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작정한 정병길 감독, 안타까운 과유불급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처음 10분 동안은 “와-”하는 감탄사가 나올 법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카터>는 마치 <존 윅> 같은 논스톱 액션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영화 <악녀>로 2017년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수상했을 정도로 액션 연출에 있어 글로벌한 인지도를 가진 정병길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그 10분이면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존 윅> 시리즈를 찍었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자신이 찍은 오토바이 액션 신이 정병길 감독의 <악녀>에 대한 헌정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러니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상상이 갈 것이다. 이 액션이 얼마나 우리의 시선을 압도할지.

의문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북한은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른 상황,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깨어난 카터(주원)를 잡으려는 미국 측 CIA 요원들이 등장하고 그 때 그에게 어디선가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귀에 장치된 수신기로 그에게만 들리는 그 목소리의 지시를 받으며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과 싸우고 도망치는 카터. 그 목소리는 카터에게 바이러스에 그의 딸 역시 감염되었으며,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면역반응을 보인 유일한 희망인 소녀 정하나(정보민)를 구해내 백신을 만들 수 있는 북한의 연구소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카터>는 정하나를 차지해 북한의 붕괴를 방치하려는 세력들과, 그를 통해 북한의 붕괴를 막으려는 자들 그리고 이 기회에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세력들까지 모두 밀어내고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는 북한 내 쿠데타 세력들이 시시각각 노리는 상황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카터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연히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저마다의 이익을 두고 벌이는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 액션이 가미되어 있다.

<카터>는 한 마디로 정병길 감독이 작정을 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액션 연출에 진심인 만큼, 13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멈춰서는 법이 없고, 카터 역할을 맡은 주원은 잔뜩 벌크 업 된 단단한 몸으로 맨몸, 칼, 총을 휘두르며 수백 명을 해치우는 액션을 보여준다. 게다가 007 시리즈에서나 익숙했던 스카이다이빙 고공액션이나 오토바이 액션, 마치 <매드맥스>를 보는 듯한 질주하는 자동차 위에서 벌어지는 사투, 심지어 기차 위에서 또 헬기를 타고 벌이는 액션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첫 액션으로 거의 10분 동안 주원이 폐목욕탕에서 수백 명의 조폭들을 칼과 낫으로 난자하는 광경은 원테이크 액션으로 찍혀져 마치 그 현장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흥분을 이끌어낸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할 수밖에 없는 그 압도적 액션을 보면 주원이 얼마나 이 영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냈을 지가 그 몸에서부터 느껴진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영화가 거의 몇 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액션으로 달려 나가고 그 강도 또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인지 전반부가 지나는 시점에 이르면 보는 것이 조금씩 힘들어진다. 시원시원한 카타르시스도 계속 반복되니 마치 그 상황을 연달아 겪는 듯한 실감이 보는 이들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도는 갈수록 높아지지만, 어쩐지 카터의 손놀림에 죽어나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액션은 점점 둔감하게 다가온다.

마치 노래 잘 하는 가수가 끝없이 고음을 치고 또 치고 올라와 고막을 끊임없이 두드릴 때 처음에는 시원한 느낌을 주다가 뒤로 갈수록 시끄럽게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랄까. <카터>는 정병길 감독이 계속 ‘나 액션 연출 이만큼 잘한다’고 외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액션 연출이 어디 보이는 것만으로 효과를 주는 것일까. 거기에는 적절한 이완과 균형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 가능할 법 싶은 개연성 또한 요구된다. 또 적당히 멈춰선 지점에서 충분한 감정들이 얹어져야 액션에서의 폭발력도 커질 수 있다.

<카터>는 정병길 감독의 액션 실험 끝판을 보여줬지만, 그 화려하게 휘몰아치는 액션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졌다. 감정과 개연성이 잘 얹어져 있지 않아서인지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 부분은 특히나 고생을 했을 주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병길 감독이 너무 액션 연출을 보여주려 작정함으로써 정작 그걸 하고 있는 주원의 모습이 가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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