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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판단 검증한다는 발칙한 ‘판결의 온도’ 집중해부
기사입력 :[ 2018-03-16 13:56 ]


‘판결의 온도’, 정규 편성 노리는 제작진을 위한 조언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사법부가 내린 판단을 방송이 검증한다. 쓰고 보니 대단히 발칙한 문장이다. 국민이 선출권을 지니고 일정 수준의 견제와 검증을 할 수 있는 입법부나 행정수반과 달리, 사법부는 국민이 판결에 이의를 느낀다고 해서 그에 대해 견제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혹시라도 군중심리에 판결이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법 체계의 안정성과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기에 사법부만큼은 선출직이 아닌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종종 사법부는 제 판결에 대해 국민들에게 친절히 풀어서 설명을 해 준다거나 이해를 구하려 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 문턱 높은 권력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평가하고 놀리는 걸 서슴지 않는 종합편성채널의 정치 토크쇼들도 사법부에 대한 비판적 검토만큼은 쉽게 하지 못 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제(3월 15일) 첫 전파를 탄 MBC 파일럿 시사교양프로그램 <판결의 온도>는 제법 흥미롭다.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과 사법부의 법리 사이의 온도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포부를 내건 <판결의 온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4심위원회’라 이름 붙인 패널 군단들과 함께 논란이 되었던 판례들을 들고 와서 다시 검토하는 시간을 가진다. 방송이 사법부의 판단을 재차 검토하겠다는 발상도 대담하지만, 남들이 채 가보지 못 한 영역을 택했다는 점에도 눈이 간다. 정치부터 사회까지 백화점 식으로 이슈를 늘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종합편성채널들의 시사 토크쇼들과의 차별화를 노리기라도 한 듯, <판결의 온도>는 각을 한껏 좁혀 사법부에 집중한다. 최근 지상파에서 쏟아져 나온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대체로 케이블 채널이나 종편, 팟캐스트 등에서 이미 검증이 된 아이템들을 제 식대로 변주해 재탕한 프로그램들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판결의 온도>를 선보인 MBC의 행보는 몹시 반갑다.

물론 방송의 기획의도와 그 용감함을 제하고 보면, <판결의 온도>는 그 장점만큼이나 파일럿이 보여준 단점과 한계가 명확한 종류의 쇼다. 이 글에서는 <판결의 온도>가 정규편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점 3가지와, 정규편성이 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단점 3가지를 번갈아 가며 짚어보았다. 부디 이 글이 파일럿 방영 이후 정규 편성을 노리는 제작진에게 참조가 되길 바란다.



◆ 구성의 장점 | 깔끔하게 정리된 쟁점. 시청자를 배려하는 제작진.

파일럿 방송에서 <판결의 온도>가 다룬 사건은 ‘2,4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지난 2014년 시외버스를 운전하던 버스기사가 중간 경유지에서 탑승해 현금으로 지불한 성인승객 4명으로부터 각각 1만 1,600원씩 4만 6,400원을 받고는, 운행일보에 학생 승객 요금 1만 1,000원으로 기재해 4만 4,000원만 회사에 입금했다가 2,400원을 착복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버스기사가 제기한 해고 무효 소송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고, 2017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한 사건이다.

뉴스나 신문을 통해 사건을 꾸준히 접해왔던 이들이라면 몰라도, 방송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 접한 이들이라면 사건의 경위나 살펴봐야 할 쟁점들을 이해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상황 자체가 다분히 복잡한 데다가, 1심과 2심의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린 이유 또한 짐작이 어렵다. 난맥처럼 꼬인 이 사건을, <판결의 온도> 제작진은 크게 “2,400원도 횡령에 해당하는가 / 버스기사에게 고의성이 있는가 / 2,400원 횡령으로 해고까지 하는 게 정당했나 / 다른 재판과 형평성이 맞는가”의 4개 쟁점으로 나누어 차례차례 설명했다

이렇게 사건의 쟁점을 나누자, 사건을 둘러 싼 사실관계나 재판이 진행된 맥락 또한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또한 테이블에 함께 앉은 사람이 많아 자칫 곁다리로 새기 쉬운 구성임에도, 사전에 정리해 둔 쟁점별로 토크를 진행한 덕분에 논의가 크게 새는 일 없이 무사히 짚어야 할 쟁점들을 다 짚어 볼 수 있었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 사건에 대해 최대한 시청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자 한 제작진의 고충이 엿보인 대목이다.

