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메말라가는 박민영에 단비 같은 송강이 내릴 때

[엔터미디어=정덕현] “신호는 단순하다.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색깔과 진동으로. 이 세상에 안전한 것은 없다고 계속해서 내게 신호를 보낸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은 ‘시그널’이라는 부제를 단 첫 회에 진하경(박민영)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기상청 총괄예보관인 진하경의 직업을 염두에 두고 이 내레이션을 들으면, 그건 마치 그가 하는 기상예보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날씨라는 것이 갑자기 비가 내리고 햇볕이 나는 게 아니라, 이전에 어떤 신호를 동반한다는 것. 진하경은 다름 아닌 그걸 읽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그널’은 진하경이 한기준(윤박)과 사내연애를 10년 가까이 하면서도 눈치 채지 못한 그의 변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뀌어 버린 자동문 비밀번호,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예식장, 신혼여행 예약을 하지 않은 남자친구, 무엇보다 어쩐지 냉담해진 남자친구의 태도... 그런 시그널이 계속 전해졌지만 진하경은 그걸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며 애써 부정하고만 있는 것.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 예보에 있어서의 시그널과 남녀 관계에서 생긴 변화의 시그널을 기상청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연결해 보여준다. 즉 확률이 있었지만 무시해서 우박이 내릴 거라는 예보를 내지 못해 곤란함을 겪고, 그럼에도 위성사진에 찍힌 구름 한 점이 야기할 호우주의보 역시 무시하려던 진하경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나는 시그널들을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하려 한다.

거기에는 진하경이 남자친구 한기준과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면서 처하게 된 심리적 상황이 미묘하게 얽혀 있다. 그는 한기준이 보내는 바람(다른 여자가 생긴)의 시그널을 무시한다. 그걸 인정하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져서다. 기후로 표현하면 그와 한기준의 관계는 촉촉한 비가 내리던 시절을 훌쩍 지나와 지금은 메말라가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이시우(송강)라는 직감이 뛰어난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주장으로 진하경이 무시하려던 호우주의보가 내려진다. 만일 비가 오지 않을 시 호우주의보 발령으로 인한 비용은 만만찮다는 걸 말하며 진하경은 이시우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결국 비는 내리고 호우주의보 발령은 제대로 된 예보가 된다. 또한 진하경은 그토록 외면하려했던 자신과 한기준과의 틀어진 관계를 직접 확인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기상청 출입기자이자 이시우와 동거했던 채유진(유라)과 한기준이 바람을 피우고 급기야 결혼까지 하게 된 것.

<기상청 사람들>은 이처럼 날씨에 은유해 진하경을 둘러싼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2회가 부제로 가져온 ‘체감온도’도 마찬가지의 흥미로운 은유를 담고 있다. 즉 5월에도 영하의 날씨가 지속되는 걸 두고 시베리아 기단이냐 오오츠크해 기단이냐로 의견이 분분한 상황. 그렇게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찬 기운이 담긴 바람으로 체감온도가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진하경은 자신과 헤어져 채유진과 결혼한 한기준을 쿨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같은 기상청에서 일하며 맞닥뜨리는 한기준의 뻔뻔함을 체감하며 결국 쿨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내연애의 실패는 현실로 다가와 진하경을 괴롭힌다. 위자료로 주겠다던 집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하고, 기상 브리핑 때마다 기자로 참석한 채유진과 한기준의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보는 일은 속이 뒤집어진다.

진하경의 이 상황은 5월이 되어 이제 추운 겨울을 지났다 생각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냉기를 가득 품은 기단이 여전히 바람을 타고 한파를 전하는 기상이변 상황 그대로다. 결국 집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보낸 내용증명 때문에 폭발한 진하경은 회사 내에서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기준과 한판을 벌인다. 사내연애가 깨져 진하경이 불편할 거라 여기며 그래서 피하듯 스위스로 연수 갈 거라 생각하는 한기준은 은근히 그걸 빌미로 진하경을 압박한다. 그러자 진하경은 드디어 폭발한다. “아 너는 나 불편하니? 그럼 불편한 사람이 떠나. 네가 가라고 스위스 제네바로 이 개새끼야!”

사내연애의 실패가 자신의 탓이 아니고 그래서 자신이 피할 일이 아니라는 걸 자각한 진하경은 스위스 연수 기회를 포기하고 기상청 총괄2과에 남겠다 선언한다. 그리고 그의 앞에 봄철 때 아닌 한파를 밀어낼 따뜻한 기단 같은 이시우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서로 자신들을 배신한 한기준과 채유진을 욕하며 친해지고 술에 취하고 결국 하룻밤을 보낸다. 다시는 사내연애 따위는 하지 않겠다 선언한 진하경은 이시우가 정식으로 같은 팀에 발령 났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미치겠다”고 말한다. 애써 피하려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체감온도는 급상승한다.

우리의 인간관계 역시 날씨처럼 변화무쌍하지 않을까. <기상청 사람들>은 그 인간관계를 날씨에 은유한다. 그래서 사내연애라는 다소 뻔할 수 있는 멜로의 소재를 기상변화에 빗대 은유하며 보편적인 공감대로 이끌어낸다. 예측과 늘 맞아 떨이지지 않는 날씨처럼 관계도 그런 변화를 동반하고, 그럼에도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을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에둘러 보여준다. 날씨로 은유한 멜로를 담아내는 <기상청 사람들>의 신박함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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