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영의 ‘셀러브리티’ 모험에 담긴 인기 권력 사회의 민낯

[엔터미디어=정덕현] SNS에는 구독자 수백만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구독자수가 그 위치를 말해주는 이들은 그들의 말 한 마디, 입는 옷 하나 그리고 쓰는 화장품 하나하나가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에 들어와 있다. 이들이 쓴다는 물건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가고, 그래서 힘 있는 인플루언서들에게는 기업들이 줄을 선다. 한 끼에 샐러리맨 한 달 월급을 쓰고, 쇼핑으로 외제승용차 한 대 가격을 써대며, 한강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화려한 집에서 사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어떻게 그런 인플루언서가 됐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바로 그 인플루언서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인도한다. 화장품 방문판매원 일을 하던 서아리(박규영)가 어쩌다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오고 짧은 기간에 엄청난 구독자를 끌어 모아 힘 있는 슈퍼 인플루언서이자 업계 셀러브리티가 되는 성장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는 이른바 ‘수저 계급’의 사회에서, 인플루언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그 계급의 벽을 단박에 뛰어넘을 수도 있는 삶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시선을 끈다. 평범했던 사람이 SNS에 올린 사진 몇 장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어 엄청난 수의 팔로워를 갖게 되고, 그 수치가 그 사람을 서민 아니 천민에서 귀족으로 만들어주는 세계.

하지만 그건 SNS 상에서 보이는 것들일 뿐, 실상은 치열하고 때론 더러운 거래들이 있는 세계다.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서아리는 그러나 바로 그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눈 멀어 조금씩 그 세계에 빠져들고, 무엇보다 늘어나는 팔로워와 그들이 보내주는 ‘좋아요’에 본격적으로 셀러브리티가 되려는 마음을 먹는다.

<셀러브리티>는 이러한 이른바 ‘인기 권력 사회’가 작동하는 자본화된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아리라는 인물의 성장 판타지를 담는다. 사극을 주로 써왔던 김이영 작가 오랜만에 들고 온 현대극이라는 점에서 과연 그게 어울릴까 싶었지만, <이산>, <동이> 같은 퓨전사극을 통해 성장 서사를 줄곧 그려왔던 그 필력이 현대극의 성장드라마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는 걸 이 작품은 보여준다.

하지만 <셀러브리티>는 단순히 서민이었던 서아리가 셀러브리티가 되는 그 신데렐라 같은 판타지만을 담는 드라마가 아니다. 물론 이 작품에는 한준경(강민혁) 같은 현대판 왕자님이 등장하고 그와 서아리의 달달한 멜로가 빠지지 않지만, 동시에 이러한 ‘인기 권력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시작부터 서아리가 이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는 데서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다. 그 라이브 방송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지만, 동시에 그 선택에서 그가 치러야했던 끔찍한 대가들 또한 빼놓지 않는다. 인기가 급상승하고, 그래서 단지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사업가가 되기 위해 쇼핑몰까지 런칭해 성공하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기반으로 하는 이 성장은 바로 그 지점이 아킬레스건이 된다.

인기를 시기하는 이들과, 이러한 성공을 지지하며 마치 자신의 성공처럼 여기던 대중들은 작은 소문에도 등을 돌리고 악플의 칼을 꽂는다. 선망과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중들은 ‘좋아요’를 누르다가도 비틀린 심사를 욕설로 댓글 창에 도배해버린다. 결국 대중이 만들어낸 셀러브리티는 대중의 등돌림에 의해 부서져버리기 쉬운 존재가 된다. 그 끔찍함을 알기 때문에 이들은 점점 SNS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한 여성의 성장드라마가 있고, 전형적이지만 멜로 서사는 물론이고 배신과 복수극이 있는데다 셀러브리티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극적 요소까지 <셀러브리티>는 다양한 장르적 결과 재미를 가진 드라마다. 너무 많은 장르적 색채들이 합쳐져 있어 지리멸렬할 위험성이 크고 자칫 막장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김철규 감독은 역시 베테랑답게 매끄럽고 균형 있는 연출을 해냈다. <공항 가는 길>, <시카고 타자기>, <마더>, <자백>, <악의 꽃> 같은 일련의 명작을 연출했던 공력이 돋보인다. 물론 이 다양한 결을 흔들림 없이 소화해낸 박규영의 다채로운 매력과 연기도 빼놓을 수 없지만.

12부작이지만 단번에 몰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이 느껴지는 작품이고, 또 매회 재기발랄한 부제와 더불어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해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목되는 건 SNS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이 사회의 민낯을 비판적 관점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끝까지 보고 나면 장르물이 주는 쾌감과 더불어, 생각할거리가 던져주는 여운도 적지 않은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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