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배틀’, 배틀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엔터미디어=정덕현] SNS는 이들에게 행복의 전시장이다. 인플루언서인 오유진(박효주)은 아이들을 위한 음식(인지 아니면 장식인지 알 수 없는)을 만들어 예쁜 명품 접시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다. 그건 애초 아이들을 위해 챙긴 음식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완벽한 서포트를 해주는 ‘슈퍼맘’이라는 걸 시종일관 증명하기 위해 찍어 올리는 사진의 오브제일 뿐.

그렇게 만든 간식을 오유진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파트 엄마들 커뮤니티 대표 송정아(진서연)와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 김나영(차예련)에게 갖다 준다. 말로는 그 엄마들의 아이들 것까지 챙겼다고 하지만, 엄마들 커뮤니티에 자신의 슈퍼맘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겉으로는 너무 맛있다, 고맙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오유진은 같은 유치원에서 자신의 아이들과 경쟁하는 아이들의 엄마일 뿐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배틀’을 벌이는 중이다.

SNS 속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그건 가짜다. 마치 서로가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앞 다퉈 싸우는 것. 이것이 ENA 수목드라마 <행복배틀>이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유치원생들인 아이들이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더 행복하다는 걸 애써 보여주려는 엄마들의 경쟁 속에서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다.

발표회 하나를 갖고도 자기 아이가 주인공이 되게 하기 위해 엄마들은 전쟁을 치른다. 오유진은 ‘스노우 공주’라는 뮤지컬에 자신의 딸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심사위원의 은사에게 노래 수업을 받는다. 당연히 심사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함이다. 또 경쟁자로 나설 김나영이 딸을 위해 주문한 옷을 슬쩍 훔쳐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렇게 오유진은 딸을 주인공으로 세우지만 1년 전 있었던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2년 전 키즈모델 선발에서 황지예(우정원)의 딸이 선발됐는데, 오유진의 딸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데 누군가 땅콩사탕을 먹여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했다며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다는 거였다. 결국 당시 재심사가 이뤄졌고 황지예의 딸 대신 다른 아이가 선발됐다. 황지예는 그것이 오유진이 재심사를 하게 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 생각했고, 슬쩍 오유진의 딸에게 땅콩이 들어간 닭강정을 먹게 함으로써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폭로한다. 땅콩이 들어간 닭강정을 먹고도 별 이상이 없는 모습을 확인시킨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송정아는 그 영상을 SNS에 올려 오유진을 고립시킨다.

<행복배틀>은 마치 JTBC 드라마 <SKY 캐슬>처럼 자식 교육에 눈 먼 엄마들의 비행을 그리고 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보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SNS라는 디지털 사회가 만들어낸 ‘과시’와 ‘인정’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그려 넣는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서로 행복하다며 아우성치는 이들의 ‘배틀’은 그들 모두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드라마 첫 회 시작과 함께 아파트에서 오유진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들어 있는 건, 이 행복배틀이 단란한 가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스릴러’라는 걸 말해준다.

오유진과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관계로 얽힌 장미호(이엘)는, 우연찮게 오유진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이 엄마들 사이에 벌어진 사건으로 들어올 예정이고, 오유진이 왜 죽었는가를 파헤칠 것이다. 그것은 또한 과거 이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어떤 비극적인 일들과 맞물리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되돌아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내세운 싸움이 사실상 아이들은 소외된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고, 행복하다는 걸 애써 과시하던 일이 모두의 불행으로 가는 이 이야기는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불행사회’의 단면이 아닐까 싶다. 시작과 함께 문제적 엄마 오유진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건, 이 행복을 가장한 사회의 일그러진 진면목을 먼저 드러내려 함이 아닐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저마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행복이 행복인 줄 알고 사는 불행사회. 세상에 배틀하는 행복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어쩌다 그런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들을 <행복배틀>은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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