◆ 구성의 단점 | 시청자를 ‘너무’ 배려하는 제작진. 뒷심이 약한 프로그램.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만 너무 깊게 다루면 혹 지루하고 어려울까 걱정했던 것인지, 제작진은 ‘2,4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후반 10분 가량은 ‘시간을 달리는 법’이라는 코너에 할애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과거와 현재의 법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며 그렇다면 앞으로의 법은 어떻게 바뀔지 전망해 보겠다는 게 코너의 포부였다. 코너 자체의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한강시민공원에 관련된 법에 대해 살펴본 ‘시간을 달리는 법’은 수박 겉핥기 이상의 성취를 거두지는 못했다.

차라리 그 시간을 쪼개어 메인 코너에서 ‘2,4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를 더 길게 살펴봤다면 어땠을까. 시청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하길 바라는 제작진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TV 시청자들은 전성기 시절 MBC <100분 토론>을 손꼽아 기다려 시청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하나의 사건을 한 시간 가량 깊숙하게 다루는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조금은 더 시청자들을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 패널의 장점: 다양한 분야의 패널들, 다양한 각도의 시각.

<판결의 온도>는 법률 전문가들만 모아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법률과 관련한 정보를 법률의 언어로만 따져보는 게 아니라,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해 다양성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나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는 이진우 기자나,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같은 패널은 파일럿에서 인상적인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이진우 기자는 1만 1,600원이라는 성인 요금이 사건의 발생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1만 1,600원씩 4명을 셈하는 것보다 1만 1,000원씩 4명을 셈하는 게 더 직관적이며, 버스를 운전하면서 중간 경유지에서 손님을 태워 돈을 받고 거슬러줘야 하는 상황에서 급하게 셈을 하기 복잡해서 운행일보에 편의상 학생 요금으로 적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돈과 숫자를 중점적으로 따져보는 이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접근이다.

다니엘 린데만은 독일에서 있었던 비슷한 사례의 판례를 소개했다. 31년간 한 가게에서 근속한 마트 직원이 1.3유로를 횡령한 혐의로 해고를 당하자, 근속 기간 동안 형성된 신뢰관계를 감안해 해고를 부당하다 판결하고 경고 조치를 내린 독일의 판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두 나라 사법부 간의 견해차이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혐오발언이나 기물파손, 욕설 등이 아닌 이상 경고 없이 즉각 해고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는 독일 사회와 한국 사회의 사회적 합의 수준을 함께 비교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패널의 단점: 전혀 다양하지 않은 성별과 연령.

대체 판결문에서 말하는 ‘사회적 통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정렬 전직 판사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바로 사회적 통념”이라고 말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여성도 장애인도 없었으며 다니엘을 제외하면 청년도 없었다. MC 김용만, 서장훈부터 진중권, 신중권, 주진우, 이진우, 이정렬까지, 스튜디오 안에서 대화를 나눈 여덟 명 중 일곱 명은 4~50대 남성이었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고, 성비 또한 최근엔 여성이 미세하게나마 과반을 넘겼다. 한국 사회에서 ‘발언권’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이었다면, 출연진 또한 최소한의 인구 비중은 맞춰서 섭외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제작진 또한 섭외와 관련해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고, 따지기 시작하면 성 정체성이나 장애 여부, 출신 지역, 귀화 한국인 비율까지 맞춰야 하는 건 아닌가 하며 고민이 끝도 없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비율을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면, 최소한의 인구 비중인 성별과 연령 정도는 맞췄어야 하는 게 아닐까.

