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로이어’, 다작·겹치기 출연이 낳은 부작용

[엔터미디어=정덕현] 소지섭이 아니라면 이만한 몰입감을 줄 수 있을까. MBC 금토드라마 <닥터 로이어>는 한 마디로 소지섭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드라마다. 최고의 의술을 가졌지만 자신을 키워주는 척 했던 반석병원장 구진기(이경영)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 한이한(소지섭)이 의료소송전문변호사로 돌아와 저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해나가는 이야기. 의사에서 감옥에까지 가게 됐다가 다시 변호사가 되어 나타난 그 드라마틱한 삶을 소지섭은 특유의 진중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끌고 나간다.

그것은 사적인 복수지만 나아가 반석병원에서 벌어진 의료사고로 인해 생겨난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을 맡는 일이기 때문에 그건 또한 정의를 실현하는 공적인 목적 또한 갖게 된다. 한이한의 복수극이 보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여기에 자신의 동생의 죽음이 한이한 때문이라 오해하는 금석영(임수향)의 애증이 풀어져가는 과정에서도 한이한은 그 중심을 잡아가는 인물이다.

또 새롭게 등장한 검은머리 외국인 로비스트 제이든 리(신성록)가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향후 한이한과 대결구도를 예고하고 있다. 한이한은 구진기와 맞서면서 동시에 새롭게 등장한 빌런 제이든 리와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의 앞에 선 적들이 강력하게 느껴질수록 시청자들은 이 복수극의 긴장감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소지섭이 만들어낸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출연한 임수향과 이경영에 대한 반응은 썩 좋지 않다. 임수향은 방영 전부터 비슷한 시기의 겹치기 출연이라는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물론 이 문제는 <닥터 로이어>가 만든 게 아니라 SBS <우리는 오늘부터>가 편성을 바꾸면서 생겨난 문제다.

어느 방송사가 잘했고 잘못 했고를 떠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과연 임수향의 이런 다작이 그만한 효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특히 <닥터 로이어>에서 금석영 역할의 임수향은 생각만큼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건 캐릭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임수향의 연기 결이 어딘가 비슷한 톤을 보여주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닥터 로이어>의 금석영과 <우리는 오늘부터>의 오우리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고 작품의 성격도 다르지만 자꾸만 역할이 아닌 임수향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한편 <닥터 로이어>의 이경영은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작 출연이 문제로 지목된다. 최근 그는 너무 많은 작품에 악역으로 출연했다.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김희우(이준기)가 끝까지 대적하려는 빌런 조태섭 의원 역할을 했고, <닥터 로이어>와 동시간대 방영되는 SBS <왜 오수재인가>에서도 한수그룹 회장 한성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 서로 다른 작품에서 이경영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거의 유사한 악역으로 다소 뻔한 면면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다작이나 심지어 겹치기 출연은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혼돈을 줄 수 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여러 작품에 출연한다는 건, 시청자들에게는 몰입을 깨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건 더더욱 큰 문제다. <닥터 로이어>는 4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소지섭의 강렬한 복수극으로 시청자들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반면 임수향과 이경영의 너무 패턴화된 연기가 아쉬운 작품이다. 다작과 겹치기 출연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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