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최초 5위 ‘솔로지옥’, K예능 최대 성과 낸 이유
동서양이 겹쳐진 ‘솔로지옥’, 글로벌 시장 겨냥한 블렌딩 통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솔로지옥>이 K예능으로는 최초로 인기순위 세계 5위에 올랐다. 지난 9일 기준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솔로지옥>은 홍콩, 일본, 모로코,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 싱가포르, 한국, 태국, 베트남에서 인기순위 1위에 올랐고,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도 각각 7위, 8위를 기록하며 10위 권 내에 순위를 올렸다.

애초 <솔로지옥>은 예고 포스터 등을 통해 한국판 <투 핫>이라는 이야기로 주목받은 바 있다. 사실 국내에서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은 꽤 많이 시도되어 온 바 있지만, 거기에는 넘지 않은 어떤 선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즉 남녀 간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가에 대한 ‘심리’가 주로 관전 포인트였던 것. 그래서 국내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은 장르로 치면 ‘멜로’에 가까웠다.

그러니 한국판 <투 핫>이라는 지칭에서 드러나듯, 해외의 커플 리얼리티쇼를 연상시키는 섹시함이 강조된 지점은 지금껏 국내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과는 완전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지옥도’로 불리는 무인도에서 첫 모습을 보인 10여 명의 남녀들은 잘 생긴 외모와 단련된 몸매를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이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 무언가 다를 거라는 예감을 갖게 만들었다.

실제로도 아침에 일어나 웃통을 벗고 운동을 하는 근육질의 남자들과, 몸매가 드러나는 차림으로 바닷가에서 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솔로지옥>이라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국적성을 혼돈하게 만들 정도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서구의 자극적인 리얼리티쇼를 우리네 환경 속에서 시도하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솔로지옥>은 회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섹시함이 강조된 자극보다는 우리네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강점을 보였던 인물들 간의 심리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갖가지 미션을 통해 선택권을 가진 이들이 지옥도를 떠나 천국도로의 1박2일 데이트를 떠나는 일련의 과정들은 ‘비교체험 극과 극’으로서의 예능적 재미를 선사하면서 동시에 함께 천국도로 떠난 솔로들이 더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과정을 짜릿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솔로지옥>은 처음의 자극적인 맛에서 차츰 솔로들의 감정에 과몰입하게 되는 우리네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맛을 더한다. 함께 지내며 더할 나위 없이 친해진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엇갈림 속에는 순애보도 있고, 감정의 흔들림도 있으며, 미묘한 상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때론 보상받고 때론 반전을 이루며 보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솔로지옥>은 여러 모로 영리한 선택이 돋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JTBC와 함께 한 이 예능 프로그램은 국내의 플랫폼에서는 좀체 시도되지 않은 섹시함이 강조된 커플 매칭을 시도했다. 여러모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겨냥한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투 핫> 같은 콘텐츠로 익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차츰 우리 식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 매칭 스토리를 더해 넣은 것. 그래서 <솔로지옥>은 마치 해외의 리얼리티쇼와 국내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을 적절히 섞어 그 중간지대 어디쯤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됐다.

물론 이러한 중간지대는 그래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다소 싱겁게 보일 수 있고, 국내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을 기대하는 시청자라면 어딘가 ‘진입장벽’이 느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그 중간지대를 적절한 ‘블렌딩’이라고 생각하는 글로벌 시청자들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빠져들 수 있는 면이 있다. 너무 자극으로 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심리전으로만 가지도 않는 지점이 있어서다.

많은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 속에서 <솔로지옥>은 과연 저런 연애나 저런 인물들이 현실에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판타지를 건드리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SOLO> 같은 ‘현실 공감’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전문직에서 잘 나가는 이 남녀 솔로들은 어딘가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이런 지점은 국내 플랫폼에서라면 ‘홍보 이슈’로 비판 받을 가능성이 높았을 게다.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은 선택권을 구독자들에게 준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들을 상쇄시켜주고 있다.

K드라마, K무비, 심지어 K다큐멘터리도 되는데 유독 K예능은 진입장벽이 높다는 게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드러난 현실인 게 사실이다. 그건 장르 같은 어떤 공통분모를 갖는 드라마, 영화, 다큐 같은 콘텐츠들과 달리, 예능이 보여주는 웃음과 재미의 코드가 나라나 문화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솔로지옥>의 이런 성과는 그 편차를 줄이기 위한 영리한 선택에서 비롯됐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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