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젠 멸망 정도는 캐릭터화해야 되는 멜로도 눈길 끈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그 독특한 제목이 먼저 시선을 끈다. 보통의 드라마 제목과는 상당히 색다른데다, ‘멸망’이라는 단어가 워낙 강렬하다. 그래서 호기심을 잡아끈다. 누가 봐도 판타지 멜로지만, ‘멸망’이라니.

막상 드라마를 보면 멸망(서인국)이라는 추상적 단어는 인물로 캐릭터화 되어 있다. 인간이 아니고 그저 무언가를 멸망시키기 위해 서 있는 존재. 그는 병원에서 살아가며 누군가의 끝을 끝없이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인간이 아니기에 죽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런 존재가 어느 날 탁동경(박보경)의 소리를 듣고 새벽에 문을 두드린다. “세상 다 망해라! 다 멸망해버려!”라는 외침을 듣고는.

인물은 마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김신(공유)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도깨비의 ‘다크 버전’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멸망은 도깨비와는 그 존재 자체가 다르다. 도깨비는 상상의 소산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캐릭터라면, ‘멸망’은 단어 그대로 추상이 구상화된 캐릭터다. 그래서 동경의 외침에 새벽 저벅저벅 문을 열고 들어온 멸망은, 동경이 가진 절망적인 상황을 담은 하나의 추상적인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멸망이라는 추상을 캐릭터로 세워두고, 동경과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담보로 동경은 멸망과 계약을 맺고, 함께 거리를 걷고 급기야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은 마치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의 밀당 하는 남녀의 관계로 그려진다. 두려움에 횡단보도 앞에서 망설이는 동경의 손을 잡고 건너 주는 달달함을 보이는 멸망은 순간 얼굴을 바꿔 누군가를 멸망시키는 섬뜩하고 가혹한 얼굴을 드러낸다. 차가움과 친절함을 오가는 그 캐릭터는 밀당 하는 남자 주인공을 닮았다. 게다가 멸망은 자신 또한 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존재라는 점에서 비극적인 공허와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그 밀당의 설렘과 섬뜩함을 오가는 멜로의 틀로 들여다보면 이 다소 이질적인 드라마가 의외로 몰입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동경이 처한 100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에 교제했던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는 현실적인 고통이 만들어내는 연민도 작용한다. 동경의 힘겨움은 마치 청춘들의 죽은 것 같은 현실을 추상적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멜로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죽을 것 같은 현실을 어떻게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멸망’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세계관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이를 믿게 만들지 못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멸망과 동경이라는 쉽지 않은 연기를 해내고 있는 서인국과 박보영의 공을 상찬할 수밖에 없다. 추상적 세계도 감정이입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면서도 마음이 가는 캐릭터들을 이들이 구상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멜로는 그 이야기 틀거리가 시청자들에게 이미 거의 드러나 있어 그만큼 기대를 만들지 못하는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멸망’ 정도는 다뤄줘야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중요한 건 그걸 구현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서인국과 박보영이라는 존재가 있어 이 드라마가 추상의 어색함에 머물지 않게 됐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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