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일체’, 실패를 유머로 승화하는 것과 활용하는 건 다르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개그맨이면 재밌게 하시는 걸로 활동하셔야지 왜 갑자기 요들로...바꾸셔서. 실패하신 건가요? 개그맨에 실패했어요? 인정하는 겁니까?” “미안한데 죄송한데 우리까지 기운이 안 좋아지는 것 같으니까 그냥 가세요.” SBS <집사부일체>에서 탁재훈은 실패담을 얘기하러 나온 개그맨 박성호에게 그렇게 면박을 줬다. 그리고 탁재훈의 그런 면박에 찐당황한 얼굴을 보이는 박성호를 보며 출연자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깔깔 웃었다.

은퇴한 야구선수 심수창이 18연패 기록,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 등을 이야기할 때도 시합인 줄 모르고 나온 거예요?”라고 묻고, 솔비가 자신이 과거 활동했던 타이푼을 아냐고 묻자 무일푼만 안다며 결국 무일푼이 됐잖아요? 타이푼이. 뭐 무일푼이면서 뭘 있는 척을 해.”라고 쏘아댈 때도 출연자들은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집사부일체>가 이른바 실패스티벌특집으로 마련한 실패스타는 일종의 실패담을 통해 톱5를 뽑는 오디션 방식의 상황극을 담았다.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부분 1, 우승이라는 성공만을 목표로 삼지만, 이 특집은 거꾸로 누가 더 실패했는가를 갖고 톱5를 뽑는 것이니,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그 취지가 나쁠 리 없었다.

하지만 이 신박해 보이는 아이템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 올드했고, 지금의 감수성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기에 불편하기도 했다. 그것은 실패를 유머로 승화하고 이를 통해 어떤 위로를 준다기보다는, 실패담을 가져온 이들을 깎아내리고 면박을 주면서 웃기는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 실패담을 갖고 온 이들은 이것이 일종의 상황극이라는 걸 인지하면서 맞춰주고 있었지만, 그것이 시청자들에게는 달리 비춰질 수 있었다. 마치 실패라는 소재를 웃음에 이용하는 것처럼.

개그맨 이진호와 김용명이 나왔을 때는 옛날 예능 방식 중 하나인 몰아가기토크를 보여주기도 했다.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눈치 없이 끼어들기 토크를 해서 실패했다는 이진호에게 탁재훈은 김구라의 제지가 없었냐고 물었고, 없었다고 말하자 이승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김구라씨에 대한 서운함이 있냐고 묻자 살짝 서운했다고 말하는 이진호에게 탁재훈이 남탓이 심하네라고 단정 짓는 식이다. 결국 이진호는 그런 몰아가기 방식 토크에 대해 남탓을 하게끔 계속 유도질문을 하잖아요!” 라고 말했고, 김용명은 쌍팔년도 수사기관도 아닌데.. 계속 주입식으로 하는데.. 네 그래요 .했어요...하지 어느 누가 안했다고 그래요라며 유머로 받아쳤다.

실패스티벌을 위한 실패스타를 담는 연출 방식 또한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 연출 방식은 여러모로 MBC <놀면 뭐하니?>신박기획동거동락을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을 줬다. 오디션이 열린 지하 사무실은 마치 신박기획의 상황극을 보는 듯 했고, 앞으로 열릴 실패스티벌의 출연자들이 벌이는 게임은 동거동락의 게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래서 이 특집은 더더욱 올드한 느낌을 줬다. 과거 <무한도전> 전성기를 떠올리게 해서다. 당시 그토록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의 아이템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모방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이번 <집사부일체> 특집에서 유일하게 괜찮았던 부분은 ‘6030:1’의 경쟁률을 뚫고 실패담을 가져온 빚블리라는 시청자의 참여 부분이다. 7년 정도 무명배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오디션에서 서류심사만 1500번 탈락했다는 그는 십자인대 파열에 전세 사기까지 당한 진짜 실패담을 들려줬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그런 실패를 맞본 빚블리가 오히려 탁재훈을 위로하는 대목이었다. 그 광경은 큰 웃음을 주었지만, 그건 빚블리의 진심 또한 담겨 있었다.

애쓰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빚블리가 탁재훈에게 던진 그 한 마디는 마치 이 날 <집사부일체> 특집에 하는 말처럼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웃음을 만들어내겠다는 과한 애씀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로도 들렸기 때문이다. 무명배우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싶었을 텐데 굳이 빚블리라는 익명을 쓴 이유에 대해서 그가 실력으로 나중에 보여드리고 싶어서라고 말한 대목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도 그 방식이 과하거나 엇나가면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번 <집사부일체>가 실패를 소재로 가져와 꾸린 특집 실패스티벌이나 실패스타는 그런 점에서 아쉽다. 실패라는 소재 자체는 좋았지만 이를 담는 그릇이 너무 옛날 방식(애써 웃기려 무리한 토크에 안간힘까지 쓰던)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애쓰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한 무명배우의 한 마디가 남긴 무게감이 남다른 여운을 준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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