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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허를 찌른다, ‘붉은 달’ 도현정 작가의 감탄할 솜씨
기사입력 :[ 2019-01-16 15:46 ]


‘붉은 달 푸른 해’ 도현정 작가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전래동화 <햇님달님>에는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엄마 옷을 입고 나타난다. 어린 오누이는 문밖에 엄마인지 호랑인지 모르는 인물의 그림자를 보고 무서워 벌벌 떤다. 아이들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다. 늘 보호받고 기다리는 존재지만, 언제 호랑이처럼 변할지 모르는 존재가 부모다.

MBC <붉은 달 푸른 해>는 이런 호랑이 같은 어른들에게 상처받고 고통 받았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붉은 달 푸른 해>는 고통 받은 아이들이 상처 입은 영혼으로 자라난 후의 이야기다.

비밀스러운 새엄마 허진옥(나영희) 밑에서 자란 어떤 여자아이 차우경(김선아)은 어른이 된 후 한울센터 아동상담사로 일하며 상처 입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차우경에게 초록 옷을 입은 소녀의 환영이 나타나면서 그녀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어떤 고아 남자아이는 이후 그를 돌봐줬던 어른의 폭력과 추행에 시달린다. 상처 받은 어린아이의 영혼 그대로 성장한 이은호(차학연)는 어른들을 두려워한다. 그가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은 그의 영혼과 닮은 어린아이들이다. 그리고 이은호는 맑은 영혼의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부모들을 처절하게 응징한다.



하지만 시청자는 이은호가 살인범으로 밝혀진 순간에도 이은호를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차우경과 형사 강지헌(이이경)의 심정에 동화되어 이은호를 아파하고 안타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

<붉은 달 푸른 해>의 도현정 작가는 그 순간의 눈물을 위해 신파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 이은호라는 인물을 위험하고 모호하게 그리면서도 그가 겪은 고통들을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시청자들이 그의 삶에 조금씩 동감하도록 만든다. 결국 처음에는 호기심 때문에 이은호의 이야기를 쫓아가던 사람들은 어느덧 그가 처한 삶의 고통을 함께 곱씹는 것이다. 그러면 이은호가 담담하게 고백하는 유년의 고통에 대한 대사들이 시리게 저미는 것이다. 마치 그의 뒤를 쫓던 형사 강지헌이 어느 순간부터 이은호의 아픔을 느끼고 그를 걱정하듯 말이다.

도현정 작가의 능력은 비단 이은호라는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캐릭터의 서사를 훌륭히 만들어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이미 작가가 지닌 내공이 돋보인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커다란 서사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작가는 이미 단단하게 여문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시청자의 허를 찌른다.

<붉은 달 푸른 해>의 큰 줄기는 두 갈래다. 차우경 앞에 나타난 환영 속 초록색 소녀의 정체와 붉은 울음의 정체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그 둘의 존재가 누구였는지를 파헤쳐간다. 하지만 동시에 붉은 울음이 블랙챗을 통해 벌이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의 살인교사와 살인을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물론 각각의 살인 역시 아동폭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때문에 <붉은 달 푸른 해>는 그때그때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던지면서도 큰 줄기의 서사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이은호가 유년시절 한울센터 원장에게 겪은 폭행과 추행이 상징적이지만 강렬하게 드러나면서 정점에 이른다. 과거 한울센터 원장은 이은호에게 시를 읽도록 강요하면서 추행을 일삼았다. 이은호는 원장의 입안에 시집의 페이지를 하나하나 찢어 우겨넣으면서 복수한다. 강렬하면서도 섬뜩한 이 장면 역시 다시 한 번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다.



또한 도현정 작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초록색 소녀의 정체와 붉은 울음의 정체에 대해 시청자들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 가능성을 하나하나 차단하거나 변주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야기의 끝에 거의 다 이르러서야 초록색 소녀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은호 외에 또 다른 붉은 울음의 정체가 겨우 밝혀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안타깝게도 <붉은 달 푸른 해>는 한 번 길을 잃으면 덮어버리기 쉬운 구조기는 하다. 직진으로 달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교한 미로처럼 짜인 꼼꼼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의 전작인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도현정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드라마를 ‘덕질’해야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에 한 번 빠져든 이들이라면 도현정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결코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메시지와 탄탄한 구성을 기반으로 보는 이들에게 추리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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