야기한다. 교도소가 아예 범죄의 공장이다. 최고의 경력직 기술자들이 모여 합숙을 하며 팀플레이가 가능한 공간이자,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어 기밀 관리가 잘되고, 알리바이도 보장받을 수 있다. 모범수 익호(한석규)는 18년간 이곳의 질서를 장악하고, 외부로부터 주문받은 어려운 범죄들을 이곳 ‘선수들’을 써서 성공시키고 두둑한 사례금을 챙긴다. 아니 그렇다면 교도관들은 뭘 한단 말인가. 교도관들은 익호가 꽂아주는 뇌물을 나눠 먹으며, 행정적인 일처리와 바깥 세계와의 연락을 맡는다.



영화는 교도소에 처음 들어온 ‘꼴통 형사’ 출신의 재소자 송유건(김래원)의 눈을 통해 익호라는 인물을 보여준다. 교도소 전체를 자신의 질서로 지배하는 자, 자신에게 충성하는 재소자들을 위해 기름진 음식은 물론이고 휴가나 이감 등 교도행정을 마음대로 베풀 수 있는 자, 마음에 드는 ‘꼴통’ 재소자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밤중에 데리고 나가 바깥 공기와 함께 ‘방어회’를 떠 줄 수 있는 자. 감시탑에 올라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자. 그는 교도관들을 돈으로 길들이며, 재소자들을 권력으로 지배한다.

이러한 유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도소장이 익호를 가석방시키려고 하자 익호는 거절한다. 재소자가 석방을 마다하다니, 이상한가? 그는 이곳에서 자유를 제한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교도소는 자신이 군림하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체이자. 그곳을 통해 돈을 벌고 인정을 받고 바깥세상과 관계하는 터전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가석방을 명하는 것은 회사 사장이나 대학 총장에게 퇴직하라는 것과 같다.



◆ 사회공학적 권력에 대한 묘사

영화 <프리즌>이 보여주는 상황은 심각한 부정부패로 인한 왜곡된 행정의 극한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러한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권력의 관계를 사회공학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즉 저런 상황이 말이 되는가하는 개연성의 문제는 차치하고, 일단 그런 상황이라 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시적인 관계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한석규라는 걸출한 배우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관객을 순간순간 집중시키며 묘하게 인물을 설득시켜 나간다.

영화가 익호라는 인물과 교도소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피 터지는 싸움을 보여주는 것은 흥미롭다. 장소의 특징을 고려하여 한정된 도구를 사용한 맨손 액션은 볼만하다. 거기에 송유건을 비롯한 재소자들의 개성도 영화의 재미를 한껏 돋운다. 송유건의 능청스러움은 은근한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영화가 교도소라는 폐쇄적인 장소를 생태계 삼아 흐르는 기묘한 권력의 작동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벌이는 완전범죄를 조명하는 것은 장르물로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유건의 비밀을 보여주고 공무원들을 죽이는 등의 폭발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것은 영화가 기우뚱하게 한 발을 떼어 중심을 옮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유건을 선인으로 놓음으로써 비틀린 권력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악인들의 싸움처럼 보였던 영화를 익숙한 선악의 구도로 치환시키는 것은 대중의 심리를 고려한 마사지로 보인다. 이를테면 교도소가 저런 식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심리적 봉합이 필요한 것이다.

요컨대 영화가 <예언자> 이상의 밀도를 유지하며 사회 공학적 고찰을 밀고나가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흔한 언더 커버물이자 강한 화력의 액션물로 변환시킨 것은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 <프리즌>의 진가가 불타는 후반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감한 상상과 밀도 있는 관계 묘사를 주축으로 한 전반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1995년 Vs. 2017년

영화 <프리즌>은 1995년을 배경으로 삼는다. 감독은 교도소는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교도행정이 무너지는 상황의 배경으로 사회 상황이 혼란했던 시기인 1995년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5년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해이자,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된 해라고 언급했다. 감독이 2017년에 박근혜가 구속되리라는 것을 알고 만들었을 리 없다. 그러나 영화는 1995년과 2017년을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사건으로 묶어낸다. 즉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던 1995년의 교도소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2017년 박근혜가 구속되는 시점에 개봉됨으로써, 교도행정에 대한 고조된 관심을 동력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셈이다.

현재 구치소에는 박근혜, 이재용, 최순실, 김기춘, 조윤선 등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권력자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구치소에 국민의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다. 수감방의 크기나 구조, 식사의 질이나 반입허가물품, 심지어 TV 프로그램까지 기사화된다. 여기서 관심의 포커스는 교도행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이다.



지난겨울 서울구치소 홍남식 소장은 감방에서 열린 최순실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을 방해했다는 의혹과 함께,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돼?”라고 묻는 최순실에게 쩔쩔맸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홍남식 소장이 경질되고, 새로 부임한 이경식 소장 역시 박근혜가 구속 된 당일부터 사흘간 특별 면담을 한 일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순실이 특정 재소자를 ‘의무실로 데려오라’ 지사하면 교도관이 이를 따랐다는 진술과 함께, 남부구치소로 이감된다는 뉴스가 나온다.

1995년의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재소자와 교도관의 위치가 전도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설마 2017년의 구치소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프리즌>의 뜻밖의 흥행에 교정당국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프리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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