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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지금 한국사회가 곱씹어봐야 할 문제작
기사입력 :[ 2018-03-16 15:20 ]


‘플로리다 프로젝트’, 절제된 연출에 배우들 호연 더해지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굉장한 아이러니를 품은 영화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통해 현재 미국 사회가 품고 있는 빈곤과 양육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션 베이커 감독은 2011년 디즈니월드 건너편의 모텔촌에 사는 아이들을 3년간의 취재하며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사태를 낭만화하지 않고 리얼리즘을 견지하는 흔치않은 경지를 보여준다.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사가 테마파크인 디즈니월드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 주의 땅을 매입하는 사업에 붙인 이름이다. 디즈니월드가 완공된 후, 고속도로 건너편에는 디즈니월드의 마법의 성을 흉내 낸 모텔들이 들어섰다. 디즈니월드에 놀러 온 관람객들을 받기 위한 모텔들이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집을 잃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 단위로 숙박비를 내는 장기투숙객들로 모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했다. 한국의 고시원에 고시와는 무관한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듯이, 이들 역시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숨은 홈리스들이다. 원래 프로젝트라는 말이 부동산과 함께 쓰이면 홈리스를 위한 주거복지 정책의 뜻을 지닌 때가 많기 때문에, 여기서 기묘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디즈니월드 짓기 위한 개발정책이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 홈리스들에게 주거를 마련해준 정책이 되어버렸다는 풍자가 담기는 것이다.



◆ 디즈니월드 건너편 모텔촌의 아이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길 건너 디즈니월드가 보이는 보랏빛 모텔에 사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두 명이 맛깔나게 핥아먹던 6살 무니와 스쿠티는 옆 모텔 주차장에 못 보던 차가 들어왔다며 계단 난간에 숨어 침 뱉기 놀이를 한다. 침 범벅이 된 차주인 할머니가 무니 엄마를 찾아가 따진다. 보통 이런 상황은 짜증나는 다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시큰둥한 핼리가 터덜터덜 나와 아이들을 앞세워 차를 닦게 하자, 할머니의 손녀 젠시가 저도 차를 닦겠단다. 할머니는 화를 내지만, 아이들은 함께 킬킬대며 차를 닦는다. 그리곤 금세 친구가 된다. ‘톰 소여의 담장 칠하기’처럼, 벌칙이나 노동도 놀이가 되는 신비한 아이들의 세계이다.

무니, 스쿠티, 젠시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자신들만의 놀이를 찾아서 논다. 디즈니월드 매표소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동전을 얻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고, 모텔에서 잡무를 도맡아 하는 바비 몰래 기계실에 숨어들어 차단기를 내리기도 한다. 심지어 주인 없는 폐건물에 들어가 불을 지르는 위험한 놀이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키치적인 환상과 빈곤한 실제를 품고 있는 모텔촌의 아이러니를 여러 측면으로 보여준다. 모텔들은 ‘매직 캐슬’ ‘퓨처랜드’ 등 이름도 환상적이다. 신랑이 신혼여행지로 인터넷 예약을 할 정도로 예쁘장한 이미지를 지녔지만, 직접 와서 보면 신부가 기함을 할 정도로 빈민굴에 가깝다. 모텔 외벽은 예쁘게 페인트가 칠해져있지만, 침대 매트리스는 빈대의 알로 가득하다. 페인트 공사에 큰돈을 쓰느라 방충회사 부를 돈이 없을 거라는 바비의 말은 외화내빈의 실상을 단적으로 들려준다.

이들의 가난은 굶주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핼리는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1달러면 과자를 사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로 트럭에서 나누어주는 빵이나 식당 종업원인 스쿠티 엄마가 챙겨주는 남은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모텔 관리자는 구호단체 트럭이 모텔 앞에서 빵을 나누어주는 것을 싫어한다. 유원지적 판타지가 아닌 빈민굴의 느낌을 풍기면 영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모텔 경영자는 공식적으로는 장기투숙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체크아웃을 강제한다. 자기공간에 대한 애착을 가질 새도 없이 이방에서 저 방으로 다달이 짐을 싸서 옮기며 짜증을 내는 핼리의 표정이 이들 가난을 표상하는 실제 얼굴이다.



