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쩐’, 역대급 빌런과 대결의 엔딩에 대한 기대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SBS 금토드라마 <법쩐>이 이제 11, 12부 엔딩만을 남겨 놓게 됐다. <법쩐>은 현재 최고 인기 드라마다. 7회와 9회 시청률 11.1%(이하 닐슨코리아)를 기록하는 등 미니시리즈 중에는 지상파, 종편, 케이블 채널 통틀어 최상급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명민한 이재 감각으로 거부가 된 은용(이선균)과 검사였고 변호사인 박준경(문채원)이 힘을 합쳐 ‘법’과 ‘쩐(돈)’으로 부정과 결탁한 검사와 싸워 정의를 구현하는 스토리다.

그런데 <법쩐>은 시청률에 비해 화제성이 높은 편이 아니다. 화제성 조사에서는 시청률만큼 높은 순위에 올라있지는 못한데 이는 시청률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고구마 전개’라며 불만을 표시하는 의견이 꽤 있었던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

제목만 놓고 보면 올드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드라마의 흐름은 경쾌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12부작이라 종종 16부작에서 템포를 늘어트리는 보조 스토리라인들이 없어 그런 듯하다. 흐름이 둔해 고구마가 된 것은 아니다.

시청자 중 ‘고구마’라며 답답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드라마가 상당히 진행됐는데도 주인공들이 좀처럼 빌런을 이기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용과 박준경이 간간이 작은 반격은 성공하지만 빌런의 두 축인 특수부 검사 황기석(박훈)과 그의 장인 사채업자 명회장(김홍파)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스토리가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엔딩 직전인 4일(10회)에 와서야 명회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린 황기석이 은용에게 재기를 위해 무릎을 꿇기는 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빌런에게 승리를 확정 지은 분위기라고 단정짓기는 이르고 마지막회까지 봐야 주인공과 빌런의 승부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있을 분위기다.

시청자들이 익숙한 일반적인 드라마는 주인공이 빌런들에게 반복해 거두는 작은 승리가 반복되다 마침내 엔딩에서 대승으로 마무리하며 끝난다. 그러니 10회 전까지 압도적으로 패배만 하며 살아남기 급급한 은용과 박준경을 보는 시청자들은 <법쩐>의 전개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주인공의 반복되는 승리를 통해 고조되는 흥이 <법쩐>은 적은 탓에 이 드라마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심 공유도 적극적이지 않은 듯하고 이로 인해 화제성에 결정적인 온라인 버즈가 낮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높은 시청률은 이 드라마의 강점도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법쩐>에 시청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한국 드라마 사상 손꼽히는 최강 빌런들의 흡입력 때문으로 보인다. 황기석과 명회장은 그냥 나쁜 놈이 아니라 공포스러울 정도로 절대악이다. 그래서 두 주인공은 거부와 법률가로 자신들도 상당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당하기만을 반복했다.

종종 황기석이 원톱 주인공으로 혼동될 정도로 존재감이 압도적인데 이는 배우 박훈의 명연기와 드라마의 생생한 현실감에서 비롯된다. 주인공 은용이 사채의 해악에 대항하고, 인간적 대우를 해준 윤대표(김미숙)를 위해 전재산을 날려도 복수를 하려 하는 착한 부자로 드라마적 판타지를 구현한다면 빌런 황기석은 반대로 드라마의 현실감을 높게 만든다.

황기석은 국가 권력인 검찰이 사회 정의를 최우선시 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다면 어떤 피해가 생기고 그 피해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검찰과 관련해 과거 논란이 됐던 이슈들을 허구적으로 잘 녹여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검찰의 경제 사범과의 뒷거래, 표적 수사, 기획 수사, 별건 수사, 증거 조작, 회유 협박, 전관 비리, 정치인과 뒷거래, 성 상납 등 그간 의혹이 제기됐거나 법적인 판단을 받은 검찰 관련 논란들이 황기석과 그를 따르는 전, 현직 검사들을 통해 극화된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은용의 조카인 장태춘(강유석), 함진(최정인)처럼 정의로운 검사들도 존재하지만 드라마 속 검찰내 악의 힘은 거대하고 황기석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적이다. 황기석은 옳고 그름이 아닌 자신의 영달에 필요한 거래의 관점에서 검찰의 힘을 악용하는데 이 과정에 거스르면 자신의 가족도 제거할 정도로 극도로 냉정하고 계산적이다.

그리고 황기석의 수사는 이면에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만 세상에는 사회 정의를 구현한 것으로 포장돼 알려지고 그래서 정치권의 스카웃 제의까지 받는 상황은 섬칫하기까지 하다. 황기석은 능력이 남다르게 뛰어나면서도 추진력도 강한데다 냉혈한이라 희생자들을 압도하면서 일방적으로 사냥해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공포 영화 속 괴물을 연상하게도 만든다.

황기석과 때로는 한편이다가 서로의 욕심이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적이 되기도 하는 명회장은 극적 비중에서는 황기석보다 덜하지만 악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어쩌면 황기석을 능가한다. 끝없이 부를 늘려가는데 방해되는 상대는 개인이든 다수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파멸하게 만들면서도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황기석 못지않게 공포스러운 역대급 빌런이다.

‘법쩐’은 주인공이 거부이지만 돈의 물량 싸움을 하기보다 거래로 빌런들의 본성을 역이용해 승부한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설득력이 있다. 이제 그 싸움의 엔딩만 남았다. 한국 드라마 특성상 주인공이 승리하면서 끝날 가능성이 높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빌런들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을 특별한 드라마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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