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수상에 가려진 아카데미 시상식이 남긴 몇 가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과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렸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행사는 이전과는 달리 조촐하게 분산되어 진행됐고 레드 카펫엔 군중들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다른 시상식에는 있었던 줌 시상은 없었다.

작품상에 오른 8편 중,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더 파더>가 각색상과 남우주연상을,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남우조연상과 주제가상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분장상과 의상상을, <사운드 오브 메탈>이 음향상과 편집상을, <맹크>가 미술상과 촬영상을, <미나리>가 여우조연상을,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각본상을 받았다.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에겐 아무 상도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 대중들에게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역시 <미나리>의 여우조연상이었다. 윤여정은 이를 통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배우가 되었다.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세 번째 아시아인, 두 번째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의 매스컴은 입을 모아 <기생충>을 이은 두 번째 수상을 축하했다. <기생충>과는 달리 <미나리>는 미국 영화였지만 이는 이전엔 소외되고 외면되었던 아시아권 배우들의 역량을 할리우드에서도 입증 받은 사건이다. 이는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고루한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온 예술가의 개인적 승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클로이 자오의 수상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중국과 홍콩의 국민들은 아카데미상 자체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이유는 최근 홍콩 상황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Do Not Split>의 후보지명 때문이었다) 클로이 자오의 수상과 관련된 SNS 게시물은 검열되고 삭제됐다. 대신 사람들은 클로이 자오의 이름과 <노매드랜드>의 제목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자오가 시상식 소감 때 인용했던 <삼자경(三字經)>의 문장 인지초(人之初), 성본선(性本善)’을 인용해 간접적인 축하를 해야 했다. 이는 현정권에 대한 클로이 자오의 비판적인 태도를 담은 인터뷰에 기인한 괘씸죄 때문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과시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대신 드러낸 건 예술가의 당연한 반골 정신과 비판적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한 옹졸함이었다. 그리고 안티 아시아 정서가 위험할 정도로 폭주 중인 미국은 두 아시아인 수상자를 통해 문화적 포용과 다양성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자오가 감독한 <노매드랜드>가 거의 서부극에 가까운 미국적인 영화라는 점도 이 메시지에 힘을 보탰다.

윤여정과 클로이 자오의 수상은 모두 예측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주연상 결과는 모두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부분 아카데미 연기상의 결과는 같은 해의 배우조합상의 결과와 일치한다. 그리고 올해 배우조합상의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의 수상자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채드윅 보스먼이었다.

올해의 연출자 스티븐 소더버그는 예외적으로 작품상을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 앞으로 끌어냈는데, 이는 두 배우의 수상을 통한 드라마를 연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안소니 홉킨스에게로 돌아갔다. 보스먼의 아내의 수상소감으로 시상식을 마무리 지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웨일즈에 있는 홉킨스를 대신해 수상소감을 준비하고 있던 공연자 올리비아 콜먼이 반응하기도 전에 시상식은 끝나버렸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안소니 홉킨스가 바이올라 데이비스나 채드윅 보스먼의 상을 빼앗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두 사람이 모두 올해 최고에 속한 연기를 보여주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윤여정이 시상소감 때 이야기했듯, 각기 다른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을 줄 세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맥도먼드와 홉킨스 모두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고 배우조합상과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결과에서도 벗어난 채드윅 보스먼이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여전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 결과는 네 개의 연기상이 모두 비백인 배우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카데미 회원들의 반발, 즉 백래시 때문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미나리><노매드랜드>스틸컷·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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