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예능 전성시대에 ‘나혼산’은 선택의 기로를 맞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 장수프로그램이자 대표 예능 <나 혼자 산다>는 변화 중이다. 2015년 여성 멤버를 정식으로 받기 이전, 그리고 육중완, 김광규, 황치열, 강남으로 대표되던 시절, 그리고 현재의 기틀이 된 전설의 전현무 체제에 이어 찾아온 큰 변혁이다. 2017년 시청률 5% 근방에서 고전하던 <나 혼자 산다>가 퀸텀점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인 전현무 체제의 무지개 회원 커뮤니티에서 박나래와 여은파중심의 여성 예능 체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최근 몇몇 논란이 겹쳐진 영향이다.

지난주 방송에 등장한 스튜디오 멤버는 2017년부터 이어오던 캐릭터쇼의 종식을 보는 듯했다. 오랜만에 합류한 헨리가 자리를 함께하긴 했으나 (마찬가지로 돌아온) 한혜진, 손담비 등의 여성 출연진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간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했던 이시언과 기안84가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웃음청부사라 할 수 있는 얼간이들을 이끌던 이시언의 공백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의 비중은 현격히 줄었고, 이 프로그램만의 차별성이자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개근 멤버 기안84 역시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 화면에서 보이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나 혼자 산다>는 유독 부침을 겪었다. 새로 들어온 멤버들이 기존 커뮤니티의 노쇠화를 커버하지 못하고, 동시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드라마 JTBC <부부의 세계>가 편성되면서 특별한 모멘텀 없이 흘러내렸다. 노골적인 배우 프로모션과 이벤트성 일상이 반복되며 비판 또한 반복됐다. 그러나 위기에 단련된 제작진은 지난 5월말 반등을 이뤄냈다. 골수팬들마저 반길만한 박세리 편을 대대적으로 편성한 다음, 뒤이어 원투펀치인 박나래와 기안84를 내세워 바람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고 쾌속 항해를 시작했다. 이후 유아인 등 현 제작진이 중시하는 쇼잉으로 화제성을 이어가면서 스핀오프 프로그램이자 유튜브 진출 콘텐츠인 한혜진, 박나래, 화사를 중심으로 한 여은파얼간이들의 웃음과 재미를 대체했다.

여성 예능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박나래의 간판 프로그램인 만큼 리뉴얼의 방향은 확실하다. 여자 예능이 안 된다던 고전적 이유들인 몸개그, 망가짐도 불사한다. 남성 출연자 위주의 기존 예능 틀에 여성만 끼워 넣던 지난날과는 달리 여자들이기에 가능한 소재와 분위기로 점철된 쿨하고 재밌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튜디오 패널의 무게중심도 이시언, 성훈, 헨리 등에서 한혜진, 손담비, 장도연 쪽으로 옮겨가면서 최근 예능 트렌드 중 하나인 여성 예능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여은파>를 런칭한 후 나 혼자 산다 채널의 구독자는 6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향과 변화의 변곡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스튜디오 토크에서 전개되는 스토리가 사라지면서 느슨해진 무지개 커뮤니티와 보여주기식 일상으로 점철된 와중에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버팀목이자, 철옹성과 같은 견고한 충성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 불가한 기안84, 박나래 등의 캐릭터가 지닌 오리지널리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담당하고, 위기 때마다 그의 개인기에 기대어 돌파해온 제작진 입장에서 기안84여성 비하 표현 논란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장면의 너무나 세속적인 전개는 그간 프로그램이 다뤄온 기안84의 순수한 나머지 엉뚱하고 기발하며 결과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캐릭터와 상충된다. 일각에서 이 논란을 여혐이라 표현하며 남녀 대결구도의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하차 요구를 하니 더욱 난처하다.

웹툰 상의 문제로 힐난하며 방송 하차를 요구하는 여의도 스타일 돌팔매나 청와대 청원을 넣고 남녀 갈등 프레임으로 몰고 가서 한 사람을 끝장내야 일이 해결될 것처럼 구는 인터넷 혐오 문화는 분명 과하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웹툰이란 장르적 특성이 전가의 보도와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사안은 일차원적인 은유를 통한 반사회적 통념을 10대들도 즐겨보는 플랫폼과 콘텐츠에 담았다는 게 문제다. 사과문을 보면 사회 세태를 꼬집기 위한 풍자적 맥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여성을 그리는 방식, 그러니까 다소 비뚤어진 여성관에서 비롯된 누적된 불편함이 임계점을 넘어선 셈이다.

많은 언론과 시청자들이 지적하듯이 기안84가 만든 크고 작은 논란이 있을 때마다 <나 혼자 산다>는 이를 흡수해 기안84의 캐릭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치, 사회적 통념과 굴레를 따르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포함해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오로지 이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였다. 그리고 승리, 마이크로닷에서 최근 한혜연까지 물의를 일으킨 출연자들을 수없이 다뤄본 제작진인 만큼 위기관리 능력과 경험은 그 어떤 예능 제작팀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덮어놓고 넘어가는 측면 돌파로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방송이라도 대부분이 여성 출연자인 상황에서 다독이며 챙기기는 너무나 어색한 사안이고, 귀여운 실수 프레임을 쓰기에는 까다롭고 무거운 이슈다. 로드맵의 지향점과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현재의 자산의 충돌이란 점에서 유감을 표현하는 방식부터 고민스럽다.

결국 뜨거운 논란 속에 이번 회차 시청률은 8%대로 하락했다.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곽도원과 박나래를 쥐어짠 콘텐츠 탓도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여성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나 혼자 산다> 입장에서 기안84와 관련된 논란이 시청률 하락의 요인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 번 위기관리의 묘수를 선보일 것인지, 미래를 선택을 할 것인지, 기존의 자산을 보호할 것인지 골치 아픈 상황에 빠졌다. 무엇보다 이 땅에 없던 여성 예능의 전성시대를 열기 위해 가열차게 달리던 차에 발생한 변수라 더욱 뼈아프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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