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조연 연기자들인데, 출연 비중은 낮고 주로 주인공의 목표 성취를 돕는 역할이지만 때로는 뛰어난 그들의 연기가 작품을 살리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드라마 인기의 열쇠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들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공감이 가는,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조연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좌우되곤 하니까.

그러나 흔히들 조연 연기자라 하면 ‘선생님’ 급의 중견들이나 개성 있는 성격파 연기자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는 외모가 출중한 젊은 축들은 대부분 무턱대고 주연만을 고집한다거나 주로 ‘발연기’ 담당이기 때문이 아닐는지. 빼어난 외모 덕에, 그것도 주연급에 캐스팅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형편 무인지경의 연기로 극의 흐름을 망쳐 놓는 연기자들을 그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는가. 그와는 반대로 외모와 인기는 주연 연기자 못지않으나 작은 배역부터 시작해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연기력을 다져가는 이들도 있다. 최근 종영했거나 종영을 앞둔 드라마 중에서 세 사람을 뽑아봤다.



◆ KBS <영광의 재인>, 차홍주 역의 이진

“아 진짜, 우라질! 떫으면 세종대왕한테 컴플레인 해 보라니까. 그 양반도 우라질이라는 말 엄청 쓰시더만” 차홍주(이진)의 통통 튀는 매력이 드디어 화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그렇지 본래부터 차홍주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였다. 자기 예쁜 줄 알고, 내숭이라곤 없어 감정 표현에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차홍주. 이 까칠하고 때론 도발적이기까지 한 개성 있는 캐릭터를 걸그룹 ‘핑클’의 이진이 이렇게 잘 표현해낼 줄이야!

2006년 MBC <베스트극장> ‘사고다발지역’을 통해 첫선을 보였고 <신현모양처>에 잠깐 카메오 출연을 한 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연기의 시작은 SBS <왕과 나>의 정현왕후 역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사실 아이돌 그룹 출신이 사극을, 그것도 기품 있는 중전 역을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앞서 등장한 몇몇 아이돌 출신들이 연기에 도전했다가 뼈아픈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진은 그들과는 달리 주연이 아닌 단막극과 작은 배역으로 출발했고 의외로 침착한 연기를 보여 호평을 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번 <영광의 재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기파 배우 이문식, 김성오와 더불어 극에 에너지를 불어 넣고 있는 이진. 그녀의 2012년이 기대된다.



◆ SBS <천일의 약속>, 장재민 역의 이상우

서연(수애)이가 물끄러미 재민(이상우)을 바라본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재민이가 답한다. “이서연 사촌오빠. 장재민.” 그의 마지막 대사다. 재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연의 사촌오빠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장면이 가끔 나오긴 했지만 별 다른 사생활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촌오빠 신드롬’을 몰고 올 정도로 존재감이 컸고 마치 실제 인물처럼 다가오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2005년 KBS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주인공 류수영의 동생 역으로 데뷔했지만 시청자들의 첫 기억은 SBS <조강지처 클럽>의 연하남 ‘구세주’가 아닐까? 그리고 KBS 일일극 <집으로 가는 길>과 SBS 아침드라마 <망설이지 마>, 이 두 작품만 합해도 무려 200회를 훌쩍 넘어서니 연기 수업 하나는 착실히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TV 드라마 역사상 최초의 동성애 커플로 등장했던 SBS <인생은 아름다워> 때만 해도 김수현 작가로부터 연기 지적을 받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얼마나 절치부심 노력했던지 <천일의 약속>이 시작되고 나서는 젊은 연기자 중에서는 가장 안정된 연기라는 평가가 이어지지 않았나. 흠잡을 곳 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과욕 없는 겸손한 행보를 보여 온 이상우다. “서연아, 네 마음이 원하는 건 뭐야. 나한텐 솔직해도 돼.“ 뭐든 다 털어놓고 싶어졌던 재민 오빠. 나도 이런 오빠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 MBC <나도, 꽃!>, 조마루 역의 이기광

<나도, 꽃>의 중심은 서재희(윤시윤)와 차봉선(이지아)이다.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윤시윤이 워낙 동안인지라 두 사람을 커플로 엮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고 난 후에는 예상 외로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런데 만약 조마루(이기광)라는 완충재가 없었다면? 글쎄, 과연 그처럼 긍정적인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을까? 물론 나이 차이가 좀 더 있긴 하지만 서재희와 차화영(한고은)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를 보란 말이다.

그에 반해 재희와 봉선은 마루를 두고 각기 벌어졌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마치 수혈을 하듯 따뜻함을 보탰기에 두 사람이 정감 있는 커플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조마루를 연기한 ‘비스트’의 멤버 이기광은 여느 아이돌들과는 다르게 턱없이 주연을 노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MBC <지붕뚫고 하이킥>의 준혁(윤시윤) 학생의 친구 세호 역으로 스타트를 끊었고 차기작도 MBC <마이 프린세스>에서 공주 이설(김태희)을 돕는 궁중주방보조 건이 역이었으니까. 작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그의 선택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가하면 토크쇼 KBS2 <승승장구>에서도 다른 MC들은 차마 엄두를 못 낼 당돌한 질문을 서슴지 않고 던지는 등 나름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기광, 그런데 얼마 전 MBC <휴먼다큐 그날 - KPOP 영국 첫 공연 그날>을 보니 그 숨 쉴 틈조차 없다는 드라마 촬영 기간 중에 유럽 공연까지 다녀온 모양이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다. 한 그룹의 멤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이제는 좀 쉬엄쉬엄, 건강도 챙기고 자신이 걸어온 길도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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