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김래원이 그려낸 눈물 흘리는 괴물의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낮과 밤>의 액션 버전인가. tvN 월화드라마 <루카: 더 비기닝(이하 루카)>의 세계관은 역시 tvN에서 같은 시간대 방영되었던 <낮과 밤>을 자꾸만 연상시킨다. 비밀리에 이뤄진 모종의 실험이 그렇고, 그 곳에서 탄생한 비극적인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이 그렇다. 그 슈퍼히어로는 도주 중이고 그 실험을 했던 연구원과 연구소는 그들을 추적한다는 상황도 그렇고, 이들이 능력만큼 갖게 된 장애가 있다는 설정도 그렇다. <낮과 밤>의 도정우(낭궁민)는 초능력을 가졌지만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고, <루카>는 여러 유전체가 복합된 존재로 전기 스파트를 일으키는 등 여러 능력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뇌세포가 파괴되어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같은 채널에서 연달아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가 비슷한 세계관을 그려내고 있다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아마도 타 방송사에서 방영되었다면 그 유사한 세계관이 구설수가 될 수도 있을 상황이다. 하지만 같은 채널인데다, 두 드라마의 유사한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루는 방식이 차이점이 있다는 점은 이런 구설을 피하게 해준다.

가장 특징적으로 다른 건, 이 두 드라마 속 인물의 성격이다. <낮과 밤>에서 도정우는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하고 늘 냉소적인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래서 시청자는 그가 궁금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몹시 궁금하고, 그 속내가 궁금하며 궁극적으로는 그가 혹여나 괴물은 아닐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지게 된다.

하지만 <루카>의 지오는 도정우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는 좀 더 존재론적인 비극의 주인공이다. 각종 동물의 유전체의 결합으로 탄생한 그는 그 자체로 인간인지 괴물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탄생하는 그 과정의 존재라면, 실험을 통해 탄생한 그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지오의 얼굴은 도정우와 달리 갖가지 감정들이 뒤범벅된 모습을 계속 드러낸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고,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것은 그가 눈이 파랗게 변하면서 전기를 끌어내는 그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는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죽고 싶어질 때, 세상이 파랗게 변하고 자신의 몸에 전기가 흐른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구름이(이다희)는 가장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라고 말해준다. 진화가 어떤 위기의 상황에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일어나는 것처럼, 지오는 죽음의 순간에 삶의 욕망이 증폭되고 그것이 어떤 힘으로 발현되는 존재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의 인간이 아닌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조합되어 만들어진 괴물 같은 지오가 이 드라마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지오의 모습은 그래서 그와 대적하는 이손(김성오) 일당의 무감한 얼굴들과,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속내를 알 수 없는 김철수(박혁권)나 미치광이 연구원 류중권(안내상)의 얼굴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지오는 그래서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연민이 가는 존재다. 그 연민을 시청자들과 연결해주는 인물이 바로 구름이다. 애초 구름이는 부모의 실종이 지오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그의 비극을 이해하며 다가가기 시작한다. 지오의 괴력은 사실은 죽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고,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공포심의 발현일 뿐이라는 걸 그는 알게 됐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두렵고 심지어 친구라고 사칭하며 다가와 속이는 이들까지 있는 세상 속에서 그는 어둠 속 누군가 나타나기만 해도 털이 곤두서는 위기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런 위기감이나 공포를 주지 않는 인물이 구름이다. 구름이를 통해 이 비극적인 존재는 어떤 편안함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 때문에 갖게 된 그의 능력은 그래서 초능력이 아닌 천형이다. 그 욕망을 깨고 편안함에 이르려는 지오의 사투와 그를 이해하면서 돕게 되는 구름이의 동행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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