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으로 가득한 ‘7인의 탈출’, 이렇게 막 만들어도 흥행은 성공?

[엔터미디어=정덕현] 아기를 가졌다고 단 하루 만에 갑자기 출산할 수도 있는 건가.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에서 고등학생 한모네(이유비)는 갑자기 산통이 오더니 교실에서 아이를 낳았다. 양진모(윤종훈)와 방다미(정라엘)인 척 명찰을 단 채 호텔을 들락거린 한모네는 아마도 그의 아이를 가진 듯한데, 바로 전날 이 사실을 토로한 듯 우는 한모네에게 양진모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양진모에게 앙심을 품고 찾아온 민도혁(이준)이 난장판을 만들고, 도망친 한모네가 떨어뜨린 명찰 때문에 그를 방다미(정라엘)로 오인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방다미의 명찰을 들고 학교를 찾아와 소란을 피울 때, 한모네는 갑자기 산통을 느끼며 교실로 들어가더니 아이를 낳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춤을 출 정도로 아무런 티도 나지 않던 고등학생이 갑자기 아기를 출산하는 이 장면은 아무런 복선도 전조도 없이 불쑥 등장한다.

이건 <7인의 탈출>이라는 김순옥 월드가 가진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보통 서사에서 사건이란 그만한 전조를 밑그림에 숨겨둬야 납득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김순옥 월드는 그런 개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지금 한모네가 양진모의 아이를 낳았다는 그 사건이 일어나야 하니 갑작스러워도 아이를 낳는 장면이 바로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냥 그런 것이니 그렇게 받아들이라는 것일까.

어떠한 전조도 없이 하루 만에 갑자기 출산도 가능하니 김순옥 월드가 못할 건 없어 보인다. 선한 양부모 밑에서 잘 자라왔던 방다미를 굳이 친딸이라며 데려가더니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영화 투자를 위해 이용해 먹으려는 금라희(황정음) 같은 비정한 엄마도 가능하고, 갑자기 나타난 손녀에게 혈육의 끈끈함을 느끼는지 친조부인 방칠성(이덕화)이 손녀를 봐서 금라희의 영화에 투자를 고려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게다가 방칠성과의 식사 약속을 지키지 못한 방다미가 빗속을 뚫고 달려왔을 때 비에 쫄딱 젖은 딸을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그것도 모자라 뺨을 때리는 엄마의 폭력도 가능하다. 빗속에 내몰며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면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엄마라니. 이런 악녀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도 궁금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김순옥 월드에서는 뭐든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갈 뿐이다.

<7인의 탈출>은 시작부터 섬에 들어간 이들이 한 소녀를 죽이는데 가담하고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는 끝내 7명이 살아남아 섬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빠르게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즉 섬에서의 서바이벌이 사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그곳에 가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하나하나 보여주며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등장하는 폭력과 선정성이 상당하다. 15세 시청 가능한 드라마로 되어 있지만 학교 내에서의 집단 괴롭힘, 선생님의 공공연한 부정, 아이를 이용하려는 엄마의 가정폭력과 학대, 조폭들의 습격으로 벌어지는 폭력, 청소년 원조교제와 출산 등등 한 회에만 채워진 폭력의 수위는 피가 철철 넘치고도 남는다.

자극과 선정성으로 가득 채우지만 개연성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개연성에서 부족해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을 나열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이래서 최근 K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높아진 완성도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져갈 수 있을까. 물론 개연성보다 강한 사이다 복수극이 주는 즉각적인 효능감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보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만한 선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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