◆ 절제된 연출로 충분한 고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가장 돋보이는 미덕은 절제된 연출이다. 영화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경험하고 이해하는 화면만 담는다.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자세한 묘사를 생략한 채, 최소한의 묘사와 암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킨다. 가령 아이들에게 접근한 노인에 대한 묘사를 보라. 영화는 노인이 어떤 변태적인 짓을 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바비가 노인을 의심하며 아이들에게서 멀리 떼어내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줄 뿐이다. 바비와 노인 사이에 실랑이가 길어질수록 긴장이 조성되고, 바비의 의심에 점점 힘이 실린다. 영화는 모텔촌 아이들이 성적인 위협이나 추행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이곳의 아이들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는 영화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예고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핼리와 무니가 수영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때 관객들은 젊고 철없는 엄마가 딸과 놀이를 하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핼리가 ‘디즈니월드’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되팔려는 장면을 볼 때도 그것이 어디서 난 것인지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핼리를 찾아 온 남자가 입장권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핼리가 남자에게 “가족과 같이 왔겠네”라며 받아칠 때야 약간의 눈치를 채게 된다. 무니가 혼자 욕조에서 목욕하는 동안 방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욕실 문을 연 남자는 누구였는지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저 무니의 일상과 시선을 따라가며 무니에게 특정한 장면을 목격하도록 그리지 않지만, 계속 모텔비를 내지 못하던 핼리에게 돈이 넉넉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자매처럼 친했던 스쿠티 엄마가 핼리 모녀를 외면한 까닭이 무엇인지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는 적나라한 묘사 없이도 핼리가 성매매를 한 상황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득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가치판단을 접어둔 채,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 스쿠티 엄마의 비난처럼, 가난하다고 모두 핼리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핼리가 무니와 눈높이가 딱 맞는 철없는 엄마라는 점과,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는 역겨운 짓도 서슴지 않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란 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즉 핼리를 가련한 미혼모로 그리는 감상적인 길을 가지 않으며, 현실적인 미혼모의 모습을 담는다. 또한 가족과 함께 디즈니월드에 놀러 와서 성매매를 한 남성에 대한 핼리의 비웃음을 들려줌으로써, 성매매 여성만 비난받고 성매수 남성은 비난받지 않는 불평등을 꼬집기도 한다.

요컨대 영화는 아동성추행이나 성매매 같은 선정적인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대한 경각심이나 고발을 충분히 해낼 뿐 아니라, 균형 잡힌 비판의식까지 전달하는 윤리를 보여준다.



◆ 인물에 대한 묘사와 배우들의 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생생한 질감을 갖는 이유는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와 배우들의 호연에 있다. 무뚝뚝하게 제 할 일만 하는 노동자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어른의 행동을 보여주는 바비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캐릭터이다. 영화 내내 생활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윌렘 데포는 연기 인생 39년의 공력이 무엇인지 실감케 한다. 무니를 연기한 6살 브루클린 프린스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빛을 뿜는다. 모든 표정에 생동감이 넘치고, 잦은 클로즈업에도 자연스러운 감정몰입을 보여준다. 핼리 역할을 맡은 브리아 비나이트의 연기도 놀랍다. 핼리라는 입체적인 캐릭터에 꼭 맞는 캐스팅에 감탄하게 되는데,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본 감독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 캐스팅으로 이어졌다는 일화는 놀라움을 더한다. 그 밖에도 스쿠티 역할의 배우가 실제로 모텔촌에 살고 있는 소년이었으며, 젠시 역할의 배우도 감독이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합류시켰다는 일화는 션 베이커 감독의 안목에 감탄하게 만든다.



영화의 인상적인 엔딩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사회적 지원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지라도, 어떤 개입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이 보여주듯이, 이에 대해서는 훨씬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무니가 사는 환경이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고, 핼리가 성매매를 하며 무니를 양육하는 것은 방임이나 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핼리의 모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단정하며 무조건 양육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이런 판단에 있어서 무니의 생각과 입장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영화는 디즈니월드를 향해 도망치는 무니와 “몇 분 만에 아이를 잃어버려놓고, 나한테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말이 나오느냐?”고 소리치는 핼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한다. 무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엔딩은 어른들의 줄다리기로 무니의 양육이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무니의 주체성이 최대한 인정되어야 한다는 영화적 호소를 담고 있다. 드라마 <마더>와 함께, 지금 한국사회가 곱씹어보아야 할 수작이자 문제작임에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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