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인잡’, 유시민·유희열 시절 버금가는 전성기 되찾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캐스팅을 잘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여섯 번째 시리즈 <알쓸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는 현실적인 고민과 브랜드의 연속성과 마케팅 요소와 시대정신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가장 최근작인 <알쓸범잡1,2>가 범죄 예능으로 방향을 튼 것은 팬데믹 시대에 스토리텔링 예능의 상승세를 이끈 범죄 콘텐츠의 유행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알쓸신잡> 시리즈의 간판이었던 유희열과 유시민이 각기 저마다의 이유로 방송 출연이 어려워진 탓이 더 커보였다. 결국 시청률 또한 반 토막까지 내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알쓸인잡>에는 수다를 통한 지적 향연을 펼쳤던 개국공신 소설가 김영하가 돌아와 분위기를 환기하고, 시즌3부터 모든 시리즈에 모두 참여한 물리학자 김상욱이 마찬가지로 자리를 지키면서 <알쓸신잡>스러운 향수를 일으킨다. 여기에 가벼운 캐릭터를 가진 박학다식한 대중문화인이면서 자신만의 유머 감각을 갖춘 <알쓸범잡1>의 장항준 감독이 MC로 합류해 비슷한 역할과 캐릭터인 유희열을 대신한다.

그리고 새로운 얼굴이 있다. <유퀴즈>를 비롯한 여러 방송에서 입담과 존재감을 과시한 법의학자 이호 교수와 전공부터 신비로운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함께하면서 익숙한 반가움과 새로운 기대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판을 만들었다. 다양한 관점에 따라 이 구성에 대한 다른 판단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첫 녹화를 11시간이나 했다는 장항준 감독의 투덜거림이 증명하듯 <알쓸신잡> 시리즈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살롱 문화’를 엿보는 듯한 지적 수다가 되살아났다.

게다가 BTS의 RM이다. 물론, 2차 판권 전개나 마케팅 요소 등 아이돌 캐스팅이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천하의 BTS라 하더라도 방송 시청률을 담보할 순 없다. 하지만 RM은 20대의 젊은 피나, 글로벌 아이돌이란 지위보다 무지막지한 예명과 달리 섬세하게 시대정신을 표현해온 아티스트이며 미술, 출판계의 메가 인플루언서라는 데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알쓸인잡>이 추구하는 바와 효용을 놀랍도록 정확히, 또 솔직하게 짚고 있다.

RM은 “책을 읽기는 귀찮은데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알쓸신잡>을 찾아봤다. 인생이 엄청 긴데 지식에 대한 탐구나 사유를 빼고 인생을 살면 재미가 없고 지루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물며’ BTS도 그럴진대 바로 이 효용성이 오늘날 대중이 원하는 지식 콘텐츠의 사명이고, <알쓸신잡> 시리즈가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이유다. <알쓸인잡> 제작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왜 지금, 인간일까?

과거 인문학을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이라는 식의 수단으로 접근해 방송 콘텐츠로 각광받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알쓸신잡>은 목적의식 없이, 결심이 필요하지 않도록 문턱을 낮춘 ‘신비한 잡학’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수준 높고 풍성한 지적 향유를 제공했다. 분류 또한 예능이다. 이 순수성과 가벼움이 TV를 편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지식을 섭취하는 효용으로 다가왔다. 그에 반해 스핀오프 <알쓸범잡>은 스토리텔링 예능의 가치는 있지만 내 삶에 도움을 준다는 효용성 측면에선 한계가 명확했다.

다시 시작한 <알쓸인잡>은 훨씬 직접적이다.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의 거울로 삼는 탐구를 내세운 이번 시리즈는 내 삶에 도움이 되는 효용이란 가치로 돌아왔다. 특히 모든 것이 어렵고, 기댈 수 있는 경험과 이치가 무너지고 무뎌지는 오늘날, 포기하거나 염세적으로 변하기보다 더 나은 내일을 열기 위해 자기 자신을 고취하고 단련하는 고군분투의 시대정신, 나답게 잘 살아가기라는 오늘날 자기계발 붐과 맥락을 같이한다. 바로 이런 흐름을 파악하고 시대정신을 대중적인 콘텐츠에 녹여내는 점이 이들 사단이 대중성을 십여 년째 놓지 않고 있는 이유다.

첫 번째 토크 주제로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을 다뤘다. 각자 화성에 헬리콥터를 띄운 과학자 ‘미미 아웅’, 조선시대의 ‘허균’, ‘찰스 다윈’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부터, 잘 알려진 인물의 몰랐던 이야기까지 소개했다. 흥미로운 열전을 듣는 이유, 그리고 중간중간 “의사란 그 시대의 아픔을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이호 박사의 말이나 “타인을 통해 나를 알게 된다”는 김영하의 말이나 ‘실패와 실수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김상욱 교수의 이야기에서나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나다움의 찾아가는 긍정의 메시지다.

다만, 아직 첫 회라서 그런지 입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듯하다. <알쓸신잡>이 수다를 통한 지적 즐거움을 향유하는 살롱 문화의 한 변형에 가까웠다면, <알쓸인잡>은 <알쓸범잡>에서 이어지는 각자 패널들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소개하는 스토리텔링 예능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MC진도 함께 어우러지는 수다의 향연이 살짝 아쉽기는 하다. 그럼에도 내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효용에 대한 기대가 꺾일 수준은 아니다. 실제로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4.2%, 최고 5.9%를, 전국 가구 기준 평균 3.5%, 최고 4.8%를 기록해 <알쓸범잡> 시리즈의 시청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방송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에 대한 오늘날의 수요를 파악한 제작진과 이를 RM이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전개와 활약이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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