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 같은 ‘불가살’에 담긴 한국형 귀물 판타지의 야심

[엔터미디어=정덕현]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남자. 600년 동안 환생을 반복하는 여자. 이들 사이의 벌어지는 운명적 서사.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은 그 설정에서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바로 김은숙 작가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추측들이 방영 전부터 나왔지만 막상 첫 방을 보고 나면 그 작품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저주 받은 아이’의 등장과 피와 살이 터지는 전장 속에서 귀물들과 사투를 벌이는 자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라기보다는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죽일 수도 죽을 수도 없는 불가살(不可殺)의 저주를 받은 아이가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에게도 핍박받는 과정은 차디찬 설경을 배경으로 살풍경하게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그것이 불가살의 저주를 불러온 아이 때문이라며 그를 죽이려 하는 마을 사람들의 광기는, 이 작품을 쓴 권소라, 서재원 작가가 함께 집필했던 <손 the guest>의 공포감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한국 전통의 신화, 전설 속 존재를 공포를 더한 판타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보다는 <손 the guest>에 더 가까워보인다.

또 고려 말 귀물들을 찾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단극(정진영) 장군과 그에 의해 양아들이 되어 귀물 잡는 전사가 된 단활(이진욱)이 터럭손, 감산괴, 두억시니 같은 귀물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위쳐>를 한국판으로 가져온 듯한 액션과 영상이 돋보인다. 최근 들어 <구미호뎐> 같은 작품이 한국 전통의 신화, 전설적 요괴들을 등장시키며 드러낸 한국형 귀물 판타지의 야심이 <불가살>에서는 느껴진다.

하지만 고려 말의 이야기는 600년의 시간을 지나 현재로 이어지면서 독특한 귀물 판타지 전개로 이어질 전망이다.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한 여인이 불가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가 단활을 칼로 찔러 운명을 뒤바꾼다. 즉 인간이었던 단활의 혼이 단긴 곡옥이 칼을 타고 불가살의 손으로 스며들었고, 그러자 혼을 잃은 단활은 불가살이 된 것. 반면 혼이 없어 죽을 수 없었던 불가살은 혼을 얻음으로써 죽을 수 있게 됐다.

예고편에는 그렇게 죽은 여인이 인간으로 환생할 것이고, 불가살이 된 단활은 그를 찾아 죽여 자신의 이 죽지 못하는 운명을 끝내려 할 것이라는 걸 보여줬다. 한국 전통의 신화, 전설 속 존재들을 재해석하고, 이를 판타지로 가져와 무려 600년에 얽힌 서사로 풀어낸다는 건 실로 만만찮은 야심이 아닐 수 없다.

관건은 결국 이것이 600년의 시간에 걸친 판타지 서사라는 점에서 그것을 얼마나 실감나게 믿을 수 있는 작품으로 그려내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판타지를 실제 영상으로 구현해내야 하는 연출과 연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다. 첫 회는 일단 합격점이다. 영상과 연기가 충분한 몰입감을 줄만큼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잘 열어 놓은 한국형 귀물 판타지의 세계가 어떤 성취를 거둘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