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사랑의 불시착’이 된 ‘갯마을 차차차’를 보는 두 개의 관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2019년 말에 방영됐던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국내에서도 최고 시청률 21.6%(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해외에서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특히 일본에서는 <사랑의 불시착>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로 화제였고 지금도 그 열기는 여전하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웹툰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져 일본 내 K-웹툰 열기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이렇게 해외에 관심을 받게 된 건 다름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되면서다.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이 정도의 반응이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게 제작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두 작품 중 <사랑의 불시착>은 스튜디오 드래곤이 문화창고와 함께 제작한 드라마로 CJ 계열의 OTT 회사인 티빙에서도 소개됐다. 하지만 티빙보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그래서 해외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오인되는 경우조차 있었다.

지난해 10월 티빙이 CJ ENM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막대한 콘텐츠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힌 건 OTT가 이제 시대의 플랫폼으로 자리하게 됐다는 걸 잘 말해준 대목이었다. 하지만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한 <사랑의 불시착> 같은 작품이 티빙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글로벌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건 현재의 OTT 현실을 잘 드러내주는 하나의 사건이 됐다. 그리고 이런 일이 현재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티빙 인기 프로그램에서 10위권에 들어가 있는 <갯마을 차차차>는 놀랍게도 넷플릭스 전 세계 TV쇼 순위 7위에 올라있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가려진 면이 있지만, <갯마을 차차차>는 ‘Hometown Cha-Cha-Cha’라는 영문제목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같은 동남아에서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이야 넷플릭스가 투자해 제작한 작품이니 그렇다 치지만,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제작한 <갯마을 차차차>가 티빙보다 넷플릭스에서 이렇게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화제가 된 한국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넷플릭스의 개인화 알고리즘이 어느 정도 일조한 면이 있지만, <갯마을 차차차>라는 작품이 주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와 코로나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힐링이 만든 힘도 무시할 수 없다.

보통 OTT들의 경쟁력은 독점적인 콘텐츠에서 나온다. 그래서 애초 콘텐츠 기업이 아닌 플랫폼 기업으로 시작한 넷플릭스가 유독 오리지널 콘텐츠에 매년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건 바로 이 독점적인 콘텐츠를 직접 제작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게다가 <갯마을 차차차>까지 제작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했던 티빙은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OTT로서의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티빙에 서비스되긴 하지만 이들 작품들이 빛을 본 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티빙으로서는 이제 본격적인 서비스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시점이라 나타나는 한시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오징어 게임>처럼 잇따른 글로벌 성공으로 한국의 콘텐츠 제작능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고 거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스튜디오 드래곤 같은 제작사와 연계된 티빙이 언제쯤 글로벌 OTT 시장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래서 한시적으로 넷플릭스와 티빙 양쪽에 발을 걸친 채, 국내 OTT 시장을 다지고 해외에 콘텐츠 경쟁력을 드러내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신드롬을 내고 있는 이런 상황이 티빙 측에도 또 하나의 기회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넷플릭스를 통해 신드롬을 내고 있는 한국콘텐츠들에 대한 관심이, 티빙 같은 토종 한국 OTT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티빙은 이런 기회를 활용해 막대한 규모의 투자 유치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오징어 게임>이나 <킹덤> 같은 작품의 성공은 거기 출연한 배우들이나 제작진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니 이들이 향후 스튜디오 드래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티빙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뒤바뀔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독점적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티빙 같은 토종 OTT의 존재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인가 플랫폼인가. 이 질문은 OTT 시대에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현재 콘텐츠로서 글로벌한 경쟁력을 증명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담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에 한국의 콘텐츠를 활용해 놀라운 가성비의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로서는 양자가 서로 필요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밀월 관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대결이 첨예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티빙이 아닌 넷플릭스로 <갯마을 차차차>가 주목받는 건 현재 국내 OTT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들을 거쳐 차츰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건 어떤 면에서는 국내 OTT들에게도 기회요소로 돌아올 수 있다. 콘텐츠는 물론이고 플랫폼까지 제대로 갖춰지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재로서는 절충을 통해 때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을 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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