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유시민이 보여준 ‘선생’의 빈자리 너무 크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던 유시민이 JTBC <썰전>에서 물러났다. 2016년 1월부터 이철희 의원을 대신해 합류한 이후 약 2년 6개월간 진보 패널의 좌석을 지키며 <썰전>의 최전성기를 열어냈던 장본인이 스스로 걸음을 멈추길 자처했다. 전직 정치인이자 장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몸값 비싼 강사이지만 <썰전>의 유시민으로 가장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었으니 자신이 일군 텃밭을 스스로 떠나는 셈이다. 방송 활동이야 계속하겠지만 그간 가장 큰 영향력이자 콘텐츠의 근간이었던 시사정치 평론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런 결의는 이미 정계를 떠날 때도 보여준 바가 있는지라 당분간, 어쩌면 이번 주 방송이 정치 해설을 하는 유시민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유시민은 백종원과 함께 방송가에서 출연 자체가 콘텐츠이자 이슈가 될 수 있는 유이한 인물이다. 이둘 아래에 설민석 정도 외에는 출연 자체로 구성이 되고 프로그램의 기획이 되는 인물은 없는 듯하다. <차이나는 클라스>의 런칭을 담당했고, <알쓸신잡> 시리즈는 기획단계부터 유시민의 캐릭터에서 많은 부분 빚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유시민의 콘텐츠는 해박한 지식과 견해다. 이를 기본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여러 단편적인 뉴스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관점의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지 등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 족집게 선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함께하며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대중들에게 쉽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서 박형준 교수의 말대로 국민 교양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는 제대로 접할 수 없는 귀퉁이 뉴스들, 이를 테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연설문의 중요성과 정상외교와 실무외교의 차이와 평가 기준에 대해 짚어낸다. 역시나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 러시아에서의 뜨거운 반응들과 지리학자인 구밀료프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짚어주면서 이번 정부의 긍정적인 면을 널리 알렸다. 그런 한편에서 탄핵정국에서는 물론, 세월호 문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중차대한 국면에서 전 정권의 각종 불합리와 각계 기득권의 불온한 프레임에 맞서 탁월한 해안으로 정세를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줬고, 판단을 도왔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인 스탠스를 떠나 지식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과 사회적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유시민 작가의 존재는 다른 시사토크쇼가 갖지 못한 <썰전>의 ‘앙꼬’였다. 시사토크쇼가 단순히 정치적 대립구도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나 가늠좌 역할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 분노와 불안과 배격으로 전선이 갈리는 성대결이나 예맨 난민을 바라보는 입장 등 여러 갈등 양상들, 도덕적 딜레마를 겪기 시작하는 우리사회의 현재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조심스런 논의를 비롯해 비트코인 투기 광풍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무엇이며 난리가 난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본 이야기는 단순한 진보 패널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유시민의 특별함은 자신의 견해를 내세우면서도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언제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찾아냈다는 데 있다. 단순히 배격하고 흠집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발전적인 가능성을 늘 열어뒀다. 이점은 다른 시사예능을 뛰어넘는 원조의 맛이다. 그 덕분에 주류 언론이 곱게 보지 않는 이번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희망의 씨앗으로 봐도 충분히 괜찮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한때 시사토크쇼가 범람하던 시기에도 중심을 잡으면서 더 나아가 <썰전>이 시사토크쇼의 가치를 확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드라마틱한 정국이 지나고 문재인 정부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유시민이 <썰전>을 떠난다. 이는 <썰전>이 시사예능의 붐을 일으켰듯이 시대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시사정치 토크쇼 또한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음을 선도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듯하다. 여전이 급변하는 극동의 정세와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반복, 너무나 급변하는 세상의 새로운 흐름들을 짚어주고 해설해주는(그것도 공짜로) 선생의 존재는 공공재로서 방송의 역할까지 들먹일 정도로 유익했다.



이제 시사토크쇼의 패러다임은 여야, 진보보수의 정치적 스탠스가 아니라 여러 기득권에 대한 조준, 난민이나 성대결 같은 점점 우경화되는 우리사회의 갈등양상들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불이 붙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 어떤 누가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할지 모르겠지만 유시민이 보여준 ‘선생’의 빈자리는 당분간, 또 이 장르 자체의 색깔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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