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4’, 무엇이 열광하던 찐팬들을 이토록 화나게 만들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N 정종연 PD의 야심작 <대탈출>은 ‘블록버스터’임을 강조해왔다. 오죽하면 ‘나영석이 벌고 정종연은 쓴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 게임쇼가 굳이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건, 어떤 면에서는 게임 예능이 가진 마니아적 성격을 그 스케일을 통해 채워보려는 욕망 때문이었을 게다. 그저 ‘방 탈출 게임’의 TV버전 정도가 아니라, 예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스케일을 넣어 좀 더 보편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고픈 욕망.

하지만 시즌3까지 해왔던 <대탈출>의 시청률을 보면 이 프로그램은 어쨌든 마니아들이 빠져 보는 예능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시즌1 2.2%, 시즌2 2.9% 그리고 시즌3 2.9%가 최고 시청률이다. 물론 시청률이 투자대비 낮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실패했다 보긴 어렵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들의 성패를 가르는 건 시청률보다는 ‘찐팬(팬덤)’이 얼마나 있는가 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탈출>은 성공한 예능이다. 상상 초월 스케일을 보여주면서 적어도 게임쇼에 진심으로 관심이 높은 마니아층을 찐팬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대탈출4>가 시작 전부터 ‘탈지구급 어드벤처’라는 문구로 시작한 건 이미 확고히 확보한 찐팬들에게는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시즌 ‘백 투 더 경성편’이 타임머신을 타고 경성으로 날아간 이야기로 워낙 화제가 됐고, 이번 시즌4는 그 세계관의 연장선이 있다는 이야기도 찐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설렘과 관심은 <대탈출4> 첫 방송 시작부터 날아가 버렸다. 그것은 출연자들이 아무런 사전 복습 없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첫 대목이 준 실망감 때문이었다. 사전 미팅 때 시즌3의 ‘타임머신 연구소’와 ‘백 투 더 경성’ 재시청을 요망한다는 공지를 알림에도 불구하고, 첫 촬영날 출연자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복습을 해온 이는 유병재와 신동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방송은 이렇게 복습을 해온 우등생과 그렇지 않은 열등생을 나눠 그것조차 예능적인 코드로 풀어내려 했지만, 찐팬들 입장에서는 웃어 넘겨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즌3가 끝난 지 1년이 지나 가물가물한 기억 때문에 찐팬들은 제작진이 유튜브에 미리 공개해놓은 이전 시전들을 꼼꼼히 복습했던 터였다.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막상 그 세계 속에서 게임을 해가며 사건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출연자들이 전혀 숙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웃어넘길 수 있을까.

이런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한으로 날아간 출연자들이 당면한 미션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도드라진 역할을 해내는 이들은 결국 복습을 해온 신동과 유병재였던 것. 강호동, 김종민, 김동현, 피오는 이들이 이끌고 다니는 길에서 엉뚱한 토크를 던져 예능을 하는 정도의 역할수행을 보여줬다. 물론 이후 좀 더 몰입해가면서 다른 출연자들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첫 방에서 보여준 출연자들의 프로그램을 임하는 태도다. 이 정도로 준비를 안 해오고 나아가 팬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출연자들에게서 프로그램에 대한 어떤 진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최근 방송은 시청률 지표로 상징되는 보편적 시청자를 확보하기보다는, 수치는 좀 낮아도 진짜로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찐팬의 확보가 더 중요해졌다. 프로그램 하나의 성공보다 확보된 찐팬들을 통해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나아가 사업까지의 확장성이 가능해진 시대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화된 방송 소비 환경 속에서는 찐팬도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글로벌로 묶인 찐팬들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런 찐팬들을 겨냥한 프로그램일수록 그 세계관에 깊이 빠져든 시청자들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제작진과 출연자가 모두 그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찐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마니아들의 세계관이란 가상이라고 해도 몰입을 통해 진짜처럼 실감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그 몰입을 깨는 요소들은 불편함을 넘어 불쾌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최근 들어 찐팬들을 겨냥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들이 성공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채널A <강철부대> 같은 프로그램은 밀리터리 서바이벌이지만, 밀리터리 마니아나 슈팅 게임 마니아들까지 끌어 모음으로써 강력한 팬덤을 가질 수 있었고 이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도시어부>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도 ‘낚시에 미친 자들’을 출연시킴으로써 역시 낚시마니아들을 끌어 모았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경우, 여자축구라는 소재를 가져와 누구보다 축구에 진심인 출연자들의 면면으로 단박에 찐팬들을 끌어 모았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경향과 그 소비 방식의 변화를 인지한다면, 이번 <대탈출4>가 어째서 시작하기 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기대감이 시작하고 곧바로 실망감과 분노로 이어졌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스케일만 키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찐팬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거기에 맞는 진지한 자세와 진심어린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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