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닝업’, 어설픈 현지화 전략이 낳은 패착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드라마 <클리닝업>은 JTBC 주말드라마의 클린업 트리오가 될 수 있을까. 추앙받은 <나의 해방일지> 후속으로 타석에 들어선 만큼 기대할 만한 요소는 꽤나 있었다. 채널 역사상 최대 히트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히로인 염정아의 3년 만의 복귀작이며, 주식 투자라는 전국민의 관심사인 시대적 키워드를 품고 있고, 여성을 주연으로 내세우면서 여성 서사를 극의 중심에 놓는 오늘날 사랑받는 콘텐츠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1회부터 클라이막스에 이르는 지금까지 계속해 무척 불리한 볼 카운트에 몰려 있다.

<클리닝업>은 2019년에 나온 동명의 영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도박 빚에 시달리는 이른바 막다른 길에 놓인 한 여성이 미화원으로 근무하다 알게 된 내부 정보와 내부자 거래 등을 통해 주식으로 돈을 번다는 일종의 케이퍼물이다. 영국 드라마 특유의 꽤나 적나라한 설정과 주식 투자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결합한 신선함이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고, 그 위에서 자본 소득에 대한 생각과 통쾌한 메시지를 건네며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차 때문인지, 6회 차 드라마를 그 3배 가까이 늘린 탓인지 염정아 버전 <클리닝업>은 한 발씩 타이밍이 어긋난다. 팬데믹 기간에 자본 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주식 투자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이 자본시장에 눈을 뜬 2030세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활황을 누렸다. 그러나 <클리닝업>은 아쉽게도 이미 축제가 끝난 뒤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가 무너지고 있고 뉴스에서는 연일 금리 인상, 환율 압박과 스테그플레이션이 언급되는 등 ‘주식’ 소재를 가볍게 꺼내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

게다가 전 국민이 주식 투자에 참여하다시피 해서 높아진 눈높이와 상식, 이해도를 비춰 볼 때, 드라마의 세계관이 지나치게 어설프다. 아무리 절반은 코믹이 담당한다고 하지만 이 드라마의 파이프라인은 범죄의 장면과 과정을 보여주는 케이퍼물의 묘미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범죄의 계기, 설정, 사건 전개 모든 면에서 현실성과 개연성이 떨어져, 몰입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벌어지는 경제 범죄의 대담함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비해 반대급부가 몇 백, 몇 천 만원 단위로 일반 개미 투자자 입장에서도 소액이다. 예를 들어 내부정보를 빼온 정보비가 500만원이고, 공매도 세력이 차명거래 하는데 내건 금액이 1억이고, 내부거래의 뒤를 봐준 대가가 1500만원이다.

유출되는 과정이나 거래상의 기발한 설정도 딱히 없다. 개미 투자자들이라면 흥미를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성장 과정이나 공감할만한 투자의 장면도 없다. 스스로 케이퍼물이라 홍보했지만 중반부부터 한국판 키다리 아저씨인 ‘실장님’과의 로맨스로 갑자기 점프를 한 다음, 작전세력의 빌런과 대결을 펼치는 활극으로 넘어간다.

이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설정과 전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서사의 근간, 몰입의 단초라 할 수 있는 어용미(염정아) 캐릭터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배경 설정을 보면 미화원으로 근무하는 경기도의 낡은 다세대 전셋집에서도 내몰리기 직전인 이혼당한 싱글맘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도박중독 때문에 사채 빚까지 지며 가산을 탕진한 귀책사유가 있고, 초콜릿을 훔친 딸을 혼낸 가게 슈퍼 주인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층간소음에 대한 항의에 협박으로 맞대응하며, 순진한 동료를 꾀어내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전세금이 없어서 쫓겨나기 직전이라지만 주변은 부유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도박 사채를 갚아주지 않는다고 친오빠의 차를 훼손하고 도망간다.

제작진도 걱정이 있었는지 막장에 가까운 원작 캐릭터 설정에 현지화한 정서를 더했다. 한국판 <클리닝업>에서는 자식을 건사하려는 모성애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류의 질문을 반복해 던지며 돈 때문에 인생이 쪼들리고 피곤한 소시민의 애환과 대리만족 코드를 더욱 노골적으로 반복해 내세운다. 하지만 투명인간 취급 받지 않고, 소소한 꿈을 이루고 싶은 ‘평범한’ 인생을 위해서, 또 엄마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합리화하기에 어용미 캐릭터가 가진 반사회적인 비호감 면면은 아무리 염정아라는 호감도 높은 멋진 배우가 열연을 펼쳐도 가려지지가 않는다. 이후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각성하는 단계까지 나가는 착한 결말이 예상되는데, 원작과 현지화의 충돌은 아예 내달리는 막장의 화끈함도, 매끈한 설득력도 여성의 연대도 모두 어정쩡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 미화원들의 위태위태한 모험에 동참하고 연대하기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인 용미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데다 김재화, 전소민과 함께 보여주는 엄마의 책임, 시집살이, 꿈의 실현 등 내세우는 여성 서사가 너무 평이하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가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다는 전복적인 설정이 주는 신선함과 통쾌함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건드리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로 치환되면서 무척 평범해진 탓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전개는 로맨스 코드를 타고 진행되면서 장르의 결도 모호해진다.

<클리닝업>은 장르물로 K-콘텐츠의 전성시대를 연 지금 시점에 현장감 있는 필드 취재와 독특한 설정의 디테일을 높여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전략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 현실성과 개연성은 다소 포기하더라도 결국 남녀 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되고 익숙한 악당이 등장하는 그동안 많이 봐온 한국 드라마 특유의 클리셰 모음으로 전환해 승부를 본다. 케이퍼물 특유의 인생 한방 도전기를 응원하거나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나, 대립하는 확실한 주체나, 통쾌한 대리만족이 있어야 한다. 주식 투자라는 눈길을 끄는 소재로 전국민적 공감대를 기대하기에는, 갑갑한 현실을 뒤엎는 시원함을 내세우기에는, 펼쳐지는 활극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고 보기가 무척 힘들다. 현지화 전략도, 장르적 변환도, 여성 서사와 로맨스의 배합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기대에 비하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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