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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상한 애’로 여겨지던 양준일의 화려한 부활
기사입력 :[ 2019-04-23 16:24 ]


‘유튜브 슈가맨’ 양준일이 30년 지나 사랑 받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기약 없이 떠나버린 1990년대 가수 양준일. 30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부활했다. 저화질 영상 안에서도 큰 키, 그에 어울리는 껑충껑충 뛰는 춤은 전혀 빛바래지 않는다. 신기한 점은 오버사이즈 패션과 스트리트 힙합패션이 유행하는 2019년과 1990년대 초반의 양준일의 패션코드가 그리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케이팝 아이콘인 GD와 쏙 빼닮은 미소와 이목구비, 거기에 큰 키의 옵션과 살랑살랑 웃으며 제멋대로 춤추는 이 흘러간 가수는 이상하리만치 힙하게 느껴진다.

물론 ‘Dance with me 아가씨’ 때 선보인 장발의 트위스트펌 때문에 그의 과거 영상은 황당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풀어헤친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리메이크곡 ‘J에게’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은 가수 전인권의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다시 양준일의 영상으로 정정된 듯하다).

또 큰 키의 미소년이 뜬금없이 신창원 스타일과 매트릭스 스타일이 합쳐진 쫄티에 긴 코트를 입은 V2로 벌크업해 ‘Fantasy’를 부르는 영상 역시 다시금 화제다. 더구나 이 노래는 양준일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노래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인상적인 가사 “빨래를 걷어야 한다며 기차 타고 떠났어.” 때문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 양준일이라는 사실이 다시 회자되면서 그는 2019년의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물론 빅스타의 과거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리베카’와 ‘가나다라마사’로 회자되는 양준일은 사실 1090년대의 빅스타는 아니었다.

필자 역시 1990년대 초중반에 10대 시절을 보냈기에 TV에서 양준일이 출연한 쇼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물론 당시 양준일의 마니아는 대부분 여학생이었고, 남학생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 혹은 느끼하게 왜 저래? 여서 양준일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1990년대 초반의 라이징스타 양준일은 확실히 인상적인 그 무엇이긴 했다.



데뷔 당시 양준일은 그 이름보다 ‘리베카’라는 호칭으로 대중들 사이에 많이 불려졌다. 그의 팬이 아니고는 그냥 그 ‘리베카’ 라고 불렀던 것이다. 노래 제목이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된 희한한 경우다.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나풀나풀 셔츠나 단발의 헤어스타일로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리베카’의 모습은 정말 한 마리 유니콘 같은 유니크함이었다.

다만 양준일의 그 유니크함을 품어줄 대중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처음 활동했던 1991년은 심신, 신승훈, 이상우의 시대였다. 심신이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외치며 터프하게 권총을 쏘고, 이상우가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을 부르며 순수한 청년으로 변신하고, 신승훈은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인기를 끌어온 발라드의 왕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요계의 메인스트림에서 양준일이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준일은 꽤 눈에 띄는 존재였다. 가요계에 전혀 관심이 없던 필자의 형이 뜬금없이 그 ‘리베카’ 이야기를 꺼낸 기억도 남아 있다. 아는 여자애가 콘서트에서 ‘리베카’를 보고 순정만화 주인공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떠들고 다닌다는 말이었다. 결국 당시 기억을 소환해 보면 노래의 인지도보다는 순정만화 주인공이 현실무대에 컴백한 듯한 특이한 셀럽의 인지도가 조금 더 앞섰던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필자 역시 양준일의 대한 잔상이 몇 개 있다. 우선은 지금도 유튜브 영상으로 남아 있는 ‘이덕화 사건’이다. 당시 양준일은 쇼 프로그램(아마도 토토즐?)에서 “나의 사랑 리베카”를 “나의 사랑 이덕화”로 개사해서 불렀다. 당시 카메라는 그 노래를 부르는 양준일과 이덕화의 민망하게 웃는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었다. 갑자기 러브송에서 브로맨스송으로 변한 ‘나의 사랑 이덕화’가 PD가 고안한 특별 이벤트인지 양준일의 아아디어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또 하나는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공개방송에 나왔을 때였다.(별밤이 아니라 다른 라디오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에). DJ 이문세가 별명이 뭐냐고 묻자 양준일은 “꽃사슴”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을 꽃사슴이라고 불러줬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남자가수가 대놓고 자기 별명을 꽃사슴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았다. (농담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은근 진정성을 담아서 말했다)



마지막 기억은 양준일이 ‘가나다라마바사’로 활동할 때였다. 2집의 타이틀곡 ‘Dance with me 아가씨’는 영어가사 때문인지 그리 활동을 길게 하지 못했다. 대신 양준일은 한글 가사에 한이 맺혔는지 1993년 후속곡 ‘가나다라마바사’로 꽤 오래 활동한다.

물론 이 노래 역시 일반 대중들에게는 물론 10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다. ‘가나다라마바사’를 사랑의 암호말로 풀고, 중간에 “뭐, 리베카가 누구야?” “으, 밥맛.” 내레이션까지 있는 노래란 당시 대중들에게 너무 난감한 곡이었다.

고교시절 필자가 아무생각 없이 “가나다라마바사”를 흥얼대자 옆에 있던 진지한 친구에게 “흑인 저질 랩이나 따라하는 노래를 왜 좋아하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이 노래는 그 스타일이나 노랫말이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곡이기도하다. 더불어 양준일이 지닌 패션 감각만큼이나 세련되고 자유로운 무대를 느낄 수 있는 노래이기도하다.

이처럼 1990년대 당시 팬덤 아닌 10대나 부모님들에게는 ‘이상한 애’로 여겨지던 양준일의 진가는 지난 시절의 영상을 통해 확인받고 있다. 양준일은 30년 전에는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금의 대중들이 이제야 환호하는 같은 나라 다른 시대의 슈가맨이 된 신기한 경우다. 그러니 이제 그만 비밀의 빨래를 걷고 유튜브에서라도 다시 얼굴을 드러내 주세요.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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