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시대 앞에 씩씩한 청춘들을 보여주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고유림이 잘못했네.”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는 백이진(남주혁)에게 앞뒤 생각하지 말고 그 한 마디만 해달라고 한다. 나희도는 자신이 그토록 추앙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팬”으로 응원했던 고유림(보나)에게 큰 실망감을 느낀 자신을 백이진이 그런 말 한 마디로 위로해주길 바란 것이었다. 멀리서 응원하고 지지했던 그였기에 가까이 지내면서 느끼는 실망은 얼마나 그의 심경을 복잡하게 했을까.

하지만 고유림을 잘 알고, 또 친동생처럼 챙겨왔던 백이진은 앞뒤 자르고 그가 잘못했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고유림을 위하는 마음이 커서라기보다는 그런 빈말이 나희도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나희도는 늘 편을 들어줬던 백이진의 그런 반응에 대한 아픔을 펜싱을 들어 드러낸다. 펜싱처럼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가 자신이 ‘거리두기’에 실패해서라고.

고유림은 펜싱을 계속 하기 위해 전학까지 와서 자신과 한 코트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나희도를 이상하게도 싫어한다. 선배들의 괴롭힘 앞에 당당히 맞서는 나희도에게 고유림은 “내가 버틴 시간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가 겪어온 힘든 과정들을 나희도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나희도의 실망감만 더 키운다. 금메달리스트의 노력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노력을 달리 평가하는 듯한 뉘앙스에 나희도는 그를 좋아하고 동경한 만큼 이제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IMF로 펜싱부가 사라질 때 코치는 그것이 “시대”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시대가 가로막아도 나희도가 전학까지 가서 펜싱을 계속 할 수 있게 된 건 고유림이 자신이 꿈꾸는 롤 모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펜싱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자 그 ‘시대’는 나희도의 편으로 돌아섰다. 결원이 된 국가대표 선발전에 운 좋게 다른 선수들이 포기함으로써 나갈 수 있게 된 것. 양찬미(김혜은) 코치는 나희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대가 너를 돕는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멜로의 풋풋함을 그려내는 작품이지만, 이 드라마가 화두처럼 가져온 건 ‘시대’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으로서 IMF 시절을 가져왔다. IMF로 인해 나희도는 다니던 학교의 펜싱부가 사라졌고, 잘 살았던 백이진은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거대한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 수밖에 없는 청춘들이다.

하지만 이 청춘들은 시대 앞에 쉽게 무릎 꿇지 않는다. 물론 찾아온 빚쟁이들 앞에서 “절대로 행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지만 백이진은 나희도의 위로와 응원으로 다시 힘을 얻는다. 나희도는 고유림에 대한 팬심과 그가 자극하는 꿈으로 버텨냈고 드디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됐다. 고유림과 다투고 커다란 실망을 갖게 되고 백이진의 위로도 받지 못하지만 PC통신 채팅으로 나누는 닉네임 인절미가 그가 그토록 원하던 말 “그 애가 잘못했네”라고 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을 해준 인절미는 다름 아닌 나희도의 꿈이었고 또 실망이기도 했던 바로 그 고유림이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주는 위로는 거대한 시대의 무게 앞에서도 청춘들 특유의 씩씩함이 그걸 훌쩍 뛰어넘는 광경을 보여줘서다. 백이진을 찾아온 아버지를 빚쟁이로 착각해 못 만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두 시간 동안이나 거리를 헤매는 나희도의 모습이나, 그런 그를 발견하고 그 마음을 읽어낸 백이진이 그가 혹여나 다쳤을까 걱정하는 모습은 이 청춘들이 어떻게 이 시대의 무게를 이겨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시대와 싸웠기보다는 그 어려운 시기에 처한 서로를 등 두드려주고 위로해주면서 버텨내게 해줬던 것이었다. 그 어려운 시기를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넘는 방법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같은 시대의 무게 앞에서도 ‘까짓 시대 따위’라 전하는 씩씩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건네는 응원이 만만찮게 느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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