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재미 있으셨나요?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27일 돌비 극장에서 열렸다.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코다>가 올해의 승자였고 최다 수상작은 음악상, 음향상, 편집상, 미술상, 촬영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듄>이었다. 여우주연상과 분장상을 수상한 <타미 페이의 눈>이 그 뒤를 이었고 <파워 오브 도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킹 리차드>, <벨파스트>, <드라이브 마이 카>, <노 타임 투 다이>, <엔칸토: 마법의 세계>, <크루엘라>가 각각 1개 부분을 수상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나이트메어 앨리>, <리코리쉬 피자>, <돈 룩 업>은 상을 받지 못했다. 결과 대부분은 예측 가능했고 특별히 놀라운 수상자는 없었다. 초반엔 <파워 오브 도그>의 선전이 기대되었지만 <코다>가 미국 제작자 조합상의 작품상, 미국 배우 조합상의 앙상블상, 미국 작가 조합상의 각색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작품상의 수상이 유력시되었다.

올해 시상식이 낸 기록을 살펴보자. <코다>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작품 중 최초의 OTT 영화이고 여성이 감독한 세 번째 영화이고 해외영화를 각색한 두 번째 리메이크 작품이다.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언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 세 번째 여성이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드보스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최초의 커밍아웃한 퀴어 여성 라틴계 흑인이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코다>의 트로이 코처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두 번째 농인 배우이다.(첫 번째는 같은 영화에서 코처 캐릭터의 아내를 연기했고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말리 매틀린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니타는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에서 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캐릭터가 되었다. 그리고 <벨파스트>를 통해 케네스 브래나는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상(각본상)을 받았다.

올해 아카데미상은 예외적인 중계방침으로 논란이 되었다. 전날 있었던 공로상과 진 허숄트상 수상 결과는 방송되지 않았고, 음향상, 단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 단편 다큐멘터리상, 음악상, 편집상, 미술상, 분장상은 시상식 방송 전에 미리 시상한 뒤 이를 편집해 중간중간에 방영했다. 이는 아카데미상이 꾸준히 유지해왔던 평등성을 위반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노렸던 시상식의 재미에도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아카데미상의 ‘재미’에 대한 이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시상식의 가장 큰 재미는 수많은 상의 수상자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결과가 누적되는 과정 자체에 있다. 한 시간 전에 이들이 덜 중요하다고 여긴 (그 중에는 영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덟 개의 상이 시상식 중계 전에 수상되고 그 결과가 유출되면서 <듄>은 시작부터 4개 부분 수상자가 되었고 당연히 누적 과정의 서스펜스도 날아가버렸다. 어차피 그 결과를 편집해 방영해야 했기 때문에 절약한 시간은 미미했다.

절약한 시간을 이용한 행사 역시 큰 재미는 주지 못했다. 007 시리즈 60주년을 기념한 클립은 있으나마나였다. 코폴라, 드 니로, 파치노가 직접 참여한 <대부> 시리즈 기념행사는 조금 더 의미가 있었지만 공로상 결과를 지울 정도였는지 의심이 간다. 완다 사익스, 레지나 홀, 에이미 슈머의 진행은 큰 문제가 없었고 종종 빛나는 순간이 있었지만 세 명의 진행자를 선택한 것에는 큰 장점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초반의 모놀로그를 제외하면 진행자가 꼭 없어도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할까. 단지 한 해 동안 세상을 뜬 영화인을 기리는 인 메모리엄 행사에 고인의 동료와 지인을 등장시킨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러닝타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터치이다.

시상식에 억지로 인위적인 재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증명하는 사건이 방영 중간에 있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사람들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주최 측에서 삽입한 오락적인 요소가 아니라 돌발사건이었다.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라라랜드>가 <문라이트> 대신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되었던 해로 기억된다면, 2022년 시상식은 윌 스미스가 무대로 나와 크리스 록의 빰을 후려갈긴 해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리 주최 측이 장식을 다느라 공을 들여도 정작 사람들이 관심을 쏟고 기억하는 것은 시상식의 결과 자체와 주최 측이 예상하지 못하고 각본에 반영할 수도 없는 여러 돌발상황이다. 그것이 시상식에 난입한 스트리커이건, 비욕의 죽은 백조 의상이건, 그리어 가슨의 장황한 연설이건간에. 그리고 윌 스미스와 크리스 록의 소동은 007 클립 요약보다 시상식의 ‘본질’에 더 가깝다.

소동이 벌어졌을 때 관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장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엔 이 모든 게 연출된 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관객석에 앉은 윌 스미스가 “다시는 내 아내의 이름을 꺼내지 말아!”라고 외친 순간부터 이는 돌발상황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 뒤부터 온라인에서는 거의 부조리해 보였던 소동의 전후관계가 밝혀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모든 게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시상하러 나온 크리스 록이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켓 스미스의 짧은 머리를 가리켜 <지 아이 조 2> 언급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별 의미없는 평범한 농담처럼 들린다. 하지만 제이다 핑켓 스미스가 자가 면역 질환으로 탈모증을 앓고 있었고 오래 전부터 이를 공개했다는 걸 알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리고 2016년에 크리스 록이 OscarsSoWhite 운동과 관련된 제이다 핑켓 스미스의 보이콧을 가리켜 ‘초대받지 않은 사람의 보이콧’ 농담을 한 것까지 알면 <지 아이 조 2>의 언급은 더 심한 악의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스미스는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받고 감사인사를 하는 동안 아카데미와 동료 후보자들에게 사과를 했지만 크리스 록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이후 아카데미에서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몇 시간 뒤 LA 경찰에서는 이와 관련해 다소 흐릿한 입장 발표를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거의 초현실적인 코미디처럼 보인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드라마이고 그래서 ‘재미있다.’ 스미스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자식과 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신나간 아버지’인 <킹 리차드>의 캐릭터와 겹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이와 관련된 수상 연설은 교묘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스미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기에선 지루한 양비론이 최선이다.

다른 사람의 질병을 놀려다는 것은 당연히 나쁘다. 그것이 악의를 담고 있는 발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에 맞선 폭력은 그렇게 쉽게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이 상황에서 윌 스미스가 어느 기준으로보더라도 약자의 위치가 아니라는 점을, 아만다 패리스가 트위터에서 지적했듯, 이런 폭력적인 보호자의 행동은 유독한 남성성 toxic masculinity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무엇보다 우리가 ‘맞아도 싼’을 별 생각 없이 폭력의 알리바이로 쓰고, 이를 ‘참교육’의 서사를 위해 써먹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MBN, 영화 <코다><킹리차드>스틸컷,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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