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임시완의 놀라운 악역 캐릭터 소화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주인공 나미(천우희)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다. 친구들도 많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직원이다. 하지만 그녀의 밝은 일상은 어느 날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면서 깨져버린다.

나미의 휴대폰을 주운 인물은 실체 없이 살아가는 준영(임시완)이다. 준영은 영화 후반까지 형사 지만(김희원)과 연을 끊은 문제 많은 형사의 아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후반에 준영의 진짜 신원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다. 그는 준영을 위장해 살아온 준영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준영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휴대폰을 주워 상대를 무너뜨리는 디지털시대의 사이코패스 악처럼 묘사될 뿐이다. 마치 타인의 휴대폰에 은밀하게 깔리는 악성 앱처럼 말이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소름이기 때문에 악역의 캐릭터가 너무 볼륨이 두터워지면 사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악역이 도구적으로 그려질 위험부담이 있는 구조인 것도 사실이다.

허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악역 준영은 결코 얄팍하거나 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부분은 바로 이 영화의 사이코패스 악역 준영을 연기한 임시완의 악역 캐릭터 소화력 때문이다. 임시완은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경찰에 고문당하는 억울한 대학생으로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악역 전문(?) 배우로 물이 오른 추세다. 특히 그의 악역 연기는 곽도원으로 대표되는 선배 남자배우들이 보여준 거칠고, 욕설을 내뱉고, 눈을 부라리는 느낌과는 다르다.

임시완은 오히려 단정하고 깔끔한 악역에 가깝다. 이런 종류의 악역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임시완은 특별한 힘이 있다. 겉보기에 유약한 미남자처럼 보이지만 표정이나 미소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악의 얼굴이 가능하다. 한눈에 보이는 악랄함이 아니라 잘생긴 얼굴 속에 감정의 각도에 따라 서서히 배어나오는 악랄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임시완은 준영을 연기하면서 애써 미친놈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다. 일부러 과한 몸짓을 하거나 대사를 치면서 목소리를 벌벌 떨지도 않는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보다는 조금 까다로운 대학생 같은 일상적인 말투로 악역의 인물을 연기한다. 그렇기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준영 역시 그의 악랄함이 폭발하기 전까지 평범한 인물로 나미의 세계에 스며들어간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악을 이미 알고 있다. 여기서 시청자는 일상의 장면에서도 소름 돋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임시완은 준영의 악랄함이 드러나고 폭발하는 장면 역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욕조에 잠긴 나미의 아버지와 나미를 바라보며 협박하는 연기는 베테랑 악역배우의 사악함을 발휘한다. 거기에 형사 지만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농락하는 장면이나 나미의 공격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으로 느끼는 표정에서는 이 배우가 정말 이야기의 정점을 잘 살리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임시완은 기죽은 청년의 아이콘에서 어느 덧 순진함과 사악함이 얇은 비닐 한 장 차이라는 걸 눈빛과 미소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됐다. 거기에 스릴러의 클라이막스에서도 극의 중심을 잡아가며 힘을 발휘하고 있으니 이제는 믿고 보는 악역 배우로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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