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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누가 뭐래도 현빈의 허무한 눈빛이 있기에
기사입력 :[ 2019-01-20 14:29 ]


싸이월드에서 증강현실로 이어진 현빈의 멋짐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필자의 장편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에는 전직 해커로 일했던 에어비앤비 청소부가 등장한다. 소설 말미에 그는 자신만의 명언을 남긴다. 그 말은 바로 “로그인보다 로그아웃.”이다.

전직 해커가 아니라도 2019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로그아웃은 로그인보다 훨씬 중요하다. 눈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늘 로그인 상태다. 비단 게임 접속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로그인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메일 확인부터 수많은 웹상의 뉴스를 보는 것까지 웹세상의 로그인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취한 후 적절한 순간에 로그아웃하는 것이다.

tvN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유진우(현빈) 역시 AR게임 로그인은 눈만 깜빡하면 할 정도로 무척 쉽다. 하지만 게임에서 로그아웃하려면 총 맞고 칼 맞아 온몸이 상처투성이라야 가능하다. 그것도 겨우겨우 외부의 도움으로 빠져나온다.



증강현실 AR게임을 테마로 한 <알함브라>는 의외로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다. 사실 한국에서도 AR게임은 익숙해진 지 오래다. AR게임 <포켓몬GO> 유저들은 팀을 이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국 곳곳으로 포켓몬을 채집하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알함브라>의 유진우 캐릭터가 쉽게 공감 가는 것은 AR게임에 빠진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쉬운 로그인과 힘든 로그아웃이라는 갈등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상처럼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서다. 그 때문에 시청자는 빈 허허벌판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적군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며, 뛰어다니는 유진우의 공포와 두려움을 감정적으로 바로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증강현실인 가상화폐의 세계에 발을 디디기는 쉽지만 적정한 순간에 발을 빼지 못해 깊은 수렁에 가라앉기 쉬운 것처럼.

이처럼 <알함브라>에는 현대인의 삶을 표상하는 많은 은유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 자체가 매끄럽다고 보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특히 과도한 회상과 반복은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들었다. 만일 <알함브라>가 증강현실 드라마였다면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개입해 회상, 반복 장면을 빨리감기 했을 것이다.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 캐릭터 역시 다소 진부한 롤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희주는 <알함브라>에서 충분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한다. 바로 배우 박신혜의 눈물 연기 덕에 이 캐릭터의 슬픔이나 두려움 등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데뷔작 SBS <천국의 계단>에서부터 눈물 연기에 탁월했던 이 배우는 <알함브라>를 통해 눈물만으로도 캐릭터의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능력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알함브라>는 사실 상 주인공 유진우의 원톱 드라마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게임과 현실을 오가며 뛰어다닌 유진우 현빈은 <알함브라>의 지루함과 어수선함을 메워주는 것은 물론 드라마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남성적인 각이 살아 있는 이 배우의 얼굴은 희한하게도 전체적으로는 거칠지 않고 샤프하다. 더구나 정장을 입었을 때와 점퍼를 입었을 때의 매력 역시 각각 다르다. 수트를 입은 현빈은 믿음직하지만 둔해 보이지 않는다. 점퍼를 입은 현빈은 캐주얼하지만 촌스럽지 않다. 그 때문에 현빈의 필드는 피와 땀이 흐르는 야생의 정글보다 IT, 애플, 디지털, 가상화폐 등의 단어가 어울리는 세계에 더 가깝다. 혹은 그 세계의 뒤편 황금빛 뜬구름을 놓친 자의 잿빛 그늘과도 어울린다.



현빈 특유의 이런 분위기는 사실 2003년 MBC 드라마 <아일랜드>의 보디가드 강국을 통해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다. ‘싸이월드’ 시대에 방영했던 <아일랜드>에는 ‘싸이월드’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싸이월드’는 나만의 미니홈피가 있고, 일촌맺기와 파도타기를 통해 새로운 사람과 잊힌 사람들을 찾아 다시 감정을 교류한다. 그리고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를 통해 민망한 나르시시즘의 독백들을 남기기도 한다.

드라마 <아일랜드>의 네 남녀주인공들 역시 각자의 독백 속에 갇혀 사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우연히 파도처럼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사실 <아일랜드> 네 명의 주인공 중 강국은 가장 현실감 있고 건강한 인물이다. 그는 그래서 세 명의 현실감 없는 사람들을 달래고 아끼지만 결국 사랑을 빼앗기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강국은 쓸쓸하고 허무한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알함브라>에서도 현빈의 멋짐 포인트는 여전히 ‘허세’가 아닌 ‘허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유진우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상의 적들을 다 물리치면서도 그의 표정과 눈빛에는 늘 허무가 감돈다.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허무에 어울리는 나른하고 까칠한 말투로 유진우는 읊조린다.

생각해 보니 <알함브라>에서 키스신이 유달리 애틋했던 것, 그것은 어쩌면 허무를 아는 사람과의 키스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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