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노래는’, 음악 예능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 <너의 노래는>은 천재 뮤지션 정재일의 음악 세계와 그의 시선을 통한 명곡의 재조명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박효신과의 곡 작업을 그린 1부, 이적과 아이유가 등장한 2부, 정훈희와 김고은이 출연한 3부에 이어 오늘 마지막 4부 방송만을 남겨두고 있다. 4부작의 짧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비긴 어게인>에 이어 또 하나의 인상적인 JTBC 음악 프로그램으로 호평 받고 있다.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 프로그램을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떼창으로 강추했다.



◆ 정주행을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

많은 이들이 본 방송보다는 다시보기나 원하는 장면만 따로 보는 일명 ‘짤방’을 즐기는 세상이다. 요약된 기사로 내용을 대충 훑은 후 내키는 부분만 선별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본 방송 시청 중에도 착각을 일으켜 앞으로 버튼을 누르기 일쑤라는 얘기도 들린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를 작곡가이자 연주가 정재일의 시선으로 재조명해보는 <너의 노래는>은 정주행을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보통 방송을 보며 메모를 하곤 하는데 3화까지 보는 사이 노트 몇 장이 빼곡해졌다. 놓치면 후회할 노래며 장면, 대사가 차고 넘친다. 자막도 깔끔하니 군더더기가 없고 세대를 넘나드는 출연자들 간의 어우러짐도 좋아서 JTBC 음악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구나, 새삼 감탄했다.



1999년 밴드 ‘긱스’의 막내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정재일. 영화 <옥자>의 음악 작업을 맡겼던 봉준호 감독은 지구상에서 가장 섬세한 사람이라 했고 안숙선 명창은 천재라고 단언했다. ‘긱스’ 이후 꾸준히 함께 작업을 해온 이적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부지런한 천재는 못 이기는 거죠.” 방송에서 톱 연주자를 봤다는 얘기를 나눈 불과 몇 달 뒤 정재일이 직접 톱 연주를 하는 모습에 놀랐다나. “나는 영감이란 걸 별로 안 믿거든. 계속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나의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가 다 영감을 긁어모으는 행위 같아. 저축을 하는 것처럼. 뭔가를 해야 할 때 하나씩 길어 올리는 것.” 정재일의 창작 과정이라고. 예술가를 넘어 세상사는 우리 모두가 귀담아 두면 좋을 얘기이지 싶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이토록 아름다운 협업의 언어들

JTBC <비긴 어게인>이 길 위에서 다양한 풍경과 호흡하는 음악을 롱샷으로 잡아낸 프로그램이었다면, <너의 노래는>은 ‘격리된 공간’에서 정재일과 소수의 아티스트가 협업한 음악을 클로즈업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두 프로그램에 대한 인상은 서서히 바뀐다. <비긴 어게인>을 보다가는 어느새 풍경을 잊고 우리가 익히 알던 가수들의 목소리가 낯선 장소에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마법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고, <너의 노래는>을 보면서는 음악이 ‘격리된 공간’을 넘어 시대를 넘나들면서 깊고도 넓게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너의 노래는>은 <비긴 어게인>과는 또 다른 음악의 여정을 다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너의 노래는>은 얼핏 아름다운 이국의 땅을 배경으로, 정재일과 박효신이라는 희소성 있는 아티스트를 내세운 음악 여행 프로그램처럼 시작한다. 이것이 새로운 음악 세계로 나가기 위해 채택한 친근한 도입 장치에 불과했다는 것은, 정재일과 박효신이 같이 곡을 만들어가는 광경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바통 터치하듯 릴레이로 영감을 주고받아 만든” 곡 ‘Home’의 작업 과정을 재현하는 장면에서 보인 ‘협업의 언어’는 이 프로그램의 키워드다.

시청자들은 이 언어가 회를 거듭하면서 점점 확장되는 여정을 즐기게 된다. 김소월의 시와 만난 ‘개여울’을 매개로 일제강점기에 탄압받았던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조명하고, 김민기의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는 또 다른 억압과 검열의 시기를 돌아본다. ‘천재 뮤지션’의 내성적인 음악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던 프로그램이 노래를 통해 시대와의 협업으로까지 나간다. ‘너의 노래’는 그렇게 ‘우리의 노래’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정재일이라는 프리즘

<너의 노래는>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뮤지션 정재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그가 직접 만든 음악을 중심에 놓고 움직이지 않고, 해외로 음악 여행을 떠났으나 현지의 음악을 배우거나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일이 없으며, 정재일이 다양한 게스트들과 함께 음악에 얽힌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레귤러 편성이 아니라 4회 편성으로 마무리된다. JTBC <비긴 어게인>과 MBC <음악여행 라라라> 사이의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너의 노래는>은, 결국 ‘정재일’이라는 아주 섬세하고 독특한 프리즘을 통해서 익숙한 음악을 다시 발견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기기묘묘한 다큐멘터리 예능이다.



음악적 동료인 박효신과 함께 프랑스 시골에 얻은 작업실에서 작곡을 하고 생활하는 과정을 그린 1부만 본다면, <너의 노래는>이 창작의 순간에 일어나는 마법을 캐치하는 게 목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재일이 아이유와 함께 정미조의 ‘개여울’을 리메이크해 공연하는 2부부터 <너의 노래는>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급격하게 그 폭을 넓힌다. 김소월의 원작 시 그 자체로 이미 노래였던 ‘개여울’의 탁월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사가 박창학이 등장하고, 당시 ‘개여울’의 인기를 증언하기 위해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등판하며, 자신이 부른 노래와 아이유가 부른 노래에 대해 감상을 말하기 위해 정미조가 직접 입을 연다. 정재일이 고심해서 선택한 몇 개의 곡들을 다시 무대 위에 올리면서, 그 곡이 발표되었던 시대상과 노래 자체의 완성도, 가사의 아름다움과 노래하는 이의 목소리가 지니는 의미를 차분히 곱씹어 음미하는 것이야 말로 <너의 노래는>의 목표인 것이다.

익숙한 노래들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면서,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그 음악들을 고르고 재해석해 의미를 부여한 정재일이 얼마나 탁월한 뮤지션인지 주목하게 된다. 정재일이 주인공인 듯 은근슬쩍 음악을 새로운 각도에서 사랑하는 법을 익히게 만들고, 그게 목적인 듯 하면서 다시 정재일에게 감탄하게 만드는 쇼라니, 탁월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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