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이 ‘알쓸신잡4’가 되지 못하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방송가에 나타난 하나의 경향이 이른바 트리비아 프로그램의 출현이다. 어쩌면 잡지식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메인 MC의 지휘나 전문가의 해설 혹은 강연이 아닌 친구끼리 나누는 듯한 탈권위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시즌2까지 나온 SBS <꼬꼬무> 시리즈나 MBC <심야괴담회>, 파일럿으로 선보인 SBS <당신이 혹사는 사이>, 오늘 칼럼에서 다룰 tvN <알쓸범잡> 등이 그러한 유형의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예능적 터치가 가미되지만 교양 영역의 소재를 다룬다. 다수의 출연진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캐릭터플레이가 있는 토크쇼와 구분된다. 이야기를 전달하고 굴려가는 스토리쇼의 정체성이 확실하다. 장항준 감독이나 윤종신 등 반복되는 몇몇 이름도 눈에 띈다. 특히 미국에서 돌아온 윤종신은 예의 그 호기심과 재미를 만들어가는 성향을 바탕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이쪽으로 삼은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로 범죄를 주요 소재로 다룬다. 최근 TV를 비롯한 유튜브에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이슈나 인간의 파렴치함을 엿볼 수 있는 범죄 관련 콘텐츠들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관련한 부동의 콘텐츠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Y>, MBC <실화탐사대> 등이 무척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사회 각계의 명사들을 초청하는 유일한 토크쇼 tvN <유퀴즈>에서도 최근 범죄 관련 전문가 섭외가 부쩍 늘어났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영미권에서도 최근 가장 뜨거운 장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다큐다.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 속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는 <알쓸범잡>은 이런 흐름을 잘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난 2018년 이후 소식이 끊긴 <알쓸신잡>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즌3를 통해 일약 대중 지식인이 된 김상욱 교수 이외 출연진은 모두 교체됐지만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출연진이 함께 어딘가를 여행하면서 저마다의 지식과 시선으로 주제를 바라보고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며 지적 향연을 펼친다는 설정은 같다. MC 유희열의 역할을 윤종신이 대신하고 그의 절친이자 유튜브가 쏘아올린 또 하나의 대세, 장항준 감독이 <꼬꼬무>에 이어 유사한 콘텐츠에 또 한 번 얼굴을 내비친다.

범죄라는 특정 주제를 잡았기에 스스로 잡학이라며 함께 어우러져 지식의 난장을 피우던 <알쓸신잡> 시리즈와는 달리 제작진이 기획의 출발점으로 삼은 범죄 심리학자 박지선과 판사 출신 소설가인 정재민 법무심의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한다. 일제가 만든 범죄부터, 부산의 마약 이야기, 형제복지원, n번방 조주빈, 범죄 예방 환경 개선의 계기가 된 김길태 사건 같은 역사적 사회적인 사건들과 연쇄살인범 정두영, 김길태, 유영철 등을 다루면서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상을 하고 일요일 심야 시간대로 편성했겠지만 시청률이나 화제성이나 시청자들에게 남는 효용이나 <알쓸신잡>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역시나 거리가 있다. 시즌을 거듭할 때마다 시청률도 1%씩 떨어진 마당에 범죄물이 아무리 요즘 인기라고 해도 새롭지 않으면 무용하기 때문이다. 나오는 사건은 대부분 뉴스 보도나 앞서 나온 프로그램에서 심도 깊게 다뤄진 잘 알려진 범죄들이다. 게다가 시즌 1의 김영하 작가, 시즌2의 유현준 교수, 시즌3의 김상욱 교수처럼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신선한 이야기꾼이 부재할 뿐 아니라 유시민 작가처럼 잡학 사전이란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역사, 식문화, 건축, 과학, 문학 등 다양한 지식이 융합되면서 나타나는 지적 효능감을 이끌어낼 잡학 박사가 없다.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알쓸신잡>과는 달리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고, 인상적인 지식이 남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면서 <알쓸신잡>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온가족 콘텐츠, 학습 교양의 가치가 반감됐다. 여행지의 낭만, 맛있는 밥상, 즐거운 웃음 위에서 지식의 초식을 겨루는 고수들의 팽팽함은 강연 예능 이외에 지식 콘텐츠를 생각해본 적 없는 우리에게 무척 새로운 형태와 내용을 담은 지식 예능이었다. 방송에서 언급된 책을 사보게 만들 만큼 학습 욕구를 자극하는 학구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지식 습득이란 효용이 작동했다.

이런 마당에 <알쓸범잡>의 재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든다. 범죄물은 리얼리티에서 오는 섬뜩한 자극으로 간접경험을 극대화한다. 허나 자극을 살리자니 출연진의 매력과 지식 콘텐츠의 틀을 벗어나게 되고, 최대한 정제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지금처럼 르뽀 프로그램을 연성화한 토크쇼 콘텐츠에 머물게 된다. 해당 범죄를 더 자세히 제대로 알려주는 다른 대안들이 이미 존재하는 만큼 신선도도 낮다.

그래서 드러내는 의의가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는 경각심이다. “범죄라는 게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함께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하지만 3회까지 <알쓸범잡>을 통해 대처에 관한 이야기는 접하지 못했다. 몰랐던 사건을 파헤치는 것도 아니고, 기존 보도에 드러난 내용 이상의 자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범죄에서 지적 재미까지 만들어야 한다. 겹겹이 쌓인 이 미션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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