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만든 ‘삼체’, 글로벌 신드롬 가능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 대한 글로벌 반응이 심상찮다. 이 시리즈는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 순위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이미 기획 단계부터 과연 이게 영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 우주적 스케일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꾼 건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제작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었다. 2020년부터 제작된 <삼체>는 그렇게 4년의 시간을 거쳐 시즌1 8부작을 공개했다.

아시아 최초로 휴고상을 받은 중국의 류츠신 작가의 ‘삼체’는 기막힌 SF적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중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로 번역되어 화제가 된 소설이다. 시리즈는 이 소설 원작을 각색해 중국 배경에서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배경으로 바꾸고 소설 3부작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압축해 각색했다. 1960~7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벌어진 한 과학자 집안의 비극과 현재의 영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과학자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으로 문을 연 시리즈는 ‘삼체인’이라는 외계인의 400년 후에 도달할 지구침공에 맞서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과학자 예원제(진 쳉)가 열지 말아야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 그 트리거다. 삼체인으로부터 온 외계의 메시지는 그 소통을 끊으라는 경고였지만, 인류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예원제가 그들을 불러 들여 지구를 리셋하겠다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3개의 태양 때문에 종말의 위기를 맞은 삼체인들이 지구를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함대를 출발시키지만, 그것이 도달까지 400년이 걸린다는 사실은 삼체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400년은 지구인들이 자신들을 대적할 만큼의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인공지능 컴퓨터 ‘지자’를 만들어 먼저 광속으로 지구에 쏘아보내고 ‘지자’는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을 교란시키고 늦추기 위해 유능한 과학자들을 위협하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즉 400년 후 삼체인이라는 외계인의 침공과 그걸 성공시키기 위해 인류의 과학을 늦추려는 저들의 도전과 이에 대한 인류의 응전이 <삼체> 시즌1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간략한 줄거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작품 속에는 넘쳐난다. 신대륙을 발견한 제국주의가 결국 선택한 것은 공존이 아닌 약탈과 지배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삼체인과 지구인의 관점에서 펼쳐지고, 그 과정에서 인류의 과학으로는 아직 도달하지 못해 설명할 수 없는 전지전능해보이는 삼체인들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신과 인간의 그것처럼 표현된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삼체인들은 비약적인 통신기술을 통해 ‘목소리’로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 위에 군림하는데, 이 세력을 이끄는 마이크 에번스(조난단 프라이스)는 마치 대홍수를 피해 선택된 이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간 노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또한 삼체인들이 자신들의 인간 추종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그 세계의 문명의 발전을 담은 게임으로 그들을 이해시킨다는 설정 또한 문화적 제국주의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넷플릭스가 시리즈로 내놓은 <삼체>의 시즌1은 거의 도입부 정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미 시즌1의 세계관이 우주까지 펼쳐진 거대한 이야기라는 게 드러났지만, 그것이 아직 본격적인 서사의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생겨난 <삼체>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의 조짐은 이 시리즈가 향후 그려나갈 신드롬의 크기를 예감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건 중국 원작인데다(그래서 심지어 중국에서는 이 작품의 문화대혁명 광풍에 대한 자세한 묘사에 대한 논란이 벌어질 정도다), 미국 시리즈지만 국내에서도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아마도 OTT 환경이 정착되어가면서, 국내 대중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도 생겨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처럼 보인다. 국내 콘텐츠들만 소비하던 단계에서 이제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면 글로벌 콘텐츠들에도 보다 손쉽게 팬덤이 생겨날 수 있게 된 새로운 흐름이다.

<삼체>라는 작품이 일깨우는 건,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또다시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국내에서도 생겨나는 이례적 열풍은 글로벌 관점으로 바라보면 국내의 콘텐츠들 역시 달리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이미 우리는 글로벌 시대 안에 들어와 있다고 <삼체>는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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