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쩐’, 법과 쩐의 결탁, 그리고 우리 편과 적

[엔터미디어=정덕현] “너 우리 편이잖아.” 소년원까지 갖다 왔다며 자신을 이렇게 집에 초대해 식사대접까지 해도 되냐고 묻는 은용에게 준경의 엄마 윤혜린(김미숙)은 그렇게 말한다. 기차에서 깡패들이 난동을 부리자 보다 못한 준경이 나섰고 그를 돕다 은용도 유치장에 같이 들어갔던 터였다. 블루넷 대표인 윤혜린이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경찰은 준경을 바로 풀어주지만, 은용은 전과자라는 이유로 붙잡아둔다. 그러자 윤혜린은 ‘같은 편’이 되어 싸웠는데 자기 딸만 유치장을 나간다는 건 안 된다며 자신이 은용의 보호자가 되어 조사를 마치고 함께 나가겠다고 한다.

SBS 금토드라마 <법쩐>의 이 에피소드는 은용(이선균)과 박준경(문채원)이 윤혜린이라는 어른 앞에서 어떻게 한 가족 같은 ‘같은 편’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이 같은 편인가 아닌가를 나누는 건 그저 선과 악 혹은 정의와 부정 같은 윤리적인 차원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은용은 윤혜린, 박준경과 친 가족처럼 지내면서도 명회장(김홍파) 밑에서 용역깡패를 거쳐 사채업자로 일한다. 은용이 윤혜린, 박준경과 ‘같은 편’이 되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함께 싸워줬던 일이 발단이 됐고 그 후로 가족처럼 생일을 챙기고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그걸 만들었을 뿐이다.

반면 은용의 조카인 장태춘(강유석)은 지방대를 나와 검사가 되었지만 출세길이 막혀 있다. 어떻게든 매스컴을 타는 검사가 되고 싶지만 황기석(박훈) 같은 특수부 부장검사는 장태춘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조차 꺼려하며 선을 긋는다. 그러던 차에 익명의 제보가 날아들고 그것이 황기석이 비호하던 검사장 출신 오대표(이기영)가 운영하는 GMi 뱅크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황기석은 장태춘을 회유해 끌어들이려 한다. 그의 막힌 출세길을 열어주겠다는 듯이.

하지만 몽골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있는 은용은 장태춘이 자신에게 보내온 익명의 제보에 담긴 암호 숫자들을 풀어내며, 윤혜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제보가 박준경이 자신을 부르는 신호라는 걸 간파한다. 결국 돌아온 은용은 윤혜린을 그렇게 만든 것이 명회장과 그의 사위인 황기석 부장 그리고 그들의 정관계가 얽힌 검은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박준경과 복수를 결심한다. 황기석 라인에 들어갈 것처럼 보이던 장태춘에게도 ‘같은 편’이 되자고 손을 내밀며.

<법쩐>은 겉보기엔 정의를 구현하는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적 복수이고 그 과정이 결코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면 그러한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다. 그보다는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편’과 적의 대결이고, 그것을 다소 장르적 판타지로 그려내는 오락물에 가깝다. 은용은 자신이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어온 경험과 그를 통해 갖게 된 막대한 ‘쩐’을 복수에 이용하려 하는 것이고, 법무관이 된 준경 역시 법 지식을 정의 구현이라기보다는 사적 복수를 위해 쓰려는 것이다. 여기에 장태춘까지 가세하면 왜 드라마의 제목이 <법쩐>인가가 분명해진다.

그 많은 복수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특히 SBS가 금토드라마로 구획해놓은 시간대에는 ‘사적 복수’를 다룬 소재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 바 있다. <열혈사제>부터 <모범택시>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복수의 이야기를 SBS 금토드라마는 정의 구현 같은 메시지를 내세우기보다는 사이다를 즐기는 오락물로 풀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법쩐>도 그 흐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다.

중요한 건 복수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법’과 ‘쩐’의 공조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대결구도의 양측에 있는 이들이 모두 ‘법’과 ‘쩐’의 결탁 혹은 공조를 보여준다. 명회장과 황기석이 그 한 축이라면, 은용과 박준경이 다른 축인 셈이다. 이들은 그 방향성이 정반대지만 모두 법과 쩐으로 얽혀있다. 그리고 그건 일반적으로 보면 모두 부정한 일이다. 법이 쩐에 의해 움직여서도 안되고, 정반대로 쩐이 법을 마구 휘둘러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둘의 결탁으로 이것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가져왔다.

결국 남는 건 똑같은 법과 쩐의 결탁이라도 우리 편인 은용과 준경 그리고 장태춘이 저쪽 편인 명회장과 황기석을 무너뜨리고 복수를 완수하는 그 과정의 오락적인 재미다. 은용이라는 캐릭터가 판타지처럼 그려지고 그가 풀어나가는 복수의 서사가 관건이 되는 이유다. 다만 이 오락물에도 어른거리는 현실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건 대중들이 느끼는 법 현실이 결코 믿을 수 있을 만큼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억울한 죽음을 만들기도 한다는 정서적 뉘앙스다. 결국 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억울함을 풀려면 적어도 ‘쩐’과 ‘법’ 모두를 쥐어야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이 작품의 밑바닥에는 흐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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