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헤중’, 만남이 아닌 이별의 과정으로서의 사랑, 삶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별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쓴 이별 액츄얼리.’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이런 짤막한 작품 소개가 달려 있다. 우연한 만남과 짧은 이별 그리고 재회. 과거 사랑했던 남자의 이복동생인 윤재국(장기용)을 사랑하게 된 여인 하영은(송혜교). 이런 설정은 익숙하다. 하긴 그토록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나왔고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담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이 익숙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별의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멜로드라마들의 공식은 대부분 일련의 만남의 과정을 통해 결국 사랑 혹은 이별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몇 번의 우연적 만남과 ‘몸이 끌리는’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던 남녀가 사랑하게 되는 걸 ‘이별’의 과정으로 그린다는 색다름이 있다.

그래서 과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망한 남자친구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 윤재국의 이복형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밀어내던 하영은도, 또 그런 밀어냄에도 계속 다가오던 윤재국도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여는 순간 내민 말은 “우리 헤어지자”였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런데도 도저히 안 되겠다면 그럼 우리 헤어지자. 10년 전에 이미 시작된 우리가 지금 헤어지는 중이라고 하자.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동안만 우리 사랑하자. 하영은.” 윤재국은 그렇게 헤어지자며 ‘헤어지는 동안만 사랑하자’고 제안한다.

“그래. 그러자. 우리 헤어지자. 나 이 길이 어딘지 알았거든. 좋은 순간은 너무 금방 지나갈 거고 넌 내가 지겨워질지도 모르고 넌 내가 짜증날 지도 모르고 넌 이 선택을 후회할 지도 모르지만...” 하영은은 윤재국의 이별 선언을 통한 사랑의 제안에 그렇게 답한다. 그러자 윤재국은 “제발 그래보자”고 한다. “그거라도 해보자. 너랑 나 그거라도 해보자.”고.

이 지점은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가 과거의 멜로들과는 다른 특징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건 사랑을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달달한 사랑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삶의 유한함과 결국은 시간에 의해 마모되어갈 관계 등에 대한 통찰이 밑바탕에 깔린 사랑이다. 이 통찰을 통해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건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헤어지는 과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송혜교를 멜로 퀸이라 부르는 건 당연하게도 그가 지금껏 해온 작품들이 대부분 멜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가 또 다시 보여주는 멜로가 너무 같은 캐릭터의 반복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멜로의 연기를 해오면서 그 여러 작품들 속 인물들을 통해 송혜교가 보여준 우리네 삶과 사랑에 대한 가치의 변화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면이 있다.

<가을동화>나 <풀하우스>의 그 동화처럼 풋풋했던 사랑이 있었다면, <황진이> 같은 절절한 시대적 질곡 앞에 선 여성의 강단 있는 삶이 있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과 <태양의 후예>로 이어지는 일과 사랑의 영역을 모두 주도하고픈 여성의 삶과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삶의 시간과 변화들이 담긴 멜로 연기 속에서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로 훨씬 묵직한 멜로의 무게로 돌아온 송혜교에게서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무게가 느껴지는 것.

어쩔 수 없이 유한할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저 영원히 살 것 같은 판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어차피 사멸할 것이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사랑. 드디어 그것이 모두 헤어지는 과정이라고 인식한 연후에야 비로소 “그거라도 해보자”는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고, 송혜교는 이제 말하고 있다. 고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로 말했듯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고, 그래서 더더욱 아름답고 절절하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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