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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거물이 된 김구라·윤종신에게 더는 기대할 게 없다
기사입력 :[ 2017-12-14 15:48 ]


‘라스’, 왜 쉬는 동안 재정비를 전혀 하지 않았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라디오스타>는 MBC 예능 중 유일하게 충전이 안 된 상태로 돌아왔다. 소유는 자신의 흑역사라 불리는 사진들을 보면서 “역시 <라스>다”고 말했지만 토크 내용은 방전된 건전지처럼 오히려 힘이 더 빠졌다. 방송 재개 후 기대심리에 어느 정도 부합한 <무한도전>이나 <나 혼자 산다>와 달리 <라스>의 현주소는 파업 전과 비교해 1~2% 하락한 시청률로도 나타난다. 스스로 말했듯이, A급 게스트들은 당연히 <한끼줍쇼>를 선택하고 있다.

<라디오스타>는 2달 만에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인사를 통해 여전히 자기들만의 개성 있는 토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생민 논란에 대한 사과를 바로 이어서 전했다. 시청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사과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가 빠진 <라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황 같아 아쉬웠다. <라스>의 근간은 기존 방송과는 다른 방식, 때로는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뻔한 방송을 거부하는 펑크 밴드 같은 파격이었는데, 이제는 기존 질서에 철저히 따르는 상업화된 락 밴드처럼 되고 말았다. 실험정신, 파격을 내세웠던 <라스>는 이제 그 다음날 방송되는 <해투>와 캐스팅부터 게스트에 의존하는 에피소드(토크와 개인기 포함)까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가장 노후화된 예능이 되고 말았다.

<라스>는 시간을 쌓아온 대신 정신이나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잃어버렸다. 이 또한 오래전부터 벌어진 논의다. 하지만 방송재개 후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실망스럽다. 조영구처럼 망가지는 역할, 김호영과 같이 반짝 활약할 수 있는 의외의 인물 배치 등등 짜여진 역할과 구조에 맞춘 게스트 조합에다 개인기, 장기 감상, 사전 인터뷰된 에피소드를 질문해서 듣는 지상파 토크쇼의 오랜 관행을 답습하는 올드한 토크쇼의 전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주 ‘너 말고 니 친구’ 특집은 남다른 인맥을 자랑하는 연예인들을 초대해 연예계 친목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소유와 성시경의 술자리 이야기, 에릭 남에게 클레이 모레츠와의 친분 등등의 에피소드는 연예계나 예능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두 번은 이미 들었을 이야기다. 이처럼 예전 <놀러와>를 패망시킨 연예계 인맥, 술자리 이야기를 다시 나눌 정도로 빈곤한 아이디어가 그대로 드러냈다. 쉬는 동안 재정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총명함과 무자비함이 빛났던 <라스>와 지금 뭐가 달라졌을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잃을 게 많아졌다. 프로그램 입자에서 보면 MBC를 대표하는 장수예능으로 성장하면서 단독편성까지 가능하게 해준 특유의 정서를 공유하던 충성도 높은 열렬한 팬층 보다는 보편적인 시청자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출연자들은 어깨가 무거워진 만큼 이뤄놓은 것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김구라의 독설은 이제 과일소주 수준으로 도수가 낮아졌다. 우리 방송사에 볼 수 없던 독하고 맥락을 뒤흔드는 유머를 받쳐주던 번뜩이는 한마디나 감성의 무정부주의자 같던 초연함은 동현군과 함께하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가장의 모습 뒤로 사라졌다. 김구라만의 효용과 특색은 가장 말 수가 가장 적은 <썰전>에서만 간혹 볼 수 있는 정도다. <라스>의 웃음을 책임지는 윤종신은 MC 중 가장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고, 김국진은 가끔 일일 MC보다도 존재감이 없다. <불청>에서 하는 유치한 말장난이나 개인기는 당연히 부리지 않는다.



준비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게스트를 우대하면서 방송 분량을 만들던 기존 토크쇼의 공식을 뒤엎고, 게스트를 앉혀 놓고 MC들끼리 티격태격한다든가, 게스트 우대를 위해 방송에선 절대로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궁금해 하는 예민한 질문을 툭 던지던 용기는 이제 없어졌다. MC진끼리의 주고받는 토크 또한 사라졌다. 거물이 된 김구라와 윤종신의 에너지 레벨은 대폭 감소했고, 물리적으로도 함께 입을 맞출 MC진의 캐릭터가 부족하다. 제작진도 새로운 무엇엔 도전하지 않고 변함없는 세트처럼 틀에 박힌 도돌이표만 반복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과 맺어온 ‘우리’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일일드라마처럼 그냥 평범한 공중파 예능 토크쇼가 됐다.

현재의 <라스>는 김구라의 입담과 윤종신의 재치에 더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주 방송 후에는 ‘김호영의 발견’ 등으로 이슈를 만들 것이다. 게스트에게 이슈와 주도권이 넘어간 토크쇼는 <라스>의 몫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해투>처럼 길게 갈수는 있겠지만 그간 성장해오고, 사랑받아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쉽다. 옆 방송에서 이경규가 엄정화와 대화를 나누는 강호동에게 게스트 누가 나와서 시청률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소위 ‘게스트빨’이 아니라 MC진이 기본적인 시청률은 다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경규 특유의 버럭 유머가 가미된 펀치라인이긴 했지만 <라스>가 들었어야 할 금과옥조가 아닐까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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