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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송강호가 누리는 찰나적 쾌감이 궁금하지 않다는 건
기사입력 :[ 2018-12-18 16:35 ]


어디선가 본듯한 ‘마약왕’, 어쩌다 함정에 빠졌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시사회를 보고 온 리뷰어가 할 일은 막 본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었고 얼마나 재미있으며 어떤 주제를 담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미리 알리는 것이겠지만,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을 보고 나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잘 만든 영화인가? 그런 면도 있다. 일단 주연배우 송강호를 포함한 배우들의 질이 높은 편이다. 재미는 주관적이라 내가 재미없었다는 말은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의미는 없다. 주제? 영화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기형적인 시대 분위기가 당시 사람들 그러니까 곧장 말해 당시 남자들을 어떤 괴물로 만들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를 은유로서 조금 더 확장한다면... 여기서부터는 굳이 내가 더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눈치챘을 테니. 중간에 해석해줄 평론가가 필요할 정도로 은밀한 비밀 같은 건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마약왕>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가’가 아니라 ‘왜 <마약왕>이란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인지 하나도 관심이 가지 않는가’이다. 그리고 답은 쉽게 나온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봤던 것이다. 7,80년대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약간의 운과 잔머리, 야망을 바탕으로 한몫 잡고 신나게 살다가 몰락하는. 그러는 동안 조폭, 야쿠자, 부패 경찰과 정치가, 검사(아, 맞아. 이런 영화들은 검사를 참 좋아한다), 헐벗은 여자 엑스트라들이 주인공 옆을 지나간다. 여기엔 출신 지역, 직업과 캐릭터의 변주가 있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하고 그 비슷비슷한 영화들도 이전부터 비슷비슷했다.

한마디로 장르화된 것이다. 장르화된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비슷한 걸 해보고 싶기 마련이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장르가 만들어진다. 늘 있어왔던 일이다. 하지만 이미 장르화된 이야기를 하면서 의미 있는 주제를 담고 싶다면 고민을 좀 더 해야 한다. 장르 소비자들이나 창작자가 즐기는 것은 진지한 주제가 아니라 이야기와 소재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예로 들어볼까? 추리소설로 성차별, 인종차별과 같은 이슈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지금도 그런 작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작가들은, 장르 소비자들이 이 장르의 책이나 영화를 택하는 것은 이 장르가 다루는 소재의 폭력적인 선정성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를 없는 척하고 작품을 짠다면 그 주제는 당연히 전달되지 못하고 무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애당초부터 소비자들은 교훈적인 결말을 알리바이 삼아 소재의 선정성을 즐기는 습관이 들어있는 것이다. 당연히 주제를 살리려면 이야기와 스타일의 추가 보정이 필요한데, 이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마약왕>은 이런 장르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아주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척 한다. 이야기와 주제가 분명히 진지한 무언가를 담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주제와 상관없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것은 온갖 대리만족의 스펙터클이다. 1970년대 한국 남자들이 즐겼던 건 우리 기준으로 보았을 때 초라하고 단순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촌스러움을 용납하지 않는다. 주제가 무엇이건, 영화의 제1목표는 송강호의 마약왕 캐릭터가 누리는 찰나적 쾌감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하는 것이다. 클래식 카에 대한 집착과 헐벗은 여자 엑스트라들의 집착이 조금만 덜 나왔어도 나는 영화의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 감독의 욕망이 이렇게 대놓고 전시되면 할 말이 없어진다. 결국 그러다가 주인공이 몰락하지 않냐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건 몽땅 알리바이이기 때문에 저런 것들을 대리 체험하러 온 관객들은 오히려 그 결말을 반겼을 것이다.



<마약왕>이 어떤 흥행성적을 거둘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큰 관심도 없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의미 있는 척 하며 꾸준히 들이대는 이 동의어 반복이 거의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갑갑하다는 것이고,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이를 눈치챌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마약왕>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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