◆ 문법의 장점: 온도 차의 원인을 살펴보되, 굳이 하나의 합의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출연진 전원이 대화 끝에 “해고까지는 심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긴 했지만, <판결의 온도>가 하나의 합의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50~100만원 가량의 감봉과 경고 조치가 합리적이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힌 진중권 교수나 다니엘이 있는가 하면, “횡령(착복)이 맞다면 해고도 어쩔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안을 착복이라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재판부가 더 다퉈볼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는 입장인 이진우 기자가 있고, “안타까운 판결이지만 판결문만 보면 재판부의 판단이 잘못 된 건 아니다”는 이정렬 전직 판사와 신중권 변호사가 있다.

이정렬 전직 판사는 2,400원 착복이 고의성이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데에만 집중했던 소송 전략이 아쉬웠다며 “고의를 다툴 게 아니라 (사측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노사협약에 근거한) 징계가 과하다는 쪽으로 집중했어야 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신중권 변호사 또한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것을 법원이 판단할 수 없고, 당사자가 제출하지 않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판사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여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 쪽에게 소송 전략을 귀띔해 줄 수 없음을 말했다. 똑같이 “해고까지는 심하다”는 공감대를 가지고도, 판사의 재량으로는 판결이 그렇게 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풀어 설명해 준 것이다.

패널들은 각기 다른 판결이나 해법을 제시하고, MC들은 이를 하나로 모으는 대신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이들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는 지점에서 논의를 마무리했다. 물론 <판결의 온도>가 하나의 합의를 강요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언론이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행사하려 해선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방송이 고수하는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왜 국민의 법 감정과 사법부의 판단 사이에 차이가 나는가를 설명하는 효과와 함께, 패널들과 다소 다른 생각을 가진 시청자들에게도 특정한 합의를 강요 당하는 대신 다르게 생각해 볼 것을 권유 받는 정도의 온화한 시청체험을 선사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한 곳에서 함께 논의를 하는 게 가능한 열린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태도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 문법의 단점: 재판부가 나쁘다는 걸 전제에 두고 시작하면 안 된다.

<판결의 온도>는 일반 국민의 눈높이로 보았을 때 어이없게 느껴지는 판례를 다시 따져 보는 쇼이고, 그렇기에 일단 재판부의 판단을 의심하며 시작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판결의 온도>는 가끔 “재판부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의 자초지종을 날카롭게 따져 묻는 것보다, 일반 국민들이 사법부를 얼마나 불신하는가를 토로하는데 더 많은 힘을 소모한다.

쇼는 “판사들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라는 말을 선언하듯 배치하고, 끊임없이 버스기사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해 강조하는 식의 편집으로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시청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나 결론에 이르러 “판사들이 24시간 정도는 버스기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체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주진우 기자의 발언은 당장 듣기에는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지만, 결과적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판사들이 나쁘다”는 감정을 공공연히 표현하는 것 외에 무슨 효용이 있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주진우 기자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봤다는 “어떤 판결이 나는 게 좋았겠느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더 많이 소개되었다면, 사법부의 판단을 대체할 만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을 것이다. 국민의 법 감정과 사법부의 판결 사이의 온도 차이를 줄이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정렬 전직 판사는 “적어도 국민들이 (판결에 대해) 화를 내는 것에 대해서 (재판부가) ‘당신들이 잘 몰라서 그래’ 라는 식으로 치부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판결의 온도> 같은 쇼도 등장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일반 시민의 법 지식 부재만을 탓하는 것으로 온도 차이를 줄일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사법부가 세상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는 것으로도 온도 차이를 줄이는 건 어려울 것이다. 처음부터 ‘국민의 법 감정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고 접근한다면 <판결의 온도>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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