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헤중’ 송혜교·장기용의 ‘지금 사랑’에 담긴 과거와 현재의 대결

[엔터미디어=정덕현] “10년 전 내가 찍은 그 길은 하영은씨 말처럼 막막하고 막연하고 다 모르겠는 그런 길이었어요. 근데 지금 이 길은 알 것 같아. 내가 어디로 가야될지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지... 그 사진을 사간 어떤 여자 때문에 난 10년을 버텼고, 우연히 그 여자를 만나 미친 듯 심장이 뛰었고, 그 여자 때문에 미친놈처럼 비행기를 취소했고, 그 여자가 여기 있어서 나도 여기 남아있기로 했어요. 그래도 안 된다면 그런데도 도저히 안 되겠다면 그럼 우리 헤어지자. 10년 전에 이미 시작된 우리가 지금 헤어지는 중이라고 하자.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동안만 우리 사랑하자. 하영은.”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윤재국(장기용)은 하영은(송혜교)에게 그렇게 고백한다. 그의 사랑 고백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그는 10년 전 이미 하영은과 있었던 인연을 이야기한다. 그 때 그는 ‘막막하고 막연한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영은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그러니 그 길을 찍은 사진이 그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떨어져 있었지만 그 사진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래서 헤어졌지만 만나고 있었다. 그 10년을 지나오며 드디어 다시 만났지만 그들 앞에는 10년 전 죽은 윤수완(신동욱)이라는 ‘과거’가 장벽처럼 놓였다. 윤재국에게는 형이자 하영은에게는 전 연인이었던 과거.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라는 제목에는 ‘지금’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사이에 쉼표(,)가 찍혔다. 그래서 이 제목이 강조하는 건 ‘지금’이다. ‘지금’조차 ‘헤어지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어서다. ‘지금’이 강조되는 건,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거 때문에 밀어내고 멈춰서고 부인하는 하영은 앞에 윤재국이 ‘지금’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건 마치 시간 앞에 가녀린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걸 넘어설 만큼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서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윤재국과 하영은의 사랑을 그려나가는 멜로드라마지만, 그 안에는 우리네 삶이 마주하는 과거와 현재의 대결이 들어가 있다. 하영은의 둘도 없는 친구 전미숙(박효주)은 췌장암 선고를 받고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본다. “지민이 더 크면, 다음 달에 적금타면, 평수 좀 넓은 데로 이사 가면, 맨날 다음에 다음에 그랬더니 내 딸은 남의 집 애들 다 입는 잠바 하나도 없고, 내 꼬라지도 이 모양이고 다 그지 같고 신경질 나서...” 우리네 삶이 꼭 그의 이야기 같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미루며 살아가는 삶.

황치숙(최희서)은 윤재국에게 첫 눈에 반해 무조건 직진하며 들이대지만, 철벽을 치며 거절당한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져주는 이가 바로 그의 앞에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바로 석도훈(김주헌)이다. 하영은의 엄마 강정자(남기애)와 윤재국의 엄마 민여사(차화연)는 살아온 삶의 과거가 완전히 다르지만 지금 현재 함께 문화센터에서 요리를 배우며 친해진다. 이들은 모두 과거와 현재가 맞부딪치는 상황에 놓여있다. 과연 이들은 과거가 만들어내는 갈등을 넘어서 지금 현재를 선택할까.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의 갈등은 하영은이 마주한 일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그는 패션회사 더 원의 탑브랜드 소노를 처음 만들었고 지금껏 이끌어온 장본인이지만, 이제 소노는 과거의 브랜드 취급을 받으며 사실상 버려지는 상황에 놓였다. 그의 상사이자 친구인 황치숙은 그가 일에 있어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왔던 과거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그를 보좌해왔지만, 그는 이제 하영은과 선을 그었다. 윤재국이 하영은을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질투심 때문이다.

하영은은 그래서 한 때 탑브랜드였던 과거의 소노가 아니라, 이제 더 원이 버린 지금의 소노를 자신의 힘으로 다시 키워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난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칼 라거펠트의 말로 시작하는 이 회차의 이야기는 그래서 하영은이 과거를 지워내고 지금 현재 아무 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 먹고 살기 위해 디자인을 유출해 카피를 만들어냈던 최희자(김영아) 실장과 다시 이번 일을 하고는 싶지만 그 과거사의 두려움과 부담 때문에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하영은에게 윤재국은 고민하지 말고 현재를 선택하라고 조언해준다. 결국 하영은은 그렇게 최희자를 찾아가 손을 내민다. 그 광경은 마치 과거를 떨쳐내고 현재와 손잡는 모습처럼 그려진다.

멜로드라마는 결국 남녀의 사랑을 담는 것이다. 그러니 무수히 반복된 멜로드라마에서 색다른 이야기를 찾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에 대한 관점을 담아냄으로써 멜로 그 이상의 삶에 대한 통찰을 그리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도 또 삶에 있어서도 우리는 얼마나 과거와 지금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나. 그 갈등 사이에서 이 드라마는 ‘지금’을 선택하라 말하고 있다. 그것도 마치 ‘헤어지는 중’인 것처럼 간절하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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