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어쩌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스포츠 예능이 될지 모른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설 연휴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는 여자축구를 내세운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였다. 대중적 성과 또한 준비된 예능 중 최고였다. 특별 편성된 설날 특집 2부작 예능임에도 이틀 연속 동시간대 1, 지상파 예능 1위를 기록했다. 최고 시청률 기록뿐 아니라 성적표에 찍힌 수치들의 추이가 무척 긍정적이다. 목요일 방송된 114.8%, 28.4%, 이튿날 방송된 2회의 경우 16%, 210.2%를 기록했는데, 한번 유입된 시청자들은 대체로 TV 앞에 머물게 만들었고, 이들이 입소문까지 퍼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때녀>의 매력은 재미를 느낄 접점이 다양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다시 각광받고 있는 스포츠 예능이면서, 트렌드의 한 축이 될 본격 여성 예능의 결합이다. 다양한 접점은 남성 위주 예능에서 원형을 가져온 여성판이라거나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존 여성 예능들을 넘어선 대중성을 마련한다. 전미라, 한채아를 위시한 주부들의 일상 탈출 공감대가 있고, 한혜진이 인터뷰에서 말한 여자들이 구기종목이나 팀스포츠를 즐길 기회라는 여성 예능의 당위가 있다.

그 한편에는 전형적인 젊은 남성들의 커뮤니티인 해외축구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2002년 스타들과 배성재의 존재가 있다. 볼거리 측면에서도 마라도나의 몸과 드록바의 얼굴이 합쳐진 신봉선과 안영미, 오나미와 이경실, 조혜련, 이성미 등 평소 보기 힘든 여성 코미디언들의 반가운 신구조화, 발톱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한 한혜진과 송경아가 이끄는 평균신장 176센티미터 모델들의 뜀박질 등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점적인 장면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골때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예능계의 갈라파고스 <불타는 청춘>(이하 <불청>)을 알아야 한다. 최소 40대 이상으로 방송연예계 활동이 비교적 뜸한 싱글남녀만 출연할 수 있는 이 예능에서 김도균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박장군박선영이 있었기에 가능한 스핀오프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체대 출신으로 엄청난 근성과 근력, 운동 감각을 과시하며 제작진과 여러 남자 출연자들에게 수차례 당혹감을 안겨준 박선영의 존재와 가공할만한 슛팅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불청> 제작진이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리가 없다.

그런 확신이 느껴지는 대목은 <불청>의 자산과 스토리를 아낌없이 끌어다 쓰는 데 있다. <불청> 패밀리 내에서도 운동 신경과 파워가 남다른 것으로 이름난 신효범과 조하나, 강경헌이 가수, 무용학과 교수, 배우 등의 직업을 내려놓고 막내라인인 안혜경과 송은영과 함께 박선영의 뒤를 받친다. <불청>의 시청자였다면 굉장히 반가운 조합이며 기존 불청콘서트등과 비교해도 판을 훨씬 더 키운 기대 이상의 대형 이벤트다.

이처럼 다양한 유입 경로와 접점을 통해 들어온 여러 시청자들을 아우르는 <골때녀>의 재미는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승부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한혜진이나 안영미,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전미라가 이를 악물고 뛰고, 신봉선, 이현이, 아이린, 진아름, 오나미와 축구 선수 남편을 둔 김수연, 심하은, 명서현 등이 박선영 못지않는 투쟁심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만든 감화다.

그러면서 여성 예능이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당위나 접근 방식,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갖게 되는 이런저런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더 넓은 세계로 나온 <불청>의 호나우딩요, 박선영의 감탄을 자아내는 쇼케이스와 함께 모든 출연자들이 하나같이 보여준 승부욕과 근성 덕분이다. 이것으로 부족한 기본 기술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전술을 능가하는 승부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성장 서사 없는 스포츠 예능이 이토록 각광을 받은 경우는 초대 <아육대>를 제외하곤 없었다. 게다가 <아육대>와는 또 달리 팬덤이란 확실한 외부 요인 없이 이뤄낸 기록이다. 재작년부터 꿈틀거린 여성 예능의 흐름 속에서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확실하게 대중적인 콘텐츠로 단번에 안착했다. 치열한 승부가 보여주는 스포츠의 박진감과 에이스 플레이어에 대한 기대, 승패라는 결과의 단순함을 부연 없이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성별 여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이수근의 바람대로 만약 이 토너먼트 대회가 추후 다시 열린다면, 훨씬 더 수준 높은 볼거리가 기대된다. 이미 다음 대회를 해야 하는 당위는 시청률로 완성됐다. 축구에 문외한이었던 이들이 체력적, 기술적, 전술적으로 가다듬고 다시 맞붙는다면 한층 더 치열한 몸싸움과 수준 높은 승부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축구라는 종목이 가진 재미가 하나 더 덧붙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골때녀>는 성장 서사 없는 스포츠 예능, 담백한 여성 예능의 가능성, 출연자들의 다양한 서사 등으로 말미암아 어쩌면 예능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스핀오프로 기록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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