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오늘은 내가 일하는 다른 영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 여러분 중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에서 창간한 웹진 크로스로드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다. 이 웹진에서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sf에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지금까지 여기에 소개된 단편들은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물론 나 역시 이 자리의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이 잡지의 과학소설 섹션의 운영방식이 얼마 전부터 바뀌었다. 2011년 4월을 기준으로 ‘물리학’을 소재로 하거나 ‘물리학을 중심으로 타 분야와 접목된 소재’로 내용을 제한하겠단다. 4월 기준이라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 만들어진 작품은 본 적이 없다. 하긴 이런 게 제대로 반영되려면 의뢰-착상-집필로 이어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거다.

하여간 이 전환은 내가 속해 있는 티끌만한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켰다. 우선 물리학 sf라는 게 자꾸 걸린다. 아무래도 물리학을 소재로 한 하드 sf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sf 커뮤니티 안에서 이런 제한과 구분은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다. 어차피 이론물리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이니 당연한 요구처럼 보이는데도 신경이 쓰이는 거다. 그리고 과연 이런 식의 요구를 내세운다고 해서 '물리학 sf들'이 공장생산되는 것처럼 나올까?

물론 그 쪽에서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제1회 아태이론물리센터 창작활동 지원을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포럼'의 초대를 받았다. 일박이일 동안 포항에서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견학도 하고 자유토론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는 거란다.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누군가는 이를 삼청교육대에 비교하기도 한다. 난 그건 좀 심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하긴 이런 행사를 통해 뭔가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양자 역학의 세계'와 '모든 것의 이론'에 대한 강연이 있는 모양인데, 아마 이들이 대상으로 하는 과학 작가들이나 기자들은 그에 대해서는 다들 대충은 알고 있을 거다. 만약 그 이상을 넘어서는 지식이라면 대중 강연으로 전달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자유 토론이 있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일박이일 행사 중 열리는 자유토론의 내용은 늘 뻔하더라.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가 먼저 이야기하느냐에 목을 메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했던 sf 판타스틱 포럼이 생각난다. 마찬가지. 국내 sf 영화가 제대로 안 풀리는 이유를 누가 모르나. 그 이유를 굳이 거기까지 가서 들어야 하나.

하지만 난 여전히 이런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런 식의 일박이일 행사로는 어림없다. 크로스로드에 물리학에 기반을 둔 양질의 하드 sf가 실리길 원한다고? 그렇다면 이런 행사 대신 sf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들과 작가들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온라인 포럼을 열라. 그건 진짜로 생산적일 수 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건 ' sf에 관심이 있는'이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sf작가나 팬들이 관심있어하는 영역과 조금 다르다. 생각해보라. LHC가 내고 있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sf를 쓸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조금만 들여다보면 양쪽에서 기대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이 다르다는 것도 보인다. 과학자측에서는 자신이 가진 첨단 과학에 대한 정보가 sf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 하지만 sf작가들은 그보다 자신의 설정을 점검해줄 사람들이 더 급하다. 누가 내가 만든 태양계의 무대 행성에서 항성의 겉보기 지름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 좀 해줘!

우선 순위도 다르다. 결국 sf작가들은 그 이론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것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음이 없는 입자들만 가지고는 이야기를 만들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행사가 아니라 꾸준한 대화다. 대부분 아이디어는 계획 없이 엉뚱한 곳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오기 마련이니.

물론 이 포럼은 sf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번 부천 sf 판타스틱 포럼의 결론은 '사람들이 sf를 애들 영화라고 생각해서 투자가 안 돼요!'였단다. 그럼 애들 영화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 어차피 우린 특수효과빨 블록버스터로는 할리우드와 일대일 대결을 못한다. 하지만 크로스로드가 꿈꾸는 '물리학 sf'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 여기에 '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라는 인증 딱지까지 붙인다면 결코 애들 영화라고는 못할 걸. 아무도 이해 못할 영화가 될 거라고 다들 주춤할 수도 있지만, 그건 스토리텔링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 결과가 아무리 참담하더라도 제7광구의 '밑에 있는 동그라미는 화학합성 생태계고요'보다 나을 거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